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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단편전집, 개정판 ㅣ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난해성, 다의성, 다층적 구조로 대변하는 실존주의 대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 독일어 사전에 '카프카적(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어 있을만큼 그의 문학세계는 난해하고 독특하다. 민족과 가정 내에서 정체성에 시달리며 그로인해 인간의 존재와 자아, 그리고 소외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사실은 작품 안에서도 충분히 전해진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된 카프카 단편집 중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수록하지 않았을까 싶다.
먼저 일평생 그를 고뇌에 빠트렸던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인간 소외와 고립을 드러낸 작품을들 살펴보면 <자하르트와 자무엘> <학술원에의 보고> <어느 단식 광대> <법에 대한 의문> <어느 개의 연구> <시골의 결혼 준비> <어느 투쟁의 기록>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등을 들 수 있다.
<리바르트와 자무엘>에서는 두 남성에게 자신의 자아를 양분해 투영시킨다. 자무엘은 작가로서, 리하르트는 보험회사 법률고문으로서 서로의 바라보며 진단하듯 서술되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구원에 대한 바람으로 마무리 된다.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에서 요제피네의 휘파람은 카프카에게 있어 '글쓰기'와 같은 맥락, 즉 문학에 대해 작가 자신이 갖는 절대성, 그리고 예술과 문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단식 광대>는 1921~1922년 집필한 소설인데, 관객들에게 자신의 단식기술을 공연하는 광대는 40일 동안 단식을 한 후 흥행사가 단식광대에게 약간의 음식을 먹으라고 권유하고 단식을 끝내는 행사를 개최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단식 광대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단식 광대는 동물우리로 밀려나게 된다. 어느 누구도 광대의 단식 일수를 세고 있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단식을 계속하고 감독관이 왜 단식을 아직까지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카프카는 살제로 아무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후두결핵을 앓았는데 소설에서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광대를 통해 자신의 작가로서 예술가적 존재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피아노를 꼭 쳐야겠다는 화자와 무관심한 청중이 등장하는 <어느 투쟁의 기록>에서 글을 쓰고자하는 그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보험회사 법률고문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사회 집단에서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인간이 갖는 소외와 고립, 그리고 자본주의가 갖는 부조리에 대한 내용도 <법에 대한 의문> <양동이를 탄 사나이> <일상의 혼란> <낡은 쪽지> <법 앞에서> 등을 통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고, <어느 개의 연구>에서는 인간의 광범위한 지식이 실질적으로 갖는 한계를 비틀고 있다. <학술원에서의 보고>는 유대인 사회에서도, 유럽인 사회에서도 온전하게 소속되지 못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산문시 같은 <밤에>의 전문을 통해서도 느껴지는데, 이러한 맥락은 <튀기>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렇듯 카프카의 정체성과 사회적 틀을 깨고자하는 노력과 한계를 반복했던 고뇌를 무수히 많은 짧은 단편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카프카는 결국 아버지라는 벽을 극복했다고 볼 수 없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앞에서 늘 한없이 작았던 그의 소설에는 유독 아버지 혹은 아버지를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선고> <시골 의사> <다리> <돌연한 출발> <황제의 칙명> <열한 명의 아들> <굴> 등은 아버지를 비롯헤 카프카에게 있어 장벽이 되었던 여러 틀과 그에 대한 해방, 그리고 죽음을 쓰고 있다.
특히 <열한 명의 아들>은 카프카가 아버지가 되어 아들인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 아들들은 각각 진지하고 영리하며 훌륭한 체격의 소유자이고, 미남이다. 또한 사교적이고 착하며 악속을 잘 지키고 사려 깊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형태의 위트까지 갖추고 있으며 우하하다. 그런데 열 번째 아들은 불성실하고, 열 한번째 아들은 연약하다. 이는 아홉째 아들까지는 카프카가 짐작하는 아버지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들 상이고, 열번째부터 특히 막내 아들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에서 "아버지, 제가 모시고 살게요"라는 대사는 앞선 작품 '선고' 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장면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든 독신주의자, 블룸펠트>에서는 '공'이 등장하는데, 블룸펠트는 '공'을 원하는 이는 소녀들이지만 그는 소년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공을 차지하는 사람은 소녀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연상시키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 또한 아버지(그리고 가업이라는 굴레)로부터 해방하고 싶은 작가의 내면이 느껴졌다. 더불어 반려견, 즉 동반자를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두 번이나 파혼했던 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짐작을 해봤다. 그리고 <다리>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와의 관계 혹은 의미를 확대하면 억압받았던 유대인들을 상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연한 출발>은 보험원 일상에서의 해방, <선고> <독수리> <튀기> <굴>은 결국 죽음을 통해서만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작가의 비극적 사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변신>은 1915년 작품으로 카프카를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해충(갑충)이 된 그레고르 잠자. 그가 벌레가 됐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놀라고 걱정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그는 돈을 벌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가족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후 가족들에게 방치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소설은 위에서 언급했던 유대계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 소외과 고립, 아버지와 관계 등 작가의 내면이 모두 투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르는 유능한 세일즈맨이고 조건이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비교적 넓은 집에서 하녀를 두고 살지만, 빚만 갚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불평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벌레가 된 그는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 하나 곧 적응해 익숙해지고 오히려 불만은 커녕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더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고레고르의 세일즈맨으로서의 삶을 짚어보면 그는 늘 바쁘고 걱정을 달고 산다. 오로지 빚을 갚는 데에만 열중한 그레고르가 동생의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는 때는 벌레가 되어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면밀한 관찰 역시 사람의 모습일 때는 하지 못했다. 또한 가족의 생계를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가 동생이 가져다준 음식을 먹으며 보살핌을 받는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레고르가 현실을 인식한 계기는 하숙생들이 등장하면서 부터인데, 가족들은 수입을 마련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하숙생을 들이게 되고, 그레고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각성한다. 가족들은 이제 혐오스러운 벌레에 불과한 그레고르를 거추장스러워한다. 그는 편안했던 벌레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전처럼 순응하며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한 갈등은 소설 속에서 그레고르가 문지방을 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 문지방이라는 경계가 갖는 의미는 단편 <마당문 두드리는 소리>에서도 잘 나타난다. 문지방 안쪽의 내면 세계와 문지방 바깥의 외부 세계를 분리해 그 안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통해 작가의 내적 고뇌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진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그를 방치하면서 버리자고 주장하는 이는 여동생이다. 어쩌면 카프카는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여동생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그레고르 자신의 갈등을 끝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해충'은 좁은 의미로는 현실과 단절하고픈 작가 본인의 자아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전쟁과 시대적 상황에 시달리는 사회의 낮은 계층 사람들, 혹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기생충이라고 불렸던 유대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중간 계급의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동부 유대인으로서 온전한 유대인으로도 유럽인으로도 살지 못했고, 끝내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해 약한 몸으로 낮에는 일하고 늦은 밤까지 글을 써야 했던 사람. 파혼을 거듭하면서도 결국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고 오로지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음에도 모두 불태워 달라고 유연을 남겼던 사람. 그의 깊은 고독과 내면을 어찌 다 이애할 수 있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