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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평점 :
138.
우린 선택을 한 거예요.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사느니 목숨 걸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그렇죠?
보스를 배신한 폭력 조직의 말단 조직원인 거구의 20대 남성, 아이돌 그룹의 사생팬인 여고생, 명동 일대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며 돌아다니는 노파,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박봉으로 고용해 주말도 없이 일을 시킨 50대 승강기 부품 공장 사장. 이들은 모두 살해 피해자이며 새끼 손가락 한 개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손가락 한 개씩 더해져 공장 사장은 손가락 네 개가 잘린 채 발견됐다. 연쇄 살인범은 일명 '단지 살인마'로 불린다.
전업 투자자 영민은 가벼운 호기심으로 '단지 살인마'의 범죄를 추리하기 시작한다. 며칠 밤잠을 설쳐가며 분석했지만 패턴이나 공통점은 찾지 못하다가 카톨릭 7대 죄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세븐>을 보다가 불현듯 단어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십계명'
피해자와 십계명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는데...... 이럴수가! 살인자의 패턴인가, 확대해석인가. 그리고 얼마 후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평생 가난한 아버지의 등골을 빼먹은 30대 남성 영어학원 강사다. 부모를 공경하라, 다섯 번째 계명이다.
고교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그 영향으로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으며, 현재까지 약을 복용해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영민은 '단지 살인마'의 모방 범죄를 통해 스스로 여섯 번째 범죄를 완성한다. 그리고 영민이 살인을 저지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희생자가 나왔다. 인슐린 과다 투여로 인한 저혈당 쇼크로, 27주차 임산부였으며 오른손 손가락 전부와 왼손 새끼와 약지, 일곱 손가락이 절단된 상태였다. 일곱 번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이 범행은 연쇄 살인마의 소행일까, 아니면 또다른 모방 범죄일까?
버킷리스트를 적은 노란 포스트잇이 냉장고 문에 붙어 나비 떼처럼 팔랑거리는, 그렇고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날, 우편함에 하얀 편지 봉투가 꽂혀 있었다.
'단지 살인마, 전화 요망. 010 - XXXX - XXXX'
단지 살인마가 영민에게 연락을 하라는 것인지, 영민을 단지 살인마라고 여겨 연락을 바라는 것인지 애매하지만 확실한 건 영민이 완전 범죄라고 여겼던 범행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밀봉되어 있던 봉투에 적혀 있는 번호로 연락하자 영민이 범죄를 저지른 당시의 영상을 보내며 돈을 요구한다. 그의 요구대로 돈을 보낼 것인가, 해외로 도망칠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대적할 것인가! 그런데, 이상하다. 협박범이 사용한 전화의 번호가 일곱 번째 희생자의 전화번호다.
사건은 영민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영민은 열일곱 살에 심각한 학교 폭력을 당했다. 그로인해 대인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군대에서 발작을 일으켜 그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군대로 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조차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연쇄 살인 행각 뒤에 숨어 학교 폭력 가해자였던 양승범을 살해한 후 손가락 여섯 개를 절단하면서 모방 범죄를 벌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지 살인마'의 다음 희생자는 손가락 일곱 개가 잘린 채 발견된다. 이쯤에서 독자는 주인공 영민이 가진 의혹을 넘어 앞서 일어난 '단지 살인'이 연쇄 살인범에 의한 범죄냐 아니냐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연쇄 살인 희생자는 십계명에서 금하는 죄를 저지른 자들이다. 다른 신을 섬기면 안되고, 우상을 만들면 안되고, 신의 이름을 남용해서는 안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을 저지르면 안되고, 간음.도둑질 하지 말고, 거짓 증언을 하지말며 남의 것을 탐내면 안된다. 그런데 이 열 가지 계명에 한 가지도 해당이 안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들은 편법적으로 타인의 재산을 탐하고 자기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아무렇게 않게 거짓말을 하고, 고용인은 노동자의 일자리와 생계를 보장하지 않으며, 일부 종교인들은 신의 이름을 남용해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 부모 공경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됐으며 강력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단지 살인마'의 희생자는 특별한 사연이나 잘못이 있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지나가는 누구를 가리켜도 범인의 표적이 되는 것이 이상할게 없는 불특정 다수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도, 용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테다.
우리는 종종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폭력은 정당한가?'라는 실험에 든다. 물론 영민의 복수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러나 영민의 현재의 삶을 보면 학폭 가해자를 용서하기 어려운 점은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양승범은 반성과 사과조차 없다.
그렇다면 소설 초반 영화 <세븐>을 통해 던져진 질문을 다시 해 보자.
27.
내가 느끼는 살의는 놈의 살의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한가.
살의에 '윤리'를 적용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살의가 실행에 옮겨지기 전까지는 관대하다. 그러나 범행이 살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윤리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내부에 있는 살의를 정당화시킬 명분을 준비하고 있다. 영민은 꼼꼼하게 계획 범죄를 저지르면서 한편으로는 세계 곳곳에 기부와 후원을 한다. 선행을 통해 살의에 대한 윤리적 죄책감을 대체시킬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영민의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탐정놀이가 살인으로 이어져 두번 째 살인까지 계획하게 되고 두번 째 범행이 실패하면서 그뒤를 잇는 새로운 연쇄 살인범이 탄생한다. 안심하지 마시라.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