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책은 왜이리 좋은것인가..
읽고나니 너무 고독하다.






"화내고 싶을 땐 화내는 게 좋아. 그게 정신 건강이라는 거야.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울고 싶을 땐 울고, 웃고 싶을 땐 웃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우린 이상하게도 감정을 억누르는 게 미덕이라고 잘못된 교육을 받아왔어. 물론 이성을 무시해 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다시생각해보면, 울고 싶을 때 울지 않았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산다는 건 자기를 표현하는 거야. 자기를 불태우는 거야. 있는 힘을 다해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태워야 해.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료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부러워. 물론 (하고 목소리를 죽이며) 남한테는 분명히 폐가 되긴 하겠지만. - P30

"나처럼 예술가도 아닌 인간에게 인생이란 그가 살았던 하루하루와 함께 끝나는 거야. 미래라는 게 없어. 죽음이 있을 뿐이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야. 현재라는 건 없어. 그래, 대부분은 현재조차도 없지. 거기엔 과거가 있을 뿐이야. 물론 그건 진짜로 사는 건 아냐.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지 않고 뭘 산다고 하겠어.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에 의해 살고있어. 과거가 그 인간을 결정해버리는 거지. 산다가 아니라 살았다야. 죽음은 단지 표시일 뿐이야." - P41

"어젯밤까지도 결심이 서지 않았어. 너라면 이해해줄지도 모 르지. 시시하면 태워버려난 평생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어. 그리고 딱히 남에게 보여주려고 글을 쓰지도 않았고. 하지만 너한텐, 아냐 됐어. 어쨌든 너한테는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 내가 죽으면, 이야." - P46

그건 자살이 아니었을까. 그 의문이 집요하게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시오미는 스스로 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중에도 끝까지 수술을 하도록 의사에게 부탁했다. 수술이 위험 하다는 것, 그의 체력으로는 생명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는 절대 없다. 만약 내가 억지로라도 반대했더라면. 하지만 그런 후회보다, 어쩌면 그의 강인한 의지가 타인의 어떤 반대보다도 강했을 거라는 상상이 희미하게나마 나의 무력감을 달 래주었다. 그리고 그 회한과 뒤섞여, 맨 처음 들었던 의문, ― 그 수술은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시오미가 고의로 자신을 죽이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 의문이 쏟아지는 햇빛과 반짝이는 순백의 눈 속에서 내 마음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 P55

이건 꿈이야, 깨고 나면 뭐야 시시한 꿈이잖아. 라고 단언할 수있는 그런 일시적인 거야, 내게 결정적으로 주어진 단 한번뿐인 인생이잖아, 인생이란 건 좀 다른 거야, 더 밝고, 더 보람 있고, 더 ‘찬란한‘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꿈에서 절대 깨어날 수 없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깨어날 수 없는 것, 이 악몽과도 같은 꺼림칙한 공포가 그대로 나의 현실임을 나는 끝내 인정할 수밖 에 없었다. - P60

나처럼 병세가 심한 인간은 짧은 기간 뒤에 확실히 죽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현실 외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현 실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기나긴 미망 끝에 싫어도 알게 되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꿈에서 깨어날 리 없을 테고, 그 죽음의 순간은 이제 곧, 틀림없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산 다‘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이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 P60

나는 옛날부터 고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아아, 바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강렬하게 외치고 싶은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강한 의지로 일관된 고독, 영웅의 고독,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 속에 빠져 떠밀려가는 듯한, 이런 나약하고 가련한 고독은 대체 뭐란 말인가. - P63

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서도 가슴속의 고뇌로 마음이 찢어지던 나, 그런 나는 정말로 옛날에 한 점 후회 없이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갔을까? - P63

소녀가 깔깔대고 웃고 어머니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후지키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하며 웃었다. 이럴 때 의 후지키와 나만 알고 있는 그 차가운 후지키는 어찌 이리도 다른 걸까. 왜 내게는 늘 냉담한 가면을 쓰고 대하는 걸까. - P92

