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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21년 4월
평점 :
경찰청 부서 중에 미수반이 있다. '미제 사건 수사반'이 아니라 '미심쩍은 사건 조사반'이라는 의미로써 경찰청 넘버1과 넘버2의 여의도 입성을 위해 꽃길을 걷는데 걸림돌을 제거하는, 즉 뒤치다꺼리 전담을 위한 별동대다. 이 부서의 총책은 은퇴한 지방경찰청장 출신 동철수 영감이고, 그의 행동대원은 언론사 기자 출신 형사 박희윤 경장, 그리고 40대 중년 주혜순 경위가 있다. 동철수 영감은 미수반 임무를 여가생활로 여기는 듯 하고, 일명 주바리로 불리는 주혜순 경위는 특채로 들어온 박 경장을 경찰로 인정하지 않고, 결국 발에 땀나도록 뛰는 건 박희윤 경장이다. 그런데 이 영감님이 엉뚱하게 내뱉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다. 박희윤은 그가 의도한 것인지, 얻어 걸린 것인지 아리송송하다.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가수왕 하필이 죽었다. 췌장암으로 삶을 비관한 자살로 결론이 나고 대중이 그의 죽음을 잊어갈 즈음 돌발 변수가 터졌다. 한 유력 신문에서 팬들로 추정되는 몇몇이 하필 자택 근처에서 서성대는 걸 봤다는 목격자 제보가 나왔다. 박희윤은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하필의 죽음이 여러 사람의 이권과 맞물려 있음을 알아낸다. 하필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그의 유언장에 들어있는 내용은 그가 말한대로 일까? 삶과 죽음 자체가 반전인 가왕의 인생이여.
유명한 유튜버 탁해서가 자신의 해혼식을 마친 날, 개인 노천탕에서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채 발견된다. 단순 사고라고 결론이 났지만 때마침 해혼식에 참여한 동 반장과 박 경장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함께 일하는 카메라맨과 친구인 군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본 결과 탁해서의 현재 개인 방송 수익은 현저하게 떨어졌으며 고향집과 해혼식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목적이었음을 알게 됐다. 노천탕에서 사라진 탁해서의 목욕 가운과 허전한 탁해서의 서재 책상의 알 수 없는 무엇이 형사의 촉을 자꾸 건드린다. 누가 알았을까, 무심코 내뱉은 몇 마디가 사달이 될 줄은... .
서촌의 유명한 냉면집 <행복면옥>의 백 사장이 자신의 식당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강력한 용의자는 보험금 수령인이자 유산 상속자인 백 사장의 아들 백명섭인데 경찰측에서는 심증은 있으나 확실한 물증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다른 한 명은 피해자 사망 시각에 식당에 들렀다는 주방장 김철현. 그러나 그 사람 역시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그와중에 명섭이 언급하는 심야손님. 백 사장이 반겼다는 의문의 심야손님은 누구이며, 범인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 경쟁가게 효자면옥, 돈을 못 받은 사채업자, 알리바이가 애매한 주방장, 유산과 보험금 수령자인 아들. 그리고 더없이 안타깝고 슬픈 사건의 진실.
예전에 유명 연예 기획사에서 일했던 중년 남자가 자신의 연립주택에서 음독자살했다. 무대 사고가 있기 전까지 촉망받았던 뮤지컬 여배우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뒷마당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 두 사건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사건의 시작은 십수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물고 물리는 복수의 고리.
소설마다 등장하는 소재는 현대 사회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혹은 수시로 일어나 무심코 지나갈 법한 사건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 경각심을 가져야하는 사건들이기도 하다.
돈벌이를 위해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질되는 개인방송, 화려한 연예계의 외롭고 잔인한 약육강식 생존 방식,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피해를 입는 가게 주인들, 개인의 재능과 적성과는 무관하게 강제하는 가업과 가족간의 갈등, 신념과 맞바꾼 정경유착의 이면, 직업과 명성을 상품화하는 전문직 종사자들, 탈세와 절세의 경계에서 줄타기기를 하며 문어발식 학원 사업을 벌이는 사학재벌, 그리고 언론이든 경찰이든 고위층 퇴직자의 종착역은 여의도 입성 등 비일비재로 일어나 해당하는 피해자들을 더이상 주목하지 않는 현 세태를 꼬집는다.
에피소드마다 작가가 짚어내는 부분에는 외면받은 피해자들이 있다.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연예 지망생들, 은퇴한 가왕, 황혼이혼의 노년, 빠르게 변해가는 요식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냉면집 사장, 주목받지 못하고 고집불통 늙은이로 전락한 4선의 영광에 빛나는 전 국회의원 등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유쾌하고 훈훈하게 담아냈다. 지금도 현재진형행임에도 잊고 있었던 사회문제를 개성 강한 주인공들을 통해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인간적으로 그려냈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