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 위험한 수술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전은 아버지의 담당의인 미슐레이 박사를 만나서 수술 이후 아버지의 성격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했냐고 묻는다. 그는 스테파니가 '행복한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그것이다. 얼마를 더 살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가장 마음 아프게 읽었던 부분은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는 두 부녀의 대화였다. 스테파니는 아이(자식)가 없다면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수전은 존경했던 한 여성이 낙태 수술 이후 평생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임신을 중지한 자신의 삶을 회복시키고 젊은 페미니즘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고압적인 독재자이자 폭력자일 뿐만 아니라 가정을 버렸다는 사실이, 수전은 아이러니하다. 이 대화의 연장선에서 수전은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했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이처럼 수전은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그의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며 아버지가 아닌 인간 스테파니(스티븐) 팔루디를 바라본다.
25장의 제목이 <탈출>이다. 아마 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만, 나는 문득 수전은 스테파니를 규정짓는 것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수전은 치매는 자아의 해체이자 정체성의 사망이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스테파니로서는 말년에 앓았던 치매로 인해 그녀를 평생 괴롭혀온 피해망상과 과거의 현실들, 외면하려 했던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까닭은 단순히, 성전환자인 아버지를 페미니스트인 딸이 들여다본다는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헝가리 근현대 역사, 그 안에서 유대계 헝가리인들이 겪는 민족 정체성 혼란과 배신감, 트랜스젠더들의 성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고통 그리고 수술의 과정에서 오는 위험(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 등 일반적으로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스테파니 팔루니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수전 팔루디의 필력이 만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부녀의 티격태격 하는 정다운(?) 말다툼이 웃음짓게 하고, 무겁게 누르는 역사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호기심을 넘은 진지한 궁금증 혹은 숙제 비슷한 고민 몇 가지가 생겼다. 트래스젠더, 페키니즘의 고정관념을 접어두고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