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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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 오테사 모시페그


1964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일주일 앞둔 금요일.
스물네 살 아일린 던롭은 X빌에 살고 있고 십대 소년들을 위한 민간 청소년 교정시설인 무어헤드에서 비서 업무를 맡고 있다.

어머니는 아일린이 열아홉 살에 돌아가셨고, 언니는 건너 건너 지역에서 어떤 남자와 동거 중이며, 아버지는 전직 경찰관으로 교회를 갈 때를 제외하면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알콜중독자다.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언니 사이에서 편애를 당했던 아일린. (정작 술꾼 아버지의 뒷치닥거리는 언니가 아닌 자신이 하고 있건만 아버지는 여전히 아일린에게 독설만 퍼붓는다.) 자신은 누구에게도 시선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라고 여기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교도관 랜디를 짝사랑할 뿐만 아니라 스토킹까지 하고, 그를 상대로 야릇한 상상을 즐긴다. 종종 사소한 절도를 재미로 여기며, 죽이고 싶지만 죽기를 바라지 않는 아버지와 집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며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언제 실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 사흘 전 월요일.
무어헤드 교도소에 새로 부임한 교육국장 리베카. 아일린은 자신과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다른 리베카를 본 순간부터 그녀를 동경하게 된다. 리베카의 친근한 말 한마디 한마디와 사소한 몸짓, 행동에도 혼자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아일린. 이제 아일린의 눈에 짝사랑 랜디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리베카만이 존재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하나 뿐인 친구다.

급속도로 친해진 두 여인. 리베카는 아일린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 초대로 인해 아일린의 운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일흔 살이 넘어 노인이 된 아일린이 자신의 운명을 바꾼 50년 전, 일주일 동안을 회상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젊은 시절 현관문 열고 나올 때마다 두꺼운 고드름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죽게 되는 상상을 하지만 아일린은 늘 살고 싶었다. 아버지를 죽이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아버지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X빌을 떠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자신을 조롱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욕설을 날려주고 싶지만 그저 삼킬 뿐이다.

아일린은 누구에게도 진심어린 사랑과 관심을 받은 적이 없고 누구와도 마음을 나눈 경험이 없다. 그래서 사랑이든 연민이든 그러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대상을 이상화하고 동경할 뿐이다.

유년시절의 정서적 결핍이 이십대의 아일린을 만들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큰 결핍을 겪었음에도 문제 없이 어른이 되는 이들도 있고, 보통의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도 성향에 따라 많은 갈등 요소를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 나약한 자신의 한 부분을 꽁꽁 싸매어 내면 깊숙한 곳에 숨기기도 하는, 제일 마음 편한 사랑이 짝사랑이라고 하니 한번쯤은 해봤음직한, 닮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던 경험.

스물네살 아일린은 방황하고 갈등하는 청춘의 단면 단면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아일린을 지켜보는 독자는 불편하지만 비난할 수 없지 않을까. 조금은, 아니면 살짝, 기억 속 한 귀퉁이에 있는 누군가의 한 때가 떠올라서.


[소설 속 문장]
17.
나는 누구에게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애였다.

36.
세상에 나와 같은 이들, 다들 흔히 하는 말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게다가 소외되고 총명한 젊은이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지구라는 이 이상한 행성의 생물체로 존재한다는 것의 기이함을 의식 또는 인식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쓸쓸했다.

171-172.
X빌에 사는 젊은 여자였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만큼 깊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몰랐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고통에 탐닉할 기회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발달이 심하게 지체되어 있었다.(...) 내 가슴이 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아파야 하나? 갇혀 있고 고통받고 학대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진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오직 나.

229.
아버지가 보기에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딸의 의무가 아닌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다. 나만의 의지가 있다는 증거는 최고의 배반으로 간주되었다.

310.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건, 왜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313.
다 지나고 나면 누가 누구보다 더 힘들었는지 헤아리기 굉장히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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