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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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부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실크로드란 길로 나 있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 도시에서 오아시스 도시로 이어지는 점의 연결. 
  
 


이번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순례 답사기다. 
저자의 답사기는 나에게 늘 유용한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이번 순례기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요, 언젠가 가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실크로드의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책의 표지를 펼치면 약도가 나온다. 동쪽에 있는 누란을 시작으로 투르판을 거쳐 천산산맥 아래쪽의 쿠차로 가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사막을 횡단해 호탄, 야르칸드, 카슈가르를 종착으로 한다. 간단한 지도만으로도 이 엄청난 구간이 놀라운데, 하루에 거의 10시간을 버스를 타야하는 일정은 병적으로 멀미가 심한 나로서는 가능할지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답사기는 여행의 과정이나 문화유산의 자료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지만 그에 못지 않게 현장에서 느껴지는 답사가들의 감흥과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지는 자연의 경관이 인상적이고 깊게 들어온다. 이 책에서도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사라진 누란을 비롯해 가는 곳마다 남겨진 문헌들을 읽고 있자면 삶과 세상을 통찰하는 혜안들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누란에서 발굴된 가로슈티문자로 기록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살아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베면 말 한 필을, 작은 나무를 베면 소 한 마리를, 묘목을 벤 자는 양 두 마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그들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와 나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란 사람들도 신도시 건설로 인해 생태계 파괴를 불러왔고, 현재는 사라진 나라가 됐다. 현대 사회에도 도시화라는 명분으로 산은 깎여 나가고, 화석 연료 사용으로 오염과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누란의 경고가 아무 소용이 없다.  
 
 
휴먼 스케일은 인간 감각과 신체조건의 한계에 바탕을 둬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크기를 말한다. 현대에는 이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데, 투르판의 교하고성 도시는 이러한 휴면 스케일을 일찍이 완성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투르판의 인공수도 카레즈인데 카레즈는 위구르어로 '우물'이라는 뜻으로, 지하에 우물을 파고 이 우물들을 서로 연결해서 물길을 만든 지하 관개수로를 말한다. 연간 강우량이 16밀리미터밖에 안되지만 증발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지상에 수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그래도 지하에 만든 인공수로라니... 모세혈관처럼 연결되어 있어 그 길이가 무려 5천 킬로비터가 넘는다.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불가사의 공정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번 답사기에는 오아시스 도시를 탐험했던 탐험가와 학자들, 그리고 이들이 도굴하고 훔쳐간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을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동력은 제각각일 터다. 고고학자, 탐험가 등 입장에 따라 지적 호기심, 금전적 욕망, 명예욕 등 다양하겠지만, 타국의 문화재를 제멋대로 떼어내 가져가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내심이야 어떻든 명분은 문화재를 보존할 소양이 안되는 나라에서 훼손되느니 선진국인 제 나라에서 잘 보관해 주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협의 하에 서로 납득할 만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주로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도굴이 심했는데, 꽤 놀라웠던 것은 19세기에 일본도 서역 탐험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속내가 학문에 비중을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외에도 실크로드의 실질적 상인이라고 살 수 있는 소그드인, 불경 편찬에 절대적 역할을 했던 쿠마라지바, 신라와 교역을 했다는 증거로 보여지는 키질석굴의 장식보검 벽화, 그리고 키질석굴의 엄청난 입장료(키질석굴의 입장료는 한화로 10만원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복궁 입장료 3천원이 너무 싸다며 3배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막이 없는 나라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이들이 있다. 모래라면 진저리를 치는 나도 사막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의 설명과 사진을 보니 쿰타크 사막에 앉아 물결치는 모래 언덕과 끝없는 지평선, 그리고 천산신비대협곡의 한가운데를 맨발로 걸으며 자연의 경외감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불교와 이슬람의 종교, 동.서문화가 만나는 곳. 
저자는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냐는 물음에는 투르판이라고, 어느 '오아시스'가 매력적이냐는 물음에는 쿠차라고, 어디가 제일 '인상 깊었냐'는 물음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간 일이라고, 어느 코스가 제일 '감동적'이었냐는 물음에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천산산맥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오아시스 도시는 각각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고 사막을 한가운데 놓고 발달한 지역적 특성이 잘 살아 있어서 답사지로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저자는 이 책이 여행자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현장에 가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 유물.유적을 실감 나게 묘사해 현장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새로운 시각의 일깨움을 통해 유익한 독서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바람을 갖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세 가지가 충분히 전달 되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답사을 넘어 역사를, 과거에 살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터전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좋았고 즐거웠다. 
 
  
좋아하는 시인 이상은의 시가 나와 남겨놓는다. 
 
날은 저물고 기분이 울적하여
수레 몰아 높은 언덕에 올라보니
석양은 한없이 좋기만 한데
단지 아쉬운 것은 황혼이 가까운 것이다
(등낙유원 登樂遊原) 

  
 
 
 
[책 속으로] 
  
61.
답사는 찾아가는 유적지 못지않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적지가 처한 지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186.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229.
색色이란 형태가 있는 것을 말하고 공空이란 실체가 없고 변해가는 것을 말하지만 결국은 둘이 같다고 말한다. 이를 쿠마라지바는 개념화시켜 이렇게 번역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여덟 글자 속에 삼라만상의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261.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 사라지면서 한편으로 남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그 폐허에서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그 나름의 또 다른 종교 감정이 아닐수 없다. 
 
388.
티베트인은 신앙의 힘으로 버티는 느낌이다. 오체투지의 인내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이에 반해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 사람들은 춤과 음악으로 인생을 위로한다. 그런가 하면 차마고도 사람들은 종교고 가무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생존의 시간에 충실하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일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느 것이 더 낫고 부족하고가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자연조건에 맞추어 사는 인생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현대 도시인들은 이 세가지에다 문명이란 복잡하게 뒤엉킨 삶을 영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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