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내가 자리한 모든 장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물질적인 장소이며,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어쨌든 그곳에 그 모든 장소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서문에서)  

 




 


작가 아니 에르노가 실제로 글을 집필하는 장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집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바로 그 집 밖에서는 글을 절대 쓰지 못한다는 작가는 처음 이 집을 보는 순간 집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34년째 살고 있는 '보호막'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는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게 담겨 있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공장 노동자에서 벗어나고자 평생 열심히 일했던 부모님. 딸의 감정을 보듬었던 아버지와 더 높은 사회적 계급을 얻기 위해 교육에 힘썼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들로부터 받았던 영향과 문화적 괴리에서 오는 사춘기 시절의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이후에 갖게 된 부모님을 향한 죄책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문학은 아니 에르노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는 상상의 장소이자 사회적인 모델을 제공하는 양면성을 가진 역할, 그리고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수많을 것들을 배웠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 예술이 갖는 가치 평가와 상관없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낼 수 있으며 생각하는 힘을 갖게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누구도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비록 상상에 의한 허구의 글이기보다는 기억과 현실에 기반하는 글이었다하더라도도피였다고 덧붙인다. 일례로 그녀가 <빈 옷장>을 썼을 당시 억지스러운 삶을 살던, 혼란한 시기였다고 하는데, 애초에 출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채 사춘기 시절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 부르주아층 남자아이에게 버림받는 느낌을 이해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이어 그가 한 말, 자기의 작업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으며 이는 문화의 형태 혹은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단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서 그의 작품이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문제점 혹은 모순으로 확대시키는 특유의 강점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사회적 참상 묘사주의와 포퓰리즘, 이 양쪽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아니 에르노가 생각한 글쓰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단조로운 글쓰기였다고 한다. 기사 형식이 아니면서 확인된 사실과 가치 판단과 정서를 걷어낸 글쓰기, 이를 통해 더 이상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 그래서 분리되지 않는 세계의 바람과 한계를 느끼기 위한 글쓰기를 한다고. 또한 구원의 역할까지. 아니 에르노가 글을 쓸 때 추구하는 정확함이란 명백함처럼 필수불가결한 어떤 것이다. 비록 글을 쓰는 내내 지속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작할 때는 명백함 감정, 확신이 필요하다는 아니 에르노. 그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현실ㅡ여성, 역사, 낮은 사회 계급ㅡ속으로 하강한다. 작가가 20년째 쓰는 글의 주제는 시간과 기억이다. 그것은 불변하는 정체성을 말할 수 없는 범위 내의 시간,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 혹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대조가 아니라 시대와 삶, 사람, 일상, 책 등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구원이다.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겠냐는 물음에 아니 에르노는 진짜 삶을 살지는 못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에게 잘 산다는 것은 머릿속에 늘 책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글은 때때로 가장 끔찍한 장소이기도 하고 자유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행복과 불행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니 에르노는 오늘날의 세상을 보는 시각은 '~주의'가 아닌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으며 극단적인 단절을 끝내고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길지 않은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의 나이쯤 되면, 나도 그처럼 나 자신을 그리듯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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