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보다 긴 하루 Mr. Know 세계문학 14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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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고
           열린책들    황보석 옮김   2000년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이 소설은 단 하루를 시간적 공간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는 끼르기르스탄인이지만 까자흐스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초목 생활이나 민담, 전설에 대해서 또 그 당시의 철의 장막 같은 정치적 현실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소설은 요즈음 해외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까자흐스딴의 조그만 간이역 보란니  - 부란니에서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부란니 예지게이가 가장 고참 역무원 까잔갑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과정에서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민담과 여러 정치적 상황을 매개로 전개된다. 까잔갑은 주인공이 이 곳에서 정착하도록 도와주고 평생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망자의 아들에 반대를 무릅쓰고 간이역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까자흐인의 성스러운 전통적 매장지 아나 - 베이뜨(어머니의 안식처)를 매장지로 정하고 그 곳으로 가는 여정이 시간적 공간이다.

  이 소설에서는 매장지로 향하면서 전개하는 예지게이의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살펴본다. 우선 낙
타의 이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그 당시 운송 수단으로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낙타와 함께 대화하며 분노하고 척박한 땅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예
지게이에게는 어린 새끼일 때 까잡갑으로 선물 받은 ‘까라나르’라고 부르는 낙타가 있다. 마치 그의 분신처럼 사랑하고 비교적 먼 지역의 사람들도 ‘까라나르’를 부러워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한 낙타의 신기한 내용도 있다. “ 보드카가 나오자 예지게이는 빈 잔을 비우고 나서 안주로 약간의 오르꼬츠- 어린 낙타의 육봉에서 뺀 기름을 먹으니 온몸이 후근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행복이 밀려왔다. 낙타는 육봉에 지방을 저장하는 데 그곳에 많은 지방을 저장한, 큰 육봉을 가진
낙타가 힘도 강하다.”

  그 당시 철의 장막의 비밀 정치가 한 가정을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야기도 나온다. 학교
선생이었던 아부딸리쁘는 독소전쟁(2차 세계대전)시에 소련군으로 참전하여 싸우다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빨치산 투쟁을 하다 교직에 복귀한다. 그러나 포로로 잡혔을 때, “선생님 그러면 전쟁 포
로였나요?. 그렇다면 왜 자살하지 않았나요? 굴복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게 명령이었잖아요.” 당
간부 아들의 고발로 인민 교육부에 의해 해고 된다.
 
  살 곳이 없어진 아부딸리쁘는 이렇게 이 간이역으로 흘러들어와 예지게이의 도움으로 역무원이
되어 살아간다. 척박한 간이역 마을에서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이웃과 정을 나누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그의 자식들이 읽어 볼 자신의 과거 시절의 역사를 기록하다가 고발되어 이 곳을 떠나 결국 죽게 된다. 예지게이는 이 사건에 많은 충격을 받고, 그의 부인
과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부인에게 연정도 가지고 고민한다.

  이 소설에서 봉건주의 시대의 중국에서 보다 더 잔혹하고 꿈직한 그러면서도 가슴 아픈 민담은
결국 잊지 못하게 한다. 아주 옛날 중앙아시아의 사로제끄의 목초지를 놓고 경쟁하던 츄안유안 족
은 카자흐인을 포로로 잡아 ‘만꾸르뜨’라는 노예를 만들곤 했다. 

   이들에게 걸려든 노예는 도망을 못 가게하고 아무 의식 없이 동물처럼 주인을 섬기도록 소름끼
치는 행위를 한다.  우선 정복자는 어미 낙타를 죽여 묵직한 유방을 도려낸다. 그 것을 몇 조각으
로 나누어 아직 더운 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면도로 박박 민 포로의 머리에다 씌운다. 이것을
<시리>라고 한다. 
 
   그러면 그것은 민머리에 접착제처럼 들러붙는데 그 모습은 오늘날의 수영모자와도 비슷하다. 그
리고 족쇄를 채워서 고통으로 영혼을 찢는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먼 곳으로 끌려가 며칠 동
안 방치 된다. 그러면 머리에 씌어진 낙타의 생가죽이 말라 가면서 죄어드는 압력으로 죽어 가는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로제끄의 햇살 아래서 시리는 사정없이 노예가 될 사람의 머리를 쇠테
처럼 압박을 가한다.
 
    다음날이 되면 희생자들의 박박 밀린 머리칼이 자라서 낙타 가죽을 뚫지 못하고 휘어져 사람의
머리 속으로 파고든다.  이 혹독한 과정 속에서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자만이 노예가 된다.
  츄안츄안 족의 손에 넘어간 ‘만꾸르뜨’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구하려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모습만 사람이지 살아 있는 시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포로를 복종시키려면 그저 누군가
의 목을 자른다거나 겁을 주는 편이 쉬웠을 것이지만 츄안츄안 족은 그러는 대신 포로의 기억을 말
살시키고 그의 이성을 파괴하여 완전한 그들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설에 나이마-아나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 이 츄안츄안 족의 ‘만꾸르뜨’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구하러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고 주인 말만 듣고 화살을 쏘아 그녀를 죽이고 만다. 이 이야기로부터 위 글에 나오는  까
잔갑이 묻히러가는 ‘아나-베이뜨(어머니의 안식처)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 보니 이 ,만꾸르뜨‘가 바로 스탈린 시대에 대한 은유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독서 평이다.

 결론으로 까잔갑은 이 ‘어머니의 안식처’에 묻히지 못한다. 그것은 아나-베이뜨가 어느새 로켓
발사 기지가 되어 철조망으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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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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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가리의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책세상      1999
 <<자기 앞의 생>>을 작가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 듯이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는 얼마 전에 읽은 <<유럽식 교육>>과 같은 내용으로 제목과 출판사만 다른 것이었다.  원래의 제목은 <<유럽식 교육>>인데 역자가 이 소설의 주인공 야네크의 아버지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를  제목으로 한 작품이다.

