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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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수화통역사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 [데프 보이스]는 수화가 단 하나뿐인 만국공통어라고 알고 있었던 무지한 나를 깨우쳐준 소설이었다.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지방에 따라 사용하는 방언이 있고, 다민족 국가의 경우에는 소수민족의 고유언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수화는 단 하나라고 여겼었는지, 그리고 농인에게 있어 수화는 모국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책을 덮은 후 꽤 오랫동안 잔상이 남아있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아라이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돌아왔다. 
 







 
이 작품은 네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의료와 노동 현장에서 농인들이 겪어야 하는 높은 사회적 장벽과 그 안에서 감내해야 하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짚어내면서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출산을 눈앞에 둔 농인 임산부는 의료진과 원만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픔을 겪지만 청인인 의사는 그 탓을 임산부에게 돌린다. 개인의 감정과 입장은 무시한 채 외모와 장애를 특수성으로 삼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세태, 청인의 세계에 편입하고 싶었던 사춘기 소년의 방황, 수화 내에서도 사라져가는 지역 방언, 마지못해 형식적으로만 지켜지고 있는 '장애인 고용률 제도'가 지속적인 근무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 이 밑바탕에는 청인들이 당연시 여기는 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한다고 썼다. 이는 비단 '듣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각종 시설 및 사회 인프라에 있어 장애인들의 권리는 비장애인들과 동등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비장애인들이 베풀어야하는 배려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써 누려야할 당연하고 공정한 권리다.  
 


245.
그녀가 원한 건 "약자를 위한 지원'이 아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바라고 있다. 

 
 



선천적으로 장애아를 낳은 부모는 죄책감부터 갖는다. 그 이유는 비장애인이 다수자인 사회에서 제 권리를 찾지 못하고, 고정관념과 차별을 견뎌야 할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일테고, 다방면으로 비장애인, 장애인 구분이 없다면 이러한 자책과 미안함은 없을 것이다.  
 


아라이와 미유키는 '들리지 않는 아이'로 태어난 히토미에게 인공와우를 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쓴 칼럼을 읽게 된다. 그 칼럼의 마지막에는 '한 명이라도 장애아를 줄일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 기사를 통해 미유키는 세상이 장애아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작가는 다수자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비정상'이라는 단어로 묶어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HAL을 통해 의사 소통을 하고 공감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언어 이상으로 진심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는 태도임을 이야기한다. 
  


 
수화 통역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을 위함이 아닌 '들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아라이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청인이었던 아라이. 가족 중 유일한 농인으로 태어난 그녀의 딸 히토미. 가족들의 세계에 온전히 흡수되지 못해서 상처받았던 아라이가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딸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아라이의 가족이 앞으로 성장할 모습이 기대가 된다.
  


 
사족.  
일본의 경우 수화 통역 세계에서 특화된 분야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없고, 빈도가 높아 필요성이 절실한 의료 통역에도 특별한 수련 과정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떨지 궁금함이 남는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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