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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평점 :
《THE PEDANT IN THE KITCHEN》
이렇게 허당기 가득한 까칠함이라니...... . ㅎㅎ
줄리언 반스 작가의 사진을 보면 꾹 다문 입에 옅은 미소를 띈, 적당한 이마의 주름은 영국 신사 느낌이 가득하다.
그동안의 글들도 그렇지만 이 책도 썩 말랑말랑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투덜거림 작렬하는 이런 유쾌한 내용은 내가 읽어본 작가의 책 중에서는 처음인 듯 하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다시 보자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의 불평이 들리는 것 같다.
31.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것과 쓸 만한 요리책을 집필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후자는 소설처럼 창의적인 공감 능력과 정확한 표현력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는 소설로 쓸 만한 내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요리사들에게는 요리책으로 쓸 만한 것이 없다.
레시피에서 계량이나 (과)채소의 크기를 언급할 때 한 '덩이'라든가 포도주 한 '잔', 혹은 '중간' 크기의 양파에 대해 불만스러워(불안하니까)하는 부분에서는 폭풍 공감을 할 수 밖에. 엄마나 할머니께 요리(라고 하기엔 심하게 민망함)를 배운 나로서는 늘 불만이였던 것이 계량이었다. 한 국자, 한 컵 등 기구의 사이즈도 모두 다르건만 두 분의 계량법은 늘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럴 수 밖에. 두 분은 부엌과 부엌 내 모든 용품을 공유하셨으므로.) 그 애매한 계량이 내 요리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둘러댔기에 작가의 불만에 동의!를 외친다.
의외이고 조금 놀라웠던 건 작가가 백 권에 육박하는 요리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무엇 때문에? 심지어 주스기도 없는데 주스책은 왜? 읽다보니 요리책을 선택함에 있어 실패를 많이 한듯 하다. ㅎㅎ 그래서 독자들에게 요리책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74.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디저트가 위의 사항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빵이 그렇다. 익숙한 두세종류를 제외하면 빵이 아니라 떡이 되어버린다.
78.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시간도 문제다.
내 말이...... . 레시피대로 시간을 맞춰도 늘 넘치거나 모자란다. 그래서 감으로 하면 또 폭망. 결국은 내가 왜 이걸하고 있나. 이 시간이면 책 두 권은 읽었을 것을... 이러고 있다.
101-102.
요리책의 책장들에(...) 가지각색의 잡다한 자국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 책에는 명예다.
나의 요리책 책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소박한)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 요리의 흔적이 남아있을 만큼 명예로운 책은 얼마나 되려나? 작가가 소장한 요리책의 1/10 정도만 가지고 있는데도 나는 크게 활용을 못하고 있다.
110.
최고의 책은 저자를 알지도 못하는 독자들까지 저자의 친구라고 믿게 만드는 책이다.
138.
요리한다는 것은 법석 떠는 과정을 거쳐 불확실성을 확정성으로 변형시키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요리를 한다고 부엌에서 한참 분주하게 움직이다 뒤를 돌아보면 뭔가가 한가득 벌려져 있다. 정리를 하고 완성품을 식탁에 올리면! 애걔...... . 이 노고의 과정을 먹는 이들이 알아줘야하는데 말이다. ㅎㅎ
164.
요리는 즐거움이 전부여야 하지 않을까?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할 기대감에서 오는 즐거움, 지나치게 자축하지 았는 흐뭇한 회상의 즐거움. 하지만 그런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가.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놓고 메인 요리인 포르치니 라자냐를 를 식당에서 주문 후 굽기만 한 후 자신이 요리한냥 시치미 떼는 줄리언 반스는 상상이 안된다. 심지어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친구에게 자신만만하게 알려주는 모습이라니......
또한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할 예정도 명확하지 않은 주방용품을 버리지도 못하고 창고에 던져놓는 모습과 요리도 요리지만 아름답고 효율적인 주방을 꿈꾸는 작가의 모습은 여느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난다.
꿈의 부엌을 소망하지 말라. 그러한 부엌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는 요리를 해야한다는 스트레스와 요리를 망쳐도 변명거리가 없어 곤란할 것이니. 큭큭
줄리언 반스가 요리라니...... . 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포개졌다. 요리를 통한 사람에 대한 애정, 도덕성, 추억, 소통 등 오래 전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안에 나와 함께 했(었)던 이들이 떠올랐다. 이번 주말에는 '그들'을 초대해 오븐에 닭이라도 구워야겠다.
좋은 요리란 일상생활의 간단한 음식을
성실하게 만드는 것이지,
뚜렷한 목적이 없는 진수성찬이나
진기한 요리를 전문가처럼
훌륭히 조합해내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