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부터, 詩作 - 테드 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 지음, 김승일 옮김 / 비아북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시인 테드 휴즈의 글쓰기 지침서다. 이 책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BBC의 프로그램 <듣기와 쓰기>를 위해 작가가 직접 쓰고 준비했던 내용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하루에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해 아홉 번의 지침을 내놓는다. 동물, 날씨(바람, 비, 안개), 사람, 생각하는 법, 풍경, 소설 쓰기, 가족, 달 등 우리가 일기에서 써봤음직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을 알려준다.
내가 기억해 두려고 하는 부분은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일', 작고 단순한 대상에 집중하는 정신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실천은 집중한 다음, 정해진 분량과 시간 내에 대상을 묘사하는 운문 형식의 글을 써보는데, 서술은 세밀하고 과학적으로 자세하게, 가능한 한 대상을 모든 방면으로 확장하고 비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시로 D.H.로런스의 <모기>를 들어본다(전문은 길어서 조금만).
언제부터 그런 기술을 구사하셨지,
무슈?
그렇게 긴 다리로 뭐든 버티겠어?
그렇게 갈래갈래 찢어진 다리로,
뭐 그렇게 기고만장해?
그건 네 무게 중심을 위로 들어 올려서
나한테 착륙할 때 공기처럼 가볍게
무게 없이 서기 위한 건가, 이 유령아?
여기까지만 읽어도 관찰력과 묘사가 좋음을 알겠다. 재미도 있고.
또 다른 부분은 처음부터 풍경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으니 자신이 경험한 것을 독백으로 써보라고 한다. 여행의 경험을 곱씹어봐야겠다.
작가는 시 뿐만 아니라 소설 쓰기에도 지침을 내놓는다. 먼저 단순한 글쓰기. 상상력을 풀어놓고 펜으로 빠르게 따라가라(제2의 천성이 될 때까지 계속 해보라는데, 계속 한다고 천성이 되기는 하는건지). 사물, 사람, 장소에 대한 글쓰기의 모든 핵심은 그것들이 실제 거기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내고, 독자들을 위해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는데 글쎄... .)
소설을 쓰는데 올바른 방법은 없고, 오로지 재미있게 쓰는 것 뿐. 재미있는 글은 자신이 진심으로 관심있는 것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단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단지 호기심을 느끼는 것과 자신의 삶의 일부분인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학창 시절에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지금은 묵직한 에세이와 시를 쓰고 싶다. 그래서 틈이 나면 글쓰기 책을 뒤적이곤 하는데 마음을 담아서 전달하는 시는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누구한테든 보여줄 수 있는 시 한편을 완성할 그날까지. 써! 보자.
본문에도 인용됐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
밤의 비 그리고 낮의 비 그리고 밤의 비가
그친다, 창백하고 숨 막히는
새벽빛에.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본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나무들 아랫길에는 새로운 자줏빛
국경이 생겼구나
경계의 안쪽에는 밝고 옅은 잔디밭:
11월이 남긴 잎사귀가 전부
떨어져버렸네, 개암나무와 가시나무 그리고
더 커다란 나무들로부터. 이곳의 나무들은
죽은 잎사귀는 떨어뜨리지 않았다
회색 풀밭, 녹색 이끼, 번트오렌지 고사리 위에서,
바람은 다시 불어;
물푸레나무가 벗어버린 어린잎들
길 위에 드문드문 깔아놓았다
놀다가 거기 새겨지기라도 한듯한
작고 까만 물고기처럼.
무수히 많은 나뭇가지에 아직 힘겹게
헐벗은 채 매달려 있는 것은
돌능금 나무 한 그루의 사랑스러운 열두 알
노란 사과들.
그리고 각각의 잔가지들이 골짜기 속으로 다시
떨어뜨리는, 셀 수 없는 크리스털
어둡고 밝은 빗방울.
비 온 뒤 (에드워드 토마스)

대상을 정하고 나면 길이를 지정하고 제한 시간을 설정하는 것이 좋다(10분 남짓이 이상적인 최소치). 이렇게 인위적으로 제한선을 조성하면 긴장감이 생기고, 각자의 소질을 깨치는데 도움이 된다. 서두를 것을 강요하면 우리의 진부한 버릇들이 무너지게 되며, 모든 것을 재빨리 표현하면서 평소에는 잠재되어 있던 수많은 것이 저 스스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장벽을 부수고, 죄수들을 탈옥시키자 - P34
주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잡고, 가급적이면 구체적인 일화에서 가져오는 것이 좋다. - P69
사람에 대한 상상적 글쓰기를 할 때는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제약을 두지 않음으로써 글쓰기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시를 읽고 쓰는 일의 즐거움이나 치유 효과에 대해 말할 때면 이 방법이 제시된다. - P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