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N. K. 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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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은 없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 얻는 자유는 없다. 

(깨어서 걷기) 
 



모두 22편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집은 인종차별 특히 유색인종 여성차별을 시작으로 생명 연장, 지구 환경과 인류 종말, 구시대(제국)에 대한 저항 등 여러 테마를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여성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죽을 수있는 <위대한 도시의 탄생>,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겪어 온 인종 차별과 흑인 억압, 그리고 차별 철폐 시위를 그린 <븕은 흙의 마녀>, 특히 2005년 태풍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덮쳤을 당시 하층민 거주지역인 저지대의 피해가 컸고 인구가 대부분 흑인이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피해 복구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져 나왔던 상황을 소설로 옮긴 <잔잔한 물 아래 도시의 죄인들, 성자들, 용들, 그리고 혼령들>을 통해 제도적 차별을 받는 경제적 약자들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도 수면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88. 90.
나는 세상이 변할 거라고 믿을 수 없어. 나는 희망을 품을 수 없어. 내 마음속에는 희망이 없어.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짓밟히며 편하게 살라고 했어. 살아남는 법은 알지만 변화를 위해 싸우는 법은 알지 못해. (...)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백만 번은 말했지만 내가 틀렸다. 그건 미안하구나. 앞으로 큰 싸움이 있을테지만 넌 이길 수 있어. 그리고 그 싸움은 나보다 네가 훨씬 더 잘 해낼 거다. 

   
 
  
 
실린 작품들에는 여성 차별에 대한 소설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아내는 지정받는 대상이고 이혼은 불법이며 여성의 역할은 규정되어진 <엘리베이터 댄서>, 인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제한된 구역에 가둬놓고 인구 제한을 하기 위해 성적 하위 10% 여자 어린이를 데려가는 인공지능들과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여성들을 그린 <졸업생 대표>.  
 
이 <졸업생 대표>는 눈여겨 보게 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화보다는 죽이거나 죽거나 영영 갇혀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함으로써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항거하듯 주인공 소녀 지늘은 '자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집단주의 사회는 순응하고 평범하며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을 원한다. 개성은 용납되지 않고 획일된 삶을 강요당한다. 시스템 안에서 부속품으로써 가치가 없으면 도태라는 누명을 씌어 버려진다. '부속품'이 되든가, '자신'이 되든가. 
 
223.
그녀는 자신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241.
왜 넌 다르니? 왜 넌 우리처럼 되려고 노력하지 않니? (졸업생 대표) 
  

 
좀더 여성 문제와 가깝게 접근한 작품은 <수면 마법사>다.
폭력적인 남편은 강도와 다를 바 없는 가정 및 사회에서 여성이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임신을 해야 한다. 여성 지도자가 갖춰야 할 것은 역할에 맞는 개별적 능력이 아닌 육체적 생산성에 두고 이를 얻기 위해서는 성性을 역으로 착취 당해야 한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이상한 현상, 주인공 냄섯이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는 것 뿐인데, 이것이 이토록 어려운 바람이어야 하는가. 
 
  
 
 
약소국 독립 국가 아이티 흑인 여성 스파이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인류애)라고 말하는 <폐수 엔진>, 지구 환경 오염으로 인해 지구에 남거나 우주 행성으로 옮겨야하는 선택지에서 고민하지만 과학이 아닌 자연으로 삶의 터전을 지켜야함을 전하는 <용 구름이 뜬 하늘>, 인류의 기술 개발로 불가능한 것이 없게 되었으나 인간은 그것을 덥석 움켜쥐어도 되는 건지를 고민하게 하는 <연금술사>,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디폴트 값들이 성장의 필요성을 각성하며 실재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트로이 소녀>, 어린 육체를 상대로 정신 이식을 통해 육체를 바꿔가며 젊음과 영생을 유지하는 마스터들이 증장하는 <깨어서 걷기>, 뉴욕 대도시를 떠도는 죽음. 이 살벌하고 메마른 현대 사회에서 빌딩 숲을 떠도는 것이 과연 죽음뿐일까라는 물음표를 놓는 <렉스 강가에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사고 속에 노출된 삶 속에서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현대인의 강박 <비제로 확률> 등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196.
스스로를 수리하지 말라. 인간 지성의 최고치를 능가하지 말라. 쓰거나 복제하지 말라. (트로이 소녀)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은 <퀴진 드 메므아>였다. 프랑스어로 '추억의 부엌'. 
헤렐드는 친구 이베트의 권유로 테마 레스토랑 메종 라보를 방문한다. 누구나 아는 역사적인 일,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도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해 주면 추억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메종 라보. 헤럴드는 의구심을 갖지만 과거 전처 앤젤리나가 해준 음식을 주문하고 맛을 본 후 당황한다. 앤젤리나를 그리워하던 헤럴드는 메종 라보를 재방문할 것을 확신하지만 직원과의 대화 후 상념에 빠지고 그는 재방문 대신 앤젤리나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가 삶의 매순간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지나간 추억이 아니라 현재라는 것, 회한으로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된다는 것. 
 
 
이름만 들어봤던 작가였고 언젠간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신간이 출간되어서 첫 책으로 만났다. 이 작가의 장편을 진득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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