왜지? 하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다같이 행동하겠다. 단순히 그 뿐인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하얗게 빛바랜 실의의 기 억이 내 의식 속을 재빨리 스쳐갔다. 후지키를 알게 된 지 아직 1 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오미 선배, 시오미 선배, 하며 무슨 일만 있어도 친하게 다가와 매달리곤 했다. 그것이 가을이 되고, 내가 후지키네 집에 가끔 놀러오면서 어머니와 지에코와도 어 울리게 된 후로 후지키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나와 만나는 걸 피하고, 나와 이야기하는 걸 피한다. 대체 왜일까. 왜 그렇게 내 게 차갑게 대하는 걸까. - P93

"사랑하기 때문이라. 난 말이야, 진짜 고독이란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 어떤 괴로운 사랑에도 견딜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건 영혼의 강하고 적극적인 상태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기도하고 있는 인간의 상태 같은 거지. 기도는 신 앞에서는 갈대처럼 나약한 모습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뺏길 게 없는 한계까지 다다른 강함을 보여주지. 고독이란 그런 게 아닐까?" - P116

"하지만 그런 경우, 사랑의 강함과 고독의 강함은 정비례하지 않아. 상대를 더 강하게 사랑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에게서 상처받을 때가 많거든. 하지만 설령 상처 를 받는다 해도, 언제나 상대보다 더 강하게 사랑하는 입장에서 야 하는 거야.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햇볕에 미지근해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아서, 거기엔 어떤 고독도 없어. 남을 강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고독을 거는 거야. 설령 상처받는 두려움이 있다 해도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고독이란 그런 식으로 단련되어 성장해가는 게 아닐까?" - P117

"사랑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것 아닙니까? 시오미 선배가 절 사랑해주는 것도 제가 선배를 좋아해주기를 기다리기 때문 아닌가요?"
"난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아니에요. 그렇다면 선배가 이렇게 괴로워할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내가 괴로워하는 건…………"
나는 머뭇거렸다. 후지키가 이렇게 날카롭게 몰아세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상대방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란 게 있을까. 나 역시 결국은 후지키가 나를 사랑하게되고, 둘의 사랑이 맺어진 데서 이데아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후지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후지키에게 경멸당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떴는지, 후지키의 얼굴이 창백하게 소나무 그늘에 떠올랐다. - P130

아무 의미도 없는데, - 후지키를 향한 나의 사랑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사랑을 거부한 후지키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사랑도, 고독도, 집착도, 거절도, 끝내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든게 다 허무할 뿐이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후지키, 정해진 길 밖에 걸을 수 없었던 후지키, 그리고 그런 후지키를 그토록 사랑 했던 나. - P146

사랑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이 순간을 후회없이 사는 것이다. 불안이 뭐란 말인가, 죽음이 뭐란 말인가, 이 영혼의 고요함, 이 맑은 행복, 이 음악, 이 달빛…….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이렇게 널 사랑하면서, 지금,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 오로지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만이 남았다. - P164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으로는 지에코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의 고독을 너무 나 소중히 했던 것이리라. 후지키 시노부를 잃은 후 나는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닌 얼음 같은 고독은,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진다 해도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 히 알게 되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지에코는 너무 나 어리고 천진했다. 그리고 나는 지에코를 사랑하면 할수록 고독하고, 고독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랑하는 이 마음의 모순을, 나 자신에게도 지에코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 P207

그녀는 나를 잊었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쁨과 슬픔은 전부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사람은 새로 운 고민, 새로운 괴로움을 위해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걸까. - P246

지에코는 잠깐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옮겼다. 내 마음은 점점 어둡게 가라앉았다. 어제는 지에코를 다시 만난 게 하나의 기적처럼 기뻤는데, 오늘은 모든 게 허무한 반복일 뿐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헤어진다. 사람은 헤어지기 위해서만 만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은 고독에게 너무 깊이 갉아먹힌 것일까. 이런 허무한 두 사람의 밀회 뒤에, 도대체 무엇이 남는 걸까. 내가 군대에 가버리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이다. 가까운 미래에 나는 전장 어딘가에서 비참하게 죽겠지. 그리고 지에코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슬퍼하고, 웃으며 살아가겠지. 산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쇼팽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기차를 타고 고우미 선을 달리는 것이 다.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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