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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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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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서 처음으로 읽었던 희곡은 중학교 때의 ‘햄릿’이었다.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어쓴 판본이 아닌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많이 어려웠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한동안 계속 읽지 않다가 대학교 교양수업 때 (강제로)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게 되었다. ‘부조리 문학’이라는 이름의 악명높은 그 수업은 해당 작품을 원어(영어)로 쓰인 교재로 수업을 진행했고, 화들짝 놀란 가슴을 추스리기 위해 드랍(수강신청 취소)을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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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이후로 ‘희곡’ 작품을 즐겨 읽지 않는다. 또한 내 인생에 희곡을 읽을 날은 다신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다시 희곡 작품을 손에 쥐게 한 계기가 생겼다. 바로 민음사 유튜브 채널이다. 민음사의 해외문학 편집자님께서 추천하시는 세계문학전집으로 <밤으로의 긴 여로>를 추천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점, 본인 사후 25년 동안 출간 및 상연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아내가 이를 무시하고 사후 4년만에 작품을 발표해버렸다는 점 등이 나의 이목을 끌었다. 더불어 민음사 오프라인 패밀리데이 행사까지 겹쳤으니 그 누가 사지 않고 배길 수가 있을까…(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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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나의 감상은, 어렵긴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희곡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데다가, 작품이 하나의 큰 서사로 진행되지 않고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들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희곡의 매력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중점이 되어 진행되는 게 색다르게 느껴졌는데, 그 부분이 작품 속 장면들을 상상이 잘되게 해서 몰입이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다른 희곡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다시 한번 셰익스피어 작품을 도전해볼지, 아니면 한국 작가가 쓴 현대 희곡을 읽어볼지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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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밤으로의 긴 여로>는 나에게 꽤 좋은 인상으로 남을 것 같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어느 일가족의 비극적인 분위기와 서사를 다루고 있다. 병적일 정도로 돈 쓰는데 인색한 아버지, 마약 중독자 어머니, 알콜 중독자 형, 그리고 폐병에 걸린 동생까지. 작품 극 초반에는 아주 잠깐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나왔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까만 밤에 안개가 자욱히 낀 듯이 어두컴컴하고 흐릿한 느낌이다. 가족 어느 구성원의 조합이든, 만나기만 하면 언쟁을 벌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나까지 어두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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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둡기만 내용의 작품을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적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등장인물들 모두 작가의 실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읽으니, 작가가 가족들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옹호(?)하기 위해 작품을 같았다. 아버지가 돈에 인색했던 이유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돈에 대한 강박 관념이 뼛속 깊이 자리잡혔고, 어머니는 진통제가 필요하던 때에 돌팔이 의사가 마약모르핀 처방하여 그에 중독되어 버렸다. 형과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망가져버린 데에는 어쩔 없는 이유가 있었음을 말하여 작가는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해설을 보니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부분이 작품을 마냥 어둡게만 하진 않게 만들었고, 그래서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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