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눈을 뜬 채 사랑하려고 해보았지만 언제나 감게 되었다. 시각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해서 내 감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릴라는 내게서 살짝 떨어져 엄격함이 가시지 않은 눈길로 내 얼굴을 훑었다. - P131
나는 그녀의 고독을, 그녀가 나 없이 걷는 산책로를,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가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을 질투했다. 이제 나는 내 지나친 요구와 전제적인 폭압을 비웃을 줄 알았다. 내 삶의 이유에게도 이따금 나를 떠날 권리를 내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심지어 고독과 더불어, 수평선과 더불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흰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키 큰 식물들과 더불어 나를 배반할 권리까지도 내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집착을 버려야 한다.) - P136
"자기 연이 파랑을 좇아 달아나는 걸 막으려면 연줄을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는 조언 말이다. 나는 너무 높은 곳을 너무 먼 곳을 꿈꾸었다. 내가 살아야 할 것은 내 삶이지 릴라의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붙들어 맨다고 답이 아니다.) - P137
나는 용기와 열의를 갖고 실습에 임했다. 더는 릴라를 찾아 숲으로 가지 않았고, 그녀의 부재가 길어지면 나를 덮쳐오는 무가치와 무의미의 감정에 맞서 싸웠다. ‘점점 더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끼는 걸 거의 즐기게 되었고, 더 웃으려고 내가 난쟁이가 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기 까지 했다. - P137
- 널 사랑해. 하지만 사랑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야. 나는 너의 절반이 되고 싶지 않아. 너, 이 끔찍한 표현 알아?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나?" "나의 반쪽을 못 보셨나요?". 5년, 10년 뒤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심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싶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너를 보면 심장에 충격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벨소리밖에 못 듣겠지….
(이런 문장은 로맹가리밖에 못쓴다.) - P152
그런 비열한 짓을 생각할 수 있는 건 나치뿐이야. 릴라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용납할 수가 없겠지. 그녀와 내가 평생 가리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 그래서 모든 나치들처럼 너한테도 유대인이 필요했던 거겠지. 그래서 그 물건들을 훔쳐내 벽장 속에 넣은 거고. 그런데 네 형편없는 계산은 어리석어. 행여 내가 너절한 놈이더라도 릴라는 계속 나를 사랑할 거야.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 P161
내 기억은 매 순간을 포착해 따로 두었다. 이런 걸 우리 집안에서는 비밀 장소라는 뜻으로 "양말 속에 둔다고 한다. 거기엔 한평생을 견디게 해줄 만큼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었다. - P169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이 책을 요약하는 문장~!) - P172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잘 버텨내야만 했고, 릴라도 내게 그러길 요구했다. 내가 포기한다면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고, 그건 그녀를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P180
나는 다른 프랑스인들도 나처럼 기억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걸, 이 자리에 없어 영원히 사라진 듯 보이는 것들도 우리가 노력하면 살아서 현존할 수 있다는 걸 체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했다. - P207
너처럼 오로지 기억으로만 사는 사람이 딱 둘이야. 런던의 드골과 클로 졸리의 뒤프라. - P254
-네가 계속 나를 잊는다면 끝이 될 거야, 뤼도 끝이라고, 네가 나를 잊을수록 나는 점점 더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 거야. -난 너를 잊지 않아. 너를 감추는 것뿐이야. 너도, 타드도, 브뤼노도 난 잊지 않아. 너도 알잖아. 독일 군인들에게 자기 삶의 이유를 들킬 때가 아니라는 것. 저들은 그런 걸로 사람들을 총살하고 있어 - 아주 자신만만하고 아주 평온해졌구나. 자주 웃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내가 자신만만하고 평온한 한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거야. -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어쩔 거야? - P270
상상의 작품이 아닌 건 살아볼 가치가 없어. 상상 없이는 바다도 한낱 짠물일 뿐일테니까………… 이를테면, 50년째 나는 내 아내를 줄곧 지어내고 있어. 난 아내가 늙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지. 그녀에겐 결점이 분명 많겠지만 그걸 나는 장점으로 바꾸었어. 그리고 내 아내의 눈엔 나도 특별한 남자지. 아내도 나를 지어내길 그만둔 적이 없거든. 함께 50년을 살면서 우리는 서로 보지 않고서 서로를 지어내고, 매일 서로를 다시 지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어. 물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놓지 말아야 하지. 하지만 그건 그 현실의 목을 제대로 조르려고 붙드는 거야. 더구나 문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목을 계속해서 비트는 방식일 뿐이지……. - P274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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