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와 책만 있다면 - 인생의 중반, 나는 다시 책장을 펼쳤다
임성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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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다"

스캇 펙

제목에 넘어갔다. 그럴 수 밖에. 진심 이 겨울, 담요와 책만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물론 그 옆에 따뜻한 차 한잔 놓이면 금상첨화겠지만.

책을 소개하는 따뜻한 에세이라고만 여기며 첫 장을 넘겼는데, 나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이 책은 다양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소개하며 심리와 정신분석, 사회제도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접근한 에세이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책.

총5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 마음 속 그림자 이해하기>, <흔들리지 않는 중년 되기>, <타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틈' 이해하기>, <외롭지 않은 연대하는 중년되기>,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 준비하기> 이다.

<내 마음 속 그림자 이해하기>

21.

자신의 욕망을 통해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고 진실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젊음의 독서가 성공을 위한 읽기였다면 중년의 독서는 내면의 욕망을 읽어내기 위한 독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독서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곰곰 돌이켜보니 나도 자기계발서나 처세, 성공에 관련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됐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무의식적으로, 물리적인 성공이 전부가 아님을 세월이 흘러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친 건 아닐까한다.

36.

중년은 철학의 시기요, 사유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중간쯤 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자꾸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고통이 내게 말하는 건 무엇일까?' '나더러 어떻게 살라는 것이지?'라고 말입니다.

40.

꼭 필요한 것들만 갖고 살아도 되고, 필요한 것들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음을 말입니다.

49.

어른이라는 자리는 권력을 누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후손을 잘 양성해 보람을 얻는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던 20대. 때론 갖을 수 없고,이룰 수 없어 포기한 건 아니냐는 우스갯 말을 지인들과 나누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포기라면 포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욕심을 냈던 것들이 삶에서기쁨을 누리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터득했기 때문이다.

49쪽의 문장을 읽고 있으니, 엎드려 등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이 해야할 일이라는 루쉰의 말이 생각난다.

<흔들리지 않는 중년 되기>

77.

결국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것이니까요. 행복은 열심히 일한 후 그 대가로 얻어지는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81.

어느 책에서 보니 천국에 가기 위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발견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너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는가?"이지요.

87.

그동안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따라서만 살아왔지만 이젠 '나'를 생각하라고 말하는게 아닐까요. '나'를 느끼지 않은 채 계속 역할에만 묻혀 살면 삶은 메마르고 건조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지치고 의미 없는 날이 계속 됩니다. 무엇보다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여기서 생산적이란 의미와 가치를 생산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매일 구두를 만들며 사는 일의 기쁨, 타인을 즐겁게 하는 즐거움 같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9.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는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어떤 활동, 어떤 공간, 어떤 시간, 어떤 사람 옆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포착해야 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중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너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부끄럼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가까운 가족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가족이라고 해도 가끔은 진심보다는 형식에 더 가까운 적이 있었다는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나의 형식적인 호의에 대해 상대방은 기쁨을 느꼈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타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틈' 이해하기>

139.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사랑에 익숙한 나머지 우리는 직접적인 사랑에는 미숙하고 실패합니다. 그리하여 직접적인 사랑은 포기하고 사랑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쪽을 선택하지요. 그런가 하면 이제 사람들은 사랑도 저울에 달아서 그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합니다.(...) 자신이 표준화된 매력 점수에 미치지 못하면 못난 사람이고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0.

스피노자는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 삶은어떤 상태에 있는지 능력을 키우려면, 좋은 삶을 살려면 누구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60.

스피노자가 보기에 자기를 버리고 오로지 타인을 위해서만 하는 행동은 숭고해 보일지 몰라도 윤리적인행동은 아닙니다. 윤리적인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자, 자기를 보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스피노자가 항상 강조하던 '역량'이란, 자신이 원하는욕망을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 입니다.

183.

당신 가족은 당신에겐 짐인가요? 든든한 힘인가요? (...)

