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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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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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중앙선에서 만나다]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 중에서 ‘재미’만을 따졌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작품은 바로 [경의중앙선에서 만나다] 이다. 아마 경의중앙선 지하철을 타보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이 많이 되진 않겠지만, ‘파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작품은 정말이지 ‘웃프다’는 감정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던 것 같다.

🗣 “아니, 경의중앙선 시간표를 믿어요? 이분 정치인들 공약도 믿을 분이네.” (46p)

경의중앙선은 악랄한 연착과 통곡의 배차간격이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일으키는 지하철 호선으로 유명하다. 경의중앙선 때문에 약속시간에 겪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뿐만이 아니라 연착을 고려하여 일찍 나갔다가 약속 시간보다 40분 넘게 일찍 도착해버린 적도 있었다. 이 작품은 그런 점을 더 크게 과장하여 경의중앙선 이용객들에게 뼈저리는 공감을 선사하였다.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는데, 이게 책이 웃긴 건지 내 처지가 불쌍해서 웃음이 나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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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가장 재밌었던 단편이 [경의중앙선에서 만나다] 였다면, 가장 좋았던 단편은 [정적]이었다. 이 작품은 서울, 그 중에서도 마포구 지역에서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현상이 느닷없이 발생하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마포구만 벗어나면 모든 게 정상적이지만, 이상하게도 마포구만 들리지 않는다. 사람 목소리도, 휴대폰 소리도, 그 외에 일체의 모든 소리도. 모든 학교는 일제히 휴교에 들어가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마포구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포구 집값은 일제히 떨어지고 그 외의 수도권 지역 집값이 오르는 현상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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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보증금이 아까워 마포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난한 대학생인 주인공은 정적 상태의 주변 산책을 하다 어느 카페에 들어선다. 거의 모든 카페들은 폐점 상태에 이르렀지만, 이 카페만큼은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었다. 들어가보니 이곳은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장소였고 직원과 손님들 모두 수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마포구의 정적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무이한 곳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그 카페를 자주 방문하면서 그 전에는 관심을 일절 두지 않았던 청각 장애인들의 처우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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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에 떠오르는 화면을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뉴스에서 제공되던 자막이 없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 꼴이 기막혀서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32p)

대학교에서 ‘특수교육학개론’을 배우며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 깊이 배운 적이 있어서 가슴이 아팠던 구절이다. 청각 장애인분들 중에서도 사람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분들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영화나 TV에서 화면에 비치지 않는 인물의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자막이 없는 영화보다 자막이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훨씬 선호한다는 수업 내용이 떠올랐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지만, 청각 장애인분들에게 ‘자막’은 문화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정적 현상이 사라지자 곧바로 자막까지 없애버린 작중 세상 꼴이 현실 사회를 너무도 잘 반영한 것 같아서, 기막혀하는 주인공에게 공감을 넘어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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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두 단편 외의 다른 작품들도 나쁘지 않았다. 중고서점에서 심너울 작가님의 다른 장편을 보았을 때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는데, (후회까진 아니더라도) 그때 살걸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볼 것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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