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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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공간의 의미를 짚어본다. 
기후, 문화, 변종에 의한 환경과 유전자 융합의 변화를 건축, 조경, 미술(예술), 가상 공간까지 아우르며 고대와 현재에 걸쳐 인문학적 시선으로 공간의 역할과 의미를 엮는다. 
 
인류의 집단 생활과 농사를 시작으로 언어가 발생하고 도시를 형성함으로써 집단의 크기를 키워 도시국가가 세워짐과 함께 문자가 발명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문명이 탄생한 이유, 동서양의 두 문화가 다른 특징을 갖게 된 까닭, 기후로 인한 밀과 벼의 재배 방식 차이에 따른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 발생, 기후가 건축에 미치는 영향, 농사 방식에 따라 다르게 발전한 건축 양식 등 건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넓은 시선으로 차분히 한 걸음씩 공간에 접근한다. 
 
저자는 서양 문화는 절대성과 수학으로, 동양 문화는 관계와 비움으로 문화의 성격을 설명한다. 서양의 건축은 좌우 대칭성을 가지고서 한 방향의 축을 따라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면, 동양에서는 많은 경우 주변 환경에 맞추어 좌우 비대치성을 가지고 자연 발생적인 형태로 증식하듯 평면이 구성된다. 체스와 바둑의 예를 들면서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라면, 동양은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음을 설명한다. 이처럼 서양은 구분과 경계, 규정, 기하학적 공간 구조, 직선, 벽의 건축이고, 동양은 융합과 조화, 유동적, 흐르는 듯한 성격, 관계 중심 사고방식, 곡선, 지붕의 건축이라고 정리한다.  
 
101.
동양에서의 비움의 의미는 단순히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양에서 비움은 창조의 시작이다.

  
 
 
산업 혁명 이후 건축의 변화를 재료적 측면의 강철 도입과 기계적 측면의 엘리베이터를 꼽으며 현대 건축을 리드한 대표적인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언급한다. 
 
미스 반 데어 로에
1기는 벽돌 시골집(서양식 공간감), 2기는 기둥 구조를 도입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동양식 공간감), 3기는 허블하우스(서양+동양), 4기는 판스워스하우스(완전한 동양식 공간 주택). 이렇듯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철과 유리를 적극 도입하여 새로운 문화적 변종을 만들었다.
 
르 코르뷔지에
근대 건축의 5원칙(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리본 수평창)을 정리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변화를 보자.
서양 전통을 계승한 1기(미니멀한 공간 연출) 빌라 바크레송, 기하학의 잔재가 남아있는 빌라 사보아, 3기 빌 오스너 빌딩으로 자유곡선 평면의 등장, 사각형을 깨뜨린 4기 카펜터 센타 등 그의 건축 또한 동서양의 융합된 형태를 볼 수 있다. 단, 르 코르뷔지에 본인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설명할 때 동양의 영향에 대해 언급한적은 없다고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건축에는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양식으로 지어지는 국제주의 양식이 생겨났는데, 그 이유는 지역 문화를 배재한 상태에서 철근 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유리 같은 기술만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국제주의 양식에 염증을 느끼는 건축가들이 등장한다. 
 
루이스 칸
유대인이었던 루이스 칸은 유대민족의 전통 문양을 살림과 동시에 기하학과 여백의 미를 융합했다. 그의 성취라면 20세기 전반을 거치면서 사라졌던 서양의 전통 문화유전자를 복원하여 사용했다는 점이다.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자연과 건축의 입체적 구성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그의 건축은 벽에 의한 건축이며 처마 공간이 거의 없고 경사 지붕도 없다. 그는 콘크리트를 사용하는데, 큰 창문과 복잡한 진입동선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자연과 교류한다는 면에서는 동양적인 성격을, 벽 구조를 가지면서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평면과 단면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307.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금 해 주는 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라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치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안도 다다오)  

 
 
 
포스터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에 들어서면서 건축에 철학을 적극 도입한 해체주의는 건물이 정작 인간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아 실패하고 이후 네오 모더니즘을 거쳐 현재에는 IT와 건축이 접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컴퓨터 모델링상의 모습을 실제 현실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 캐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그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나 동대문 'DDP'는 IT와 건축이 협업한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숫자를 입력해서 만큰 디자인) 프로세스 중에서 컴퓨터에 의해 연산되는 과정에는 수학적 개념이 접목된 알고리즘이 있는데, 건축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축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건축을 넘나드는 디자이너, 인공지능과 건축의 조화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협업을 이루고 있다. 
 
3D 프린터로 건물을 지으면 기존의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IT의 발전으로 SNS가 활발해지면서 이를 통한 가상 공간은 넘쳐난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유전자의 등장으로 우리는 아날로그와의 융합이 필요한 때다. 저자는 제약을 극복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융합할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며,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읽은 저자의 앞선 세 권의 책이 건축에세이에 가깝다면, 이번 책은 인문학적 시선으로 접근했다는 느낌이 크다. 인류사 전반의 변화, 시대와 가치관에 따른 공간이 갖는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바쁜 시간에 쪼개 읽어 아쉬웠지만, 여유롭게 읽을수록 이 책을 즐기기에 좋을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불변의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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