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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소유하려 한다.
/ 마이클 소마레 (파푸아뉴기니 총리)
책의 뒷표지에 보면 김중혁 소설가는 도서관 사서가 이 책의 분류 작업을 할 때 고생깨나 할 것 같다고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윈과 월러스를 언급하며 진화론과 새를 통한 인간의 사회 변천사를 다룬 인류사, 플라이 타잉이라는 한 분야의 오타쿠들의 세계, 명망있는 음악학교 학생이자 플루트 연주자인 19세 청년의 범죄, 그에 대한 진실과 회수되지 않은 새를 찾기 위해 모든 것들을 쫓는 미스터리 탐정물 등 이 책에는 여러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은 에드윈 리스트라는 19세 청년이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299점의 새(박제)를 훔쳐갔다는 사실과 1년이 지나서 체포됐지만 집행유예 12개월에 그친 그의 재판, 이후 에드윈의 범행과 재판에 대한 진실이 큰 줄기다.
에드윈은 어린시절 우연히 플라이 낚시 타잉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에 매료된다. 타고난 재능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플라이 타잉에 점점 깊이 빠져들면서 '진품(깃털)'을 향한 욕망은 커져만 간다. 그러던 중 트링박물관에 가장 많은 수의 조류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급기야 박물관 유리창을 깨고 훔쳐 내기에 이른다.
먼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박물관의 소장품을 훔친 에드윈을 논하기 전에 인류의 탐욕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사람은 여러 이유로 자연을 그냥 두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발전, 지적 호기심,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 상업주의 등 명분도 각양각색이다. 장신구를 치장하기 위해,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 한겨울 따뜻함을 위해, 이제는 취미를 위해서 가죽을 벗겨내고 깃털을 뽑아댄다. 그렇다면 에드윈에게 거리낌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자신의 잘못은 박물관 유리창을 깬 것 뿐이라는 그의 말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으려나.
열대에서 사투를 벌여가며 수만종 표본을 수집한 월리스 조차도 '살아있는 생명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인지도.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2007년이다. 그런데 박물관 유리창이 깨져도 달려오는 경비원 한 명 없고, 심지어 다음날 깨진 유리창이 발견됐음에도 소장품 분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는 박물이라니! 에드윈은 절도 후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그것도 박물관에서 사용한 학명 그대로.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를 하고 연주 연습을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어 벽장에 깃털을 보관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읽는동안 복장이 터진 건 나만일까.
에드윈 리스트. 이 사람에 대한 진실 여부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다. 다만 5년간의 정황으로 유추만이 가능할 뿐.
시작은 플라잉 타이였다. 진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래서 싹튼 탐욕.
"가짜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맥이 빠지잖아요. 여기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예요. 저도 그렇고요.(p349)"
하지만 에드윈은 그 외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정 상황과 새로 구입해야 하는 플루트 등 돈이 필요했고, 깃털을 판매한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여행 등 여가를 즐긴다.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에드윈은 절도 직후에도 잠시나마 경찰에게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 '훔쳤다'는 행위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 덕분에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아 집행유예를 받아냈지만.
297.
"저는 제가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저는 도둑이 '아니예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요. 지갑이 떨어져도 저는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지갑에 신분증이 들어 있으면 어디 찾아줄 만한 곳에 갖다줄 거라고요."
318.
에드윈은 자기가 물건을 훔쳐 온 곳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고, 그 기관은 이제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 발생 5년 후, 저자와 에드윈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 사람이 플라이 타잉과 플룻 연주에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듣는 사람은 납득이 안되지만 자신만의 논리가 구축되어 있고, 타인을 읽는 눈이 남다르다. 첫 만남에 자신을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가 유도하는 질문에 맞는 행동을 즉흥적으로 해낸다. 뿐만 아니라 사교성이 부족하고 친구가 없는 롱의 심리를 이용해 그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가담시킨다. 경찰이 현장에서 찾아내어 회수된 새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에드윈. 그는 어떤 사람일까? 에드윈과의 인터뷰와 롱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훅 올라 온 분노는 내 몫인가 보다.
189
그가 훔친 새들의 가치는 거의 100만 달러에 달했다. 게다가 그는 밀거래로 멸종 위기에 처한 새들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 협약을 어겼다.
이제 남은 이들은 구매자요, 방관자였던 사람들.
그들은 에드윈이 온라인에 깃털 판매를 올리자 고가로 구매를 했다. 그를 칭송해마지 않던 이들이, 그가 체포된 후 비난의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저자가 남은 깃털 회수를 호소하기 위해 글을 올리자, 불편함을 드러내고 게시한 글은 삭제한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사람들. 결국 내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행동을 누군가 대신해서 거기에 결과물만 득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이들의 행동이 불편한 건, 그저 나쁘다고 생각해서만 일까?
318.
플라이 타이어들은 자기들이 가진 가죽이나 깃털이 박물관 것이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큐레이터들이 주장하는 사라진 가죽의 개수는 허수에 불과하다며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나는 누군가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해 주기를 바랐다.
저자는 이 사건을 지식이냐 탐욕이냐로 정의했고,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지식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 중 하나이지싶다. 호기심이 남달랐다는 월리스. 그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그를 말레이제도로 향하게 했고, 학자로서의 욕망이 살아있는 생물을 표본화 시켰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알 수 있다는 오만함.
그 한계의 끝이 있기는 한건가......?


출판산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