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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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 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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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카페인 분해 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과도한 커피(한 잔 초과)를 섭취하게 되면 그날의 숙면은 글렀다고 봐야하지만, 그럼에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책과 함께 즐기는 캡슐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오전 아홉 시쯤 독서실로 출근하여 챙기는 컴포즈 커피의 대용량 아메리카노 한 잔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캡슐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느껴지는 씁쓸한 상쾌함이 비몽사몽한 나의 정신을 맑게 개어주고, 인터넷 강의 선생님의 자장가(를 빙자한 강의)를 들으며 스르륵 눈이 감길 때 컴포즈 커피가 내 등을 토닥이며 다시금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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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를 읽으며 내가 커피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은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커피에 대한 일종의 신념을 보면서, 괜히 기분 좋아지는 커피 향을 지금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저 잠에서 깨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커피가 실은 나의 삶 속에서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라는 걸 깨닫기도 하였다.

🗣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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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볶은 지 한 달 지난 파나마다. 파나마는 퍼음 볶았을 때는 맛이 복잡해서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달 이상 묵힌 다음 마시면 숙성되면서 맛이 부드럽게 하나로 모여져서 놀랍도록 맛있어진다. 긴 세월 있는 듯 없는 듯 분위기파로 지낸 배우가 갑자기 그것 자체가 새로운 성격이 되어 대단히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중략) 한 달 지난 파나마 커피는 사치스럽다. 왜냐하면 한 번에 콩을 1킬로그램씩 볶는데, 이 원두가 한 달 동안 안 팔리고 남아 있어야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나마 원두를 주문받을 때마다 미적거리며 천천히 봉투에 담는다. 혹시라도 마음을 바꾸시지 않을까 기대하며.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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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관련한 부분들은, 내가 비흡연자라 조금 아쉬웠다. 정은 작가님의 글이 아쉬운 게 아니라, 내가 담배를 피웠더라면 이 글을 더 재밌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담배와 얽힌 작가님의 추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할아버지가 주셨던 담배부터 금연 구역인 절에 들어가서 몰래 담배를 피던 추억,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남자를 따라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한 기억 까지도. 커피와 담배는 둘 다 쓰고 맛없지만 그것들이 담고 있는 한 개인의 추억은 아주 깊었다. 그 추억을 작가님은 <커피와 담배>라는 책으로 사람들과 공유하였고,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그 추억의 공유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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