  많은 전쟁 소설이 인간의 잔혹성과 부조리를 조명하는데 노력하듯이 이것도 극도로 비인간적이고 전쟁의 광풍에 희생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다.  거기에 전쟁 중이라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  배신 등 인간의 아름답고도 나약함이 더 해졌다고 할까.

   폴란드를 배경으로 빨치산들이 지하에 숨어서 독일 군을 상대로 싸우는 이야기로 , 우리의 1950 년대 전후에 지리산 등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비슷하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등 오래 전에 본 책이 많이 생각이 났다.

 농부 요제프 코니에치니가 빨치산과 독일군에 양다리를 걸치고 감자 등 음식을 모두에게 주는 것 은, 밤에는 인민군에게 낮에는 국군에게 협력하며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우리의 역사를 보는 듯 하다. “ 식량을 가져왔습니다. 마음의 표시입니다. 마음의 표시요! 그는 다시 썰매에 올랐다. 사령부 앞에 오자 로무알드씨를 만나 치즈를 전한다.”

 끝내는 죽음으로 끝나지만 야블론스티와 피아노 치는 여인과의 사랑은 전쟁 중인 혼란기에도 아름답고도 슬프기만 하다. “야네크는 정오에 빌노에 도착했다. 야드비가 양의 집 앞에는 교수대가 두 개 세워져 있었다. 야블론스키와 그의 연인이 교수대 위에서 밧줄 끝에 매달려 있었다. 군인 둘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야네크는 14살의 나이로 경험하기 어려운 힘든 삶을, 아버지가 죽기 전에 마련 해 준 땅 속에서 숨어 살면서 대학생 빨치산 도브란스티와 정신적으로 교류한다.   자기 글을 쓰는 도브란스키는 야네크의 미래에 대한 비관에 희망과 낙관으로 설득한다. 완전히 견해가 다르지만 서로 공감하고 신뢰하고 있다. “오늘 시간 있으면 우리 은신처 로와 책도 읽고, 요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도브란스키가 말했다. 그럼 미국요? 미국은 머지않아 유렵에 제2전선을 형성할 거야.  ”   “전 그 말 안 믿어요. 야네크가 조용히 말했다.”

 도브란스키키는 그의 책이 완성되면 제목을 ‘유럽식 교육’으로 한다고 야네크에게 말한다. “자유, 존엄성, 인간으로서의 명예,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도록 만드는 한편 의 동화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말해도 좋아. 진실이란 역사의 순간들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어.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라고 말하면서 그 피난처가 음악 또는 시일 수도 있지만 자기의 책이 그런 피난처의 하난가 되기를 바란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라고.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 동족을 배신하고, 감자 몇 알에 자신의 부인을 창녀로 전락시키는 전쟁의 비열함을 슬프면서도 여유 있게 작가는 그려가고 있다. 야네크는 이에 절망하고 몸부림친다.

" 그때 문득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에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 태생이면서 프랑스 작가로 활동한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에서도 그렇지만 어린 소년을 통해서 전쟁으로 빚어진 인간의 희망과 절망을 특유의 문체로 그려낸다. 비정하고 처절함 속에서도 언뜻언뜻 해학이 보이고 재미를 더하는 소설을 우리에게 선사한 작가는 이력 면에서도 평범 하지 않게 부인과 더불어 자살로 생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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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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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도서출판 은행나무   2006.09.18

   가볍고 흥미만 추구하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 출판계에 강세라는 말을 들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반 대중의 복잡한 정신적 질환을 한 방에 날려 버린다. 그것도 장난 비슷하게, “뭐 이런 의사가 있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성의하게 이라부 이치로는 환자를 대한다. 그런데 결국 머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기발한 창의력으로 해결해 간다.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 파리를 날리고 있을 때, 일본의 번역본 책이 중요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하고 있다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민규 같은 작가도 있지만 한국의 작가들이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딱딱한 책이 아니라도 재미있는 것이 무진장한 시대에 좀 더 스타일을 확 바꿔 실실 웃으며 공감하고 눈물이 나게 하는 작품을 그렇게 흔하지 않다. 물론 우리의 역사가 분단 현실과 여러 독재와 맞선 민주화 투쟁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책에는 표제작 <<공중그네>> 말고도 고슴도치 등 4편의 연작이 들어 있다.


     <공중그네>는 말 그대로 서커스에서 공중그네 연기를 펼치는 고헤이의 이상성격 장애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고헤이는 공중 연기의 실패를 상대방에게 미룬다. 잘못을 자신에서 찾지 못하고 타인에 미루고 증오하며 의심한다. 이에 이라부가 직접 공중그네를 참여 하면서 창의적인 치료 단계에 들어간다.

   이라부는 고짱에게 주문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것 같다. “ 인생을 사는 것은 힘들고 불안하지만 가능하면 웃으며 피하지 말고 헤쳐 나가라.”  “타인에게 항상 열린 마음을 같고 신뢰하며 잘못의 근원을 찾기 위하여 자신 먼저 성찰하라.” 

 
   환자로 등장하는 고짱은 잦은 전학으로 내부적 동료 의식이 강했지만 누구를 새로 사귀는 것을 회피한다. “아마도 자신은 닫혀 있을 것이다. 실은 사람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친구가 늘어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의 이야기다. 히키 코모리도 이런 것의 일종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나 자신도 해당되는 케이스가 많아서 이라부에게 치료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선단공포증이 있는 야쿠자의 일원인 세이지의 이야기가 <고슴도치>이다.
일반 사람한테는 공포의 대상인 야쿠자가 뾰족