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리커버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은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4년이 지난 후 지방자치 선거일로부터 시작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백지 투표의 원인은 독자들이 찾아야 한다.  
 
합법적으로 민주적 절차 안에서 이루어진 비밀 투표에서 백지 투표가 80퍼센트가 넘게 나왔다. 정부는 한 국가의 수도에서 발생한 이 사태를 현 정부의 도발로 받아들이고, 범죄자가 도망치듯 수도와 시민을 버리고 몰래 탈출한다. 거대한 도망자 행렬을 연상시키는 이들을 배웅하는 건 수도에 남겨진 시민들이 살고 있는 집의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었다. 도망나온 대통령과 내각이 예상한 수도의 상황은 약탈과 폭력, 파괴가 일어나 정권을 도발했던 무리들의 자멸과 정부의 부재를 시민들이 뼈저리게 느끼며 테러리스트들을 고발하는 것이었으나 기대와 달리 시민들은 시민의식을 발휘해 자체적으로 위생과 치안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불안감을 느낀 정부는 수도의 전철역에 폭탄을 터트려 위기감을 조성하지만 시민들의 침착하고 안정적며 평화적인 대응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것도 모자라 수도를 빠져나오려고 하는 시민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며 돌아가라고 위협하고, 증거를 조작해 사실을 왜곡시키고, 협조하지 않는 자들과 자신의 지위를 넘보는 자들을 협박하고 죽이기까지 하며 급기야 총리가 두세 개의 장관직을 겸임한다. 이것이 한 국가의 정부의 모습이다.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던지게 되는 첫 번째 질문은 '백지 투표가 불법인가?'이다. 이 질문은 등장인물들이 경찰에게 반문하는 장문이 수차례 나온다. 불법도 아니고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은 백지 투표에 정부가 겁을 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 해체를 요구하는 어떠한 시위나 문건이 없었지만 그들은 백색 투표가 시민들이 가하는 위협이라고 여겼다. 대통령과 고위 정부 인사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위에 썼듯 흡사 도망자들처럼 느껴진다.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도시에 고립된 것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이지만, 탐욕과 권력에 눈이 멀어 폭력을 불사하는 정부 인사들의 모습은 4년 전 수용소를 지키며 시민을 방치했던 군인과 당시 정부, 수용소 내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던 이들의 모습과 같다. 국민이 아닌 개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사건을 조작하고, 언론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배포하며,잊혀진 사건을 들춰내 왜곡시켜 문제의 본질을 전도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권력자의 모습은 시대를 막론하고 유사하다.   
 
경정을 죽이는 내무부 장관과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내무부 장관을 사임시키며 겸임을 하겠다는 총리의 탐욕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안과 의사는 경찰에 끌려가고 그 사이 부인은 저격수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소설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전작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결말이 의아해질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왜 이토록 암울하게 소설을 마쳤을까? 개인과 소수집단의 연대는 노력으로써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즉 막강한 공권력의 비리와 독재는 일반 시민들이 해결하고 뛰어넘기에 장벽이 높다. 정부의 그릇된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소설에서는 시장, 문화부장관)이 사임하고, 죽음을 무릎쓰고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경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무부 장관이나 총리같은 사람은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정 능력을 키우고,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눈을 뜨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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