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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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뇌종양으로 어린 아들을 잃고 이혼한 뒤 고향에 내려온 ‘리에’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리에는 다시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한 남자를 만나며 사랑을 키우고 다시금 행복을 누리던 차에 안타까운 사고로 다니구치는 사망하게 된다. 연이어 닥친 불행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자 했던 리에는 그동안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았다던 다니구치의 말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지낼 때 그의 형을 불러 그를 완전히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데, 뜻밖에도 생전의 다니구치 사진을 본 그의 형은 이 남성을 보고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과연 자신이 사랑했던 남성은 누구였을까,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고 있었던 걸까.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인물이, 아니 어떤 남성이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인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아무도 이 인물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을 만한 강렬한 사연이 있었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자세한 내용을 발설할 순 없겠으나,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던 한 남성의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정도로만 말할 수 있겠다. 와… 여운이 장난 아니다… 

🗣 인간의 마지막 거처일 터인 내 몸이 지옥, 이라는 건 과연 어떤 고통일까. 내 몸이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인생이란. (264p)



지금까지 소개한 소설의 줄거리만 놓고 보았을 때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전개될 법한 추리소설 내지는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실제로 리에의 이혼에 도움을 주었던 변호사 ‘기도’라는 인물이 실질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치며 추적하는 구조의 서사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이른바 ‘탐정 소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추적 과정 중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고발하는 장면들(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대립, 재일 교포에 대한 일본인의 시선 등)이 등장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 등을 보며 ‘죽음’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담는 장면 또한 존재한다.

🗣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에도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그림은 의외로 적었다. 자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다, 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항변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는 국가에 의해 무로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220p)



그리하여 이 소설은 한 문장, 한 장면을 허투루 읽을 수 없었고 꼭꼭 씹고 음미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 가독성 좋은 문체에 흥미로운 사건에도 불구하고 읽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소설이기도 하다. (정말 좋았다는 말이다.) 최근에 이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과연 이 책이 담고 있는 ‘흥미로운 서사’와 ‘묵직한 깊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을지 의문이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영화까지 한번 보고 싶다. 어쨌든 이 소설은 올해 읽은 책 중 몇 안되는 별 다섯 개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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