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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이십대에 출간된 첫 창작집의 제목이 왜 <만년>일까?
다자이 오사무가 이십대에 쓴 첫 창작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궁금증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나보다. 번역가 역시 작품 해설에서 작가의 말을 빌려 그 이유를 짐작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열다섯 편의 작품마다 한 조각씩 (혹은 그 이상으로)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로써 노동하지 않고 기생하는 존재, 유모의 품에서 성장한 유년기, 두렵고 어려운 아버지, 감정의 배출구가 된 문학적 창작, 동반 자살을 시도한 후 혼자 살아남은 요조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창작집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양>에서 읽혀지는 그의 다정하면서 한편으로 짓궂은 개구쟁이같은,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면도 볼 수 있다. 보증금도 월세도 내지 않는 기노시타에게 휘둘리는 집주인, 싸움꾼이 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혼하고 첫날밤 아내에게 시범을 보이는 도중 아내를 과실치사로 죽게 하는 리로베, 스물두 살에 거짓말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부로. 그러나 웃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에서도 다자이 오사무가 갖는 우수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만년>에는 반제국주의 사상, 남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처지, 자신이 구경거리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는 사회 낙오자, 제국주의 시대에 국익에 도움이 되어야만 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렇지 못한 남성에 대한 비난, 문학과 예술조차 생활력이라고 치부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또한 나약한 지식인과 순수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군을 대비시키며 자신을 비롯한 무기력한 지식인들의 모습에 낙담한다. 더불어 일할 기회도, 의지도 없는 무직 기노시타와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빈둥거리며 사는 화자의 자조가 자신에게 향해 있음을 독자는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에서 등장하는 화자와 기노시타, 두 사람 모두에게서 오사무가 보인다. 나이도 종잡을 수 없고, 신문만 꼬박꼬박 읽는 백수의 기노시타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며 '인간만사 거짓은 진실'이라고 외치는 [로마네스크]의 사부로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써야만 했던 <인간 실격> 요조와 겹쳐진다. 그래서 [원숭이 섬]에서 도주하는 일본 원숭이와 [참새]에서 자유롭게 날 수 없는 참새가 상징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릿광대의 꽃]의 요조를 통해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한 결론을 '복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행]에서 '보람없는 노력의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한다.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결국 복수의 대상 역시 본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 얼굴을 한 젊은이]에는, 모든 작가의 최고작은 만년에 쓰여진다는 의미가 담긴 문장이 있다. 그리고 창작집의 첫 작품인 [잎]의 첫문장은 이렇다.
죽을 생각이었다. 올해 설날,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새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회색 줄무늬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여름에 입는 옷이리라.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늘 죽음을 염두에 두었던 다자이 오사무는 매 작품마다 '만년'의 작품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몇 번을 읽어도 늘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문다. 남성성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태어나 반시대적인 사람으로 살아야했던 이의 정서에 깊게 이입하게 되는 나 자신의 정서는 또 무엇인가.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