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미국 삼부작 중 중간에 위치한 작품.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만족스럽다. 페이지도 많고, 바빠서 읽는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 가운데 복수의 칼날처럼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복수의 칼날만큼 대담하고 창조적인 건 없어. 또한 아무리 세련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배신의 칼날만큼 무자비하고 창조적인 건 없다네. - P311
배신을 당하면 그 습관이 생기는 거야. 정답은 배신이었어. 비극 작품을 생각해보게나. 우울, 광기, 유혈을 불러오는 게 무엇인가? 오셀로, 배신당했지. 햄릿, 배신당했어. 리어왕, 배신당했다네. 맥베스도 배신당했다고 볼 수 있지, 다르긴 하지만, 그 자신에게 배신당했잖나. 온 힘을 다해 걸작을 가르치는 전문가들. 인간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문학에 여전히 빠져 있는 우리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의 핵심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배신을 찾는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테지. - P312
그는 삶이 똑같이 반복되길 원했고, 나는 그 사슬을 깨뜨리고 싶었다. 나는 내가 브라우니와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변종처럼 느껴졌다. 그런 느낌은 생전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탈출하고 싶은 열망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브라우니처럼 산다는 건 어떤 걸까? 혹시 그런 삶이 ‘민중‘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아닐까? 그들처럼 산다는 건 어떤 걸까? - P348
그는 어떤 것도 선택할 여지가 없다. 자신이 믿는 이념을 위해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차단하는 것,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다. 부러울 정도로 좁다란 강철 필라멘트 같은것은 체격만이 아니었다. 그 이데올로기 또한 그런 삶의 날카로운 연장 같았고, 왜가리의 몸통 실루엣처럼 윤곽이 날렵했다. - P382
이 사건에서는 한 여자가 자신의 남편과 결혼생활의 문제들을 열광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에 갖다 바친 거지. 본질적으로 이브가 헌납한 건, 실피드와 아이라가 만난 첫날부터 그녀 자신이 해결할 수 없었던 반목과 불화였어. 비록 이브 프레임의 집에선 다소 강렬하게 나타나긴 했지만, 그건 의붓자식과 계부 간의 흔한 문제였네. 그 밖에 아이라가 이브에게 보여준 모습, 그러니까 착한 남편, 나쁜 남편, 친절한 남자, 거친 남자, 이해심 있는 남자, 멍청한 남자, 성실한 남자, 불성실한 남자, 그리고 부부간의 모든 노력과 실수, 단 하나의 꿈도 공유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모든 결과, 이런 것은 죄다 빠져나가고 이데올로기가 이용할 수 있는 것만 남았던 거야. - P435
하지만 아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 유명해졌어. 단 한 방에 이브는 자신의 삶을 몰개성적 삶으로 만든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에게 인간의 얼굴을, 그것도 자기 남편의 얼굴을 씌워준 거야. 난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공산주의자와 잠을 잤다, 공산주의자가 내 아이를 괴롭혔다. - P456
자신을 아이언 린이란 거창한 인물로 부풀리지 말아야 했다고, 아이라는 지난 일들을 곱씹으면서 자신이 중서부를 떠난 이후 했던 그 어떤 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어. 인간으로서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 앞날을 읽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 실수 쪽으로 이끌리는 인간의 성향에 걸려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남자답고 야심만만한 사내가 갖는 세속의 목표를 단 하나라도 좋지 말아야 했다고, 공산주의 노동자로서 이스트시카고 단칸방의 60와트 전구 아래서 혼자 살아야 했다고, 그것이 지금 지옥에 떨어진 그가 도달했어야 한 금욕의 높이라고. - P469
살인은 한 사람의 목숨으로 끝나지 않아. 반드시 두 사람의 목숨으로 끝나, 살인은 살인자의 삶까지도 끝장내버린다고! 넌 절대 이 비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다.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갈 거야. 그걸 영원히 안고 갈 거라고.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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