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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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께서 책마다 쓰신 서문과 발문 모음집.
어느새 9주기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던 감정이 떠오르면서 책을 펼치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전작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작품을 읽었기에 글을 읽고 있으니 새록새록 내용들이 생각난다.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마흔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어떻게 그토록 많이 쓸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다작을 해오셨다. 서민과 여성의 삶, 성차별에 대한 시선, 산업화로 접어들면서 사그라드는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길게 혹은 짧은 꽁트로 담아내셨다.
(불현듯 글쓰기를 늦게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던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9.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집 밖에서의 일이 더 많이 있고, 그 일은 점점 확대되어 가는데, 나는 그들을 보살피고 기다리는 게 전부고 그 일이나마 하루하루놓쳐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나도 뭔가 나만의 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같이 열정적인 여자가 계속 그 일정을 가족에게만 쏟는가면 종당엔 가족관계를 지옥으로 만들 것이 뻔했다. 
('장밖은 봄' 서문에서}

 
 
<휘청거리는 오후>로 처음 신문연재를 하셨을 때 당신은, '나에게 집요한 간섭이 되어 작용한 것은 신문소설이란 형식이었다. 다음 회를 기다리게 끝은 맺는다는 잔꾀 같은 건 처음부터 염두에도 두지 않았지만, 어떻든 8장 미만에서 딱딱 호흡을 끊어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당한 괴로움이었다. 이런 고통은 나의 체질과 역량과 다분히 관계가 있는 개인적인 고통일 뿐이지 신문소설 작가의 보편적인 고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생경한 경험을 토로하기도 하고, 자신의 글이 '또 하나의 책을 내면서도 이것이 이 땅의 문학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활자 공해에 보탬이 되지나 않을까 싶어 이리저리 눈치 보인다 ('배반의 여름' 서문에서)'는 걱정을 하시기도 했다. 서문 혹은 발문에 자신의 글이 활자 공해가 되는 것을 자주 언급하시는 것을 보아서 쓰신 작품이 세상에 어떻게 보여질까,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우려를 계속하셨던 것 같다.  
 
소설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 등을 통해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억압 관계, 결혼 제도에 있어서 남녀 평등에 대한,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문제들을 짚어내고 계신다. 
 
52-53.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이런 억압의 관계만은 별로 문학의 도전은 안 받으면서 보호 조장돼왔던 것 같다. 도전은 커녕 그런 관계롤 비호하고 미화하는 것들 편에섰다는 혐의조차 짙다. 그렇다고 그 까닭은 문학하는 사람이 남자가 여자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것들은 자기가 두둔하고 있는 쪽뿐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쪽한테까지 자기편이란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아름답고 낯익은 미풍양속이란 탈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내가 감히 그런 것들에게 싸움을 걸어보려 했던 것은 내가 여자라는 것과 무관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고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이것으로 끝난 얘기는 아니다. 집요하게 되풀이 시도해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회성을 무시할 수 없는 신문소설에 담기에는 너무 줄기찬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하는 동안 내가 접할 수 있는 독자의 반응이란 목청 높은 비난 아니면 냉랭한 무관심이었다. 고독한 작업이었다.
('살아 있는 날의 시작' 발문에서) 
 
68.
내가 이 소설을 통해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혼자 살아도 행복할 수 있나 없나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평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결혼이 과연행복할 수 있나 없나라는 내 딴엔 좀 새로운 문제였다. 

 
'고독한 작업이었다'라는 말씀이 콱 박힌다. 어떤 심정이었고, 쓰는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가늠이 된다. 지금도 맘충을 미롯한 혐오 발언이 빗발치는데, 1980년대에야 말해 무엇할까. 
 
인상적인 서문(발문)을 꼽아본다. 
 
먼저,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이 책은 물론 읽었고, 발문 역시 토막토막 기억이 난다.
선생은 전쟁의 비극이 아닌 풍요의 비극을 쓰고 싶다하셨다. 급속도로 수직상승을 한 경제성장의 안정과 풍요가 얼마나 냉혹한 이기심과 배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래서 수지가 특별한 악인이 아닌 자칭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악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또한 가족이란 혈연관계인 동시에 오랫동안 공들인 관계라는 것, 그러므로 같이 산다고 해도 서로에게 공들인 경험이 없다면 결속은 불가하는 것을,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못지 않게 우리를 갈라높고 있는 풍요의 몫이니 그것을 넘어서 정말 있어야 할 삶의 모습을 꿈꾸기를 바란다고.
(쓰면서 또 울컥한다. ) 
 
61.
오목이가 너무 불쌍해서 상심한 독자가 있다면, 오목이를 우리 모두가 그동안 좀 더 잘살기 위해, 좀 더 안일하기 위해 짐짓 외면하고 망각한 것들의 편린으로 봐주기 바란다고.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어 썼다는 <부숭이는 힘이 세다>.  
'기승전입시'인 요즘 아이들. 초등부터 고등까지 학교를, 학원을 왜 다니냐고 물어보면 대학가기 위해서라는 답이 대다수이다. 다섯 살 아이를 두고 사립초등학교 입학설명회를 다녀와 볼까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움의 기쁨 따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걸까싶어 종종 우울하다.
 
117.
스포츠보다는 일(노동)으로 터특한 힘, 교과서보다는 자연에서 배운 폭넓은 앎의 힘, 경쟁에 이겼을 때의 교만함보다는 화합했을 때의 겸손한 기뿜의 힘, 허세가 아닌 진정한 자존심의 힘, 사랑과 우정의 힘 등 경쟁사회에서 잊혀진 근원적이고 소박한 힘을 깨우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개정 증보판 2002)> 서문에서 초판본에 썼던 "원태 간직하거라. 엄마가"라는 당신의 필적으로 보고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는 선생. 이제는 죽어 세상에 없는 당시 열다섯 아들에게 보냈던 마음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25년의 세월, 이렇게 선생은 글을 쓰며 버텼던가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창밖은 봄> 서문. 
1977년 썩 늙지도 않은 나이에 작가 자신이 쓴 박완서 연보를 서문으로 썼다. 서문 말미에 대작을 쓸 자신은 없고, 늙을수록 더 나은 작품을 쓸 자신은 있으며, 티 안나게 조촐하고 다소곳이 늙을 자신도 있다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이며, 내가 자신할 수 있는 나의 늙음은 무엇일까.
한참을 그저 창 밖만 바라봤다.
 
 
이렇듯 세상을 통찰하는 눈이 있었기에 여러 사회 문제들을 짚어낼 수 있었을테고, 용기가 있었기에 글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힘을 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159.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처음 쓴 작품이 당선되어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괜히 잘난 척 하는 것 같고, 집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마음 상태이건만 그것조차 없었다고 하면 꼭 거짓말을 시키고 난 것처럼 떳떳지 못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건 집념하곤 달랐다. 그럼 그건 뭐였을까.
(‘목마른 계절‘ 발문에서) - P46

욕심이란 조만간 부끄러움을 맞게 돼 있다는 것쯤은 각오하고 있지만(후략).
(‘목마른 계절‘ 발문에서) - P48

전쟁과 굶주림의 공포처럼 지긋지긋한 건 없다. 그때 인간성이 이만큼이라도 덜 파괴된 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피비린내가 휩쓸고 간 들판에서도 부드러운 미풍은 들꽃을 피우고, 짓더미가 된 마을에도 장독대는 의연히 남아 있다는 걸 눈여겨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목에 핀 꽃‘ 서문에서)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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