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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도서출판 은행나무 2006.09.18
가볍고 흥미만 추구하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 출판계에 강세라는 말을 들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반 대중의 복잡한 정신적 질환을 한 방에 날려 버린다. 그것도 장난 비슷하게, “뭐 이런 의사가 있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성의하게 이라부 이치로는 환자를 대한다. 그런데 결국 머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기발한 창의력으로 해결해 간다.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 파리를 날리고 있을 때, 일본의 번역본 책이 중요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하고 있다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민규 같은 작가도 있지만 한국의 작가들이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딱딱한 책이 아니라도 재미있는 것이 무진장한 시대에 좀 더 스타일을 확 바꿔 실실 웃으며 공감하고 눈물이 나게 하는 작품을 그렇게 흔하지 않다. 물론 우리의 역사가 분단 현실과 여러 독재와 맞선 민주화 투쟁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책에는 표제작 <<공중그네>> 말고도 고슴도치 등 4편의 연작이 들어 있다.
<공중그네>는 말 그대로 서커스에서 공중그네 연기를 펼치는 고헤이의 이상성격 장애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고헤이는 공중 연기의 실패를 상대방에게 미룬다. 잘못을 자신에서 찾지 못하고 타인에 미루고 증오하며 의심한다. 이에 이라부가 직접 공중그네를 참여 하면서 창의적인 치료 단계에 들어간다.
이라부는 고짱에게 주문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것 같다. “ 인생을 사는 것은 힘들고 불안하지만 가능하면 웃으며 피하지 말고 헤쳐 나가라.” “타인에게 항상 열린 마음을 같고 신뢰하며 잘못의 근원을 찾기 위하여 자신 먼저 성찰하라.”
환자로 등장하는 고짱은 잦은 전학으로 내부적 동료 의식이 강했지만 누구를 새로 사귀는 것을 회피한다. “아마도 자신은 닫혀 있을 것이다. 실은 사람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친구가 늘어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의 이야기다. 히키 코모리도 이런 것의 일종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나 자신도 해당되는 케이스가 많아서 이라부에게 치료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선단공포증이 있는 야쿠자의 일원인 세이지의 이야기가 <고슴도치>이다.
일반 사람한테는 공포의 대상인 야쿠자가 뾰족한 것만 보면 절절매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극악무도한 조폭도 약한 부분이 있다는 멧세지 같다. 그들도 인간이고 보통 사람의 삶에서 약간이 이탈일 뿐이다. 우리의 이라부는 때로는 능글맞게 야쿠자 환자와 티격태격 하면서 그에게 점차 힘을 주고 이겨나 가게 한다. 세이지의 동거녀 술집문제로 다른 나와바리의 조직원과 갈등도 직접 나서서 개입하고 오히려 이라부가 야쿠자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라부 이치로의 대학 친구가 환자로 등장하는 <장인의 가발>은 가히 엽기적이다. 집안의 격차로 처가에서 트림 한 번 못하고 강박증에 억매여 살아가는 다쓰로가 이라부의 특이하고 대담한 행동 치료에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의대 동창회에서 우리의 영웅 이라부는 이렇게 평가되고 있었다. “ 야, 그 다랑어 맛있어 보이는데.” “가운데 코너에 빨리 가야 돼. 금세 없어져.” “ 이미 늦었어. 이라부가 왔어. 다랑어든 장어든 깡그리 그놈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저 녀석, 몇 장이나 먹을 생각이야” “ 몇 장은 무슨 몇 장, 전부 다겠지. 역 앞에 있던 ‘서울정’이라는 갈비 뷔페, 저 인간이 문 닫게 만든 거 벌써 잊어버렸어?”
이라부의 주동으로 그렇게 어렵고 권위적인, 다쓰로 벗기고 싶어 하던 그의 장인의 가발을 벗기 고, ‘곤노우 신사 앞(金王神社前)이라는 이정표를 ’王’자에 점 하나 찍어서 ‘긴타마(金玉, 불알을 뜻하는 속어) 신사 앞’ 으로 만든다. 소심하고 강박증에 시달리는 다쓰로에게 사고의 유연성 을 심어 줄려고 글자를 바꾸어 사회를 희화화 한다. 그리고 장인의 가발은 다쓰로가 극복해야 할 강박증의 병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후 다쓰로는 집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트림도 꺽꺽대게 된다.
정신과 병원장 이라부 이치로는 <3루수>에서 야구도 하면 프로 야구선수의 대인기피 및 피해망상증을 치료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이라부는 주사를 놓은 것을 매우 좋아한다. “무작정 주사를 찔러버린다. ‘아야야야야’ 얼굴을 찡그렸다. 간호사의 가운 가슴팍이 벌어져 있어 무심코 계곡 쪽으로 시선이 쏠리고 말았다. 앞에서는 이라부가 흥분한 표정으로 주삿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순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주사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신과 계통은 진정제 외에는 주사가 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라부는 흥분까지 느끼고 환자는 간호사의 풍만한 가슴을 쳐다보며 무조건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비타민일망정. 우리나라도 감기 환자에게 쓸데없는 항생제 말고 비타민 주사 한 대 놓아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면 그것도 좋을 것인데.
<여류작가>에서는 이라부가 소설을 쓰고 육감적인 다소 무관심하고 우유분단하기 까지 한 간호사 마유미는 그림을 그린다. 유명세와 자기기만에 빠져 강박증에 시달리는 여류작가 호시야마의 경멸에도 이라부는 도전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 이 작가가 글을 쓸 때마다 전에 썼던 것으로 오인하여 초조해하고 고민할 때, 이라부는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는 자신일 뿐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멧세지를 이라부는 이 여류작가에게 강하게 암시한다. 역시 이 작가도“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라고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