가족 안에서 우리는 독특하고 특별한 개인으로 인정 받고 있을까요? 세상이 붙여준 꼬리표인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오빠, 동생의 역할에 충실하게 산다면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저자('우리는 가족일까'의 저자)는 말합니다. 역할만을 강조하는 가족 안에서는 본질적인 자기실현이 이루어지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더 큰 사람을 위해서는 단절 혹은 출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196.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똑같은 관심을 갖고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또 타인들은 늘 당신에게 해코지 할 생각에 골몰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러셀은 충고합니다

경쟁은 입시를 앞둔 학생이나 승진을 다투는 직장인에게만 있는것이 아닐 것이다. 꽤 오래 전 나보다 연배가 앞선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나도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내 나이쯤 되면 친구도 형편 따라서 유지가 되더라. 대학교 때는 학벌 때문에 친구가 나뉘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면서 경제력이 떨어지면 슬슬 모임에서 안 보이는 친구들이 생겨. 형제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집안 싸움이 나지."

도대체 왜 이래야 할까. '그게 현실이야'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인가. 있거나 없거나 나는 그냥 나고, 살면서 누구나 한두가지 이상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게 마련인데, 굳이 남과 비교하면서 왜 나 사는 것만 팍팍하다고 여기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초등 이전부터 서열화가 생긴다고 하니 결국 어른이 어른으로 잘 살아겠다는 생각 뿐이다.

"쇠가 녹슬어 없이지듯이 질투심은 서서히 내 자신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안티스테네스

<외롭지 않은 중년 연대하기>

210.

그는(피에르 신부)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볼 때, 굶주린 아이들을 볼 때, 잠잘 곳 없는 가족들을 볼 때,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희망을 잃을 때, 우리 모두는 분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짓밟는 걸 그냥 두고 보거나 고통받는 약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공범자가 되는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32.

스위스에서 대형마트는 도시에서 30킬로미터 밖에 짓도록 한다고 합니다. 골목 시장의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요.

이 대목, 어쩜 이렇게 "동의!"를 외치게 하는지.

우리 동네에서도 정말 맛있는 빵집이 몇 군데 있었다. 어느 집은 식빵이, 어느 집은 치아바타가, 어느 집은 브로오슈가 예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군데도 살아 남은 빵집이 없다. 그 빵집들 사이사이로 대형 빵집이 들어서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빵집 뿐이랴. 요즘에는 분식까지 체인화 되어서 손맛 좋은 분식집 찾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자본주의 경제 사회가 다 그렇다는 무책임한 말은 그만하고, 체인점 점주도 영세업자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러한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이 누리는 권력에는 이들을 잘 살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면서.

그리고 나에게, "당신은 어떤 시민이 되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어떠한 답을 해야할지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까지 다른 새로운 삶 준비하기>

249.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이 되려면 그 노동에 희망이라는 가치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하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고 알베르 까뮈가 말했단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그리스의 섬을 취재했다. 그 섬의 무병장수의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섬 주민들의 생활 패턴은 이렇다. 지역적 특성상 오침을 길게 즐기고 오후 다섯시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식사는 섬에서 키워진 식재료를 사용하고, 직접 담근 포도주와 과실주를 마신다. 내 손에 쥐어진 것에 만족하고 욕심이 없이 이웃과 나누니 시기와 질투가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운동이 아닌 노동을 한다. 연령에 관계 없이 약초를 캐기 위해 하루종일 산을 걷는 사람, 생계형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중년의 남성도 바다에서 주는대로 받아오면 그걸로 만족. 별도의 직업이 없는 여성들도 대부분 밭을 관리한다. 100세 시대에 결국 노동이라는 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

책에서는 많은 책들이 언급되는데, 개인적으로 <성장 (러셀 베이커)>, <바늘땀 (데이비드 스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콜드버그)>를 찜!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건진 보석같은 말씀.

"우리는 모두같은 목표, 즉 행복을 추구한다. 진짜 문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이다. 모든 인간은 그간 어떤 시대, 어떤 조건, 어떤 문화 속에서 생활하건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하기 마련이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 매일 아침 새롭게다짐해야 할 이 선택은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그 섬택이 우리 삶의 실체를 결정 짓고 우리를 만든다."

피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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