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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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과속으로 객기를 부리다가 100여미터 고가도로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 폐기물 더미에 고립된 메이틀랜드.
 


이 소설의 특이점은 주인공이 고립되어 있지만 그는 손에 잡힐듯 한 타인의 존재를 늘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통섬과 고속도로의 거리는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 거리가 수직이라는게 문제일 뿐. 심지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남자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자는 차를 멈춰 세울 수 없고,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를 부랑자로 단정하며 자진해서 교통섬에 머문다고 여긴다.  










미치도록 탈출하고 싶은 그의 앞에 교통섬을 주거지로 삼으며 살고 있는 두 남녀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거동이 불편한 메이틀랜드보다 우위를 점한 듯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도권은 메이틀랜드에게 넘어간다. 서커스단에서 사고를 당해 뇌를 다쳐 지능이 낮아진 프록터를 폭력적으로 학대하고, 아픈 가정사를 안고 있는 제인의 상처를 이용하는 메이틀랜드의 광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해진다.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문명인이 극단의 상황에 처하면서 가식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함과 잔인함은 누구에게라도 나타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프록터와 제인은 교통섬과 문명으로 대변하는 도시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프록터는 교통섬을 떠나는 것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메이틀랜드 역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교통섬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등장인물의 행보는 무엇을 의미할까? 메이틀랜드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부정적이고 악한 성향이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고립되어 온전히 혼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판단한 메이틀랜드의 마지막 결정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경제 성장과 기계 발달, 부의 축적이 성공의 잣대가 된 현대 사회에서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각박한 현대 사회와 그로인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타인과의 관계와 개인의 외로움 등을 지적한다. 소설에서 최하층 빈민과 소외계층을 상징하는 프록터와 제인, 그리고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는 메이틀랜드. 그들은 다른 사람으로 보이지만 결국 그들의 내적 결핍은 정도의 차이일 뿐 마찬가지임을 나타낸다.  
 
 




메이틀랜드가 고립된 교통섬은 고가도로 아래에 위치해 기계 발달로 문명화된 도시의 잔재들이 폐기물이 되어 정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1974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콘크리트 더미와 철 폐기물에 의한 환경 파괴를 일갈하고 있다. 그러나 밸러드의 쓴소리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구는 쓰레기에 잠식될 처지에 놓여있다.


물질만능주의, 부의 축적, 가속화되는 기계화, 인간의 고립과 상실감, 지구 환경 파괴.



50여년간의 시대 간격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게서 괴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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