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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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주변에서 재밌다는 얘길 많이 들어왔기도 했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든 작품이기도 하며 그로 인해 수많은 북튜버들도 이 책에 대한 호평 일색의 리뷰들을 보아 온 사람으로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치솟았다. 그리고 <고래>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까지 읽어온 소설 중에선 가장 밀도 높은 서사를 담은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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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을 읽노라 함은 하나의 큰 기승전결을 갖춘 ‘사건’ 내지는 ‘서사’를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서 책장을 펼친다. 그래서 만약 그 기승전결의 구조가 명확하지 않거나 (예를 들면, 심리 묘사 위주의 소설), 얕은 사건들의 반복되는 구조라면 (예를 들면,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 개인적으로는 그 이야기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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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고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러 개의 기승전결 구조를 갖춘 서사들이 등장과 소멸을 계속하여 반복한다. 옴니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주인공 혹은 주변 배경이 작품마다 달라지는 옴니버스 형식과는 달리, <고래>는 주인공이 삶을 계속해가며 겪게 되는 풍부한 이야기들을 모조리 담았다. 초반에 두-세명의 인물이 별개의 서사처럼 등장하긴 하지만, 후에는 하나의 구조로 엮이며 이 모든 것이 또 하나의 거대한 서사였음이 밝혀진다. 주인공 ‘금복’이 어린 시절 ‘생선 장수’를 만나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사건, ‘걱정’을 만나 결혼하는 사건, ‘칼잡이(?)’를 만나 영화라는 매체에 눈을 뜨게 되는 사건, 홀로 ‘춘희’를 낳게 되는 사건 등등…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금복’에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들이 정말 ‘휘몰아치듯’ 전개된다. 독자로서는 당연히 그 서사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그러므로 다들 이 작품을 두고 왜 이렇게 재밌다고들 하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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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다 읽으니 그렇게 재밌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는 감상이 남는다. 음… 이 작품에 대한 리뷰들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불호’라는 후기가 많았는데, 그 리뷰들에는 공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표현들 혹은 여성들이 겪는 일들이 거북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느낀 별로였던 점도 위 후기들과 (조금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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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명확히 설명해볼까? <고래>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인물들은 모두 기구한 운명에 처한 듯하다. 이들이 겪는 사건들이 정말, 보는 사람도 고통스럽다고 느낄 만큼 험하다는 말이다. 여성 주인공들이 한국 근대사회에서 겪는 기구한 일이라 함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만하지 않은가. 더구나 여성 인물들 뿐만 아니라 남성 인물들도 어딘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불운한 최후를 맞거나 등등 눈살 찌푸릴 만한 일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런 점이 내게는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작가가 인물들을 너무 거칠고 험하게 다룬 느낌이랄까? 난 소설 속 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영원히 갇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완성된 듯한 열린 결말의 소설이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고래>는 딱 그런 작품이었다. 그래서, 정말 재밌게 읽었음에도 이 작품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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