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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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2기

일본의 한 탄광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및 여우 귀신(?) 등 기이한 일들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라고 소개를 받은 <검은 얼굴의 여우>는, 막상 읽어보니 나의 예상과는 다른 지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건 ‘일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배우는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직후이고,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이의 영향을 받아 ‘우울’이 내면의 기본값으로 설정된 인물이어서 그런지 역사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이 소설을 진행시키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놀란 점은 그런 역사의 서술이 일본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인 게 아니라 철저히 객관적으로, 오히려 조선인들을 징용했던 과거의 자신들을 비판하는 식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무모한 태평양전쟁으로 향하는 길을 연 책임은 유착돼 있던 재벌과 군부, 그리고 당시 정부에게 있습니다. (…)” (34p)

🗣 “그건 우리가 할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당시 일본 국민은 군부와 정부에 속고 있었는데?”

“우리는 식민지화와 침략전쟁을 시작한 나라의 국민이니까요.” (36p)

🗣”유럽의 식민지 정책을 보면 현지인만 모은 부대를 조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대 사령관은 자국군인이 맡지만 병사는 모두 식민지 사람이에요. 그편이 통솔하기 쉽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인만 모아 군대를 만드는 대신 그들을 일본인으로 취급하고 일본군 안에 집어넣으려고 했죠.”

“동화정책의 결실……이 아니라 폐해인가.”

“그랬기에 일본어가 가능한 조선인은 군대 내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출신을 숨기고 일본인 행세를 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하지만 일본어가 서툰 사람은 여러가지 차별을 받았다고 합니다.” (48~49p)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미스터리 소설을 생각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초반의 전개가 상당히 당황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100페이지를 넘어가는 동안 사건이 일어나기는 커녕 역사 교과서를 읽는 마냥 사회적인 시사점들이 계속해서 나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이 분명하므로 추천은 함부로 못하겠으나… 그래도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는 이런 점이 ‘극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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