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펼쳤는데 전혀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 안동의 '원이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 자궁을 의미하는 항아리관, 배 모양의 관 등 옛사람들이 죽음과 관을 어떤 의미로 받이들이고 상징했는지를 시작으로 불, 음료, 음악, 색채, 문신, 젓갈 등 다양한 소재로 흥미롭게 접근한다.
지금은 금기로 되어 있는 마약을 고대에는 음료나 약으로 사용했다는 점, 3천년 전에도 침을 놓았다는 사실,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미라의 몸에 새겨진 섬세한 문신, 특히 동양에서 더 발달된 귀이개, 고고학을 이용한 억지로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일본, 토양에 따라 유물의 보존 여부 등등.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장 이후부터는 고고학의 입장과 관점에서 보는 전쟁과 제국주의, 문명, 그리고 미래 등을 무겁지 않게 다룬다.
무엇보다 공감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아쉬웠던 부분은 과거를 밝히기 위해 유적을 파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책에서도 석굴암에 대해 언급하는데,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납득이 된다. 우리의 호기심과 욕구는 끊임없이 보고픈데, 그러면 그럴수록 유적지와 유물은 손상되고, 보존하기 위해서 파헤쳐야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고학 발굴이란, 일종의 유적 파괴 행위이다."
(김원룡)
책에서 저자는 '고고학자에게 진실은 유물에서 시작해서 유물로 끝난다'고 말한다. 최대한 상상력을 억제하고 논리적으로 증명된 근거에 의해서 결과를 내놓아야하는데, 현실은 적잖이 왜곡되는 부분들이 있다. 학자 개인의 명예욕과 국가의 이기는 한걸음 뒤로 물려놓고, 자료에 의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면 분쟁도 한결 덜 할텐데, 안타까운 점들이 많다.
앉아서 손가락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고고학은 고리타분할 수 있다. 그리고 유물의 진실에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빠름빠름'과는 정반대의 학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역사와 유물을 애정하는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미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말은 제쳐놓자. 그저 수 백, 수 천년 전의 사람들이 걸었던 땅을 내가 걷고, 그들이 세워놓은 돌벽을 만질 수 있고, 그들이 남겨놓은 시대를, 2019년을 살고 있는 내가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하고 경이롭지 않은가.
이 돌이 수백년 전 그 돌이라니... 이 나무가 교과서에 나왔던 그 할배들이 지나쳤던 그 나무라니... 산성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찌릿함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건 좀 다른 맥락이지만 지인이 중국을 통해 북한의 국경? 경계선? (용어를 정확히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을 살짝 밟은 경험이 있다는데,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어떤 감정인지 알겠더라는.
여튼 나는 그렇다는...
고고학 에세이를 읽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쉽고 재미있다!
[책 속 문장]
44.
영원을 향한 인간의 마지막 바람과 체념이 녹아 있는 기념물이 바로 무덤이다.
87.
지혜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라는 것에 사유, 성찰, 그리고 자기의 절제가 더해져야만 지혜는 생겨난다.
210.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개개인 학자의 성격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바로 국가 권력에 앞장서서 다른 사람을 억압할 때에 암묵적인 동조를 하고 따라갔던 그 모습을 비판해야 한다.
235.
이어져야 하는 건 이어져야 할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의미는 퇴색되고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새로워야 한다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접할 때면 괜히 씁쓸해지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전쟁 같이 소비하는 요즘이라 그런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 또한 절실해진다.
277.
많은 사람들은 고고학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를 밝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목적은 역사 기록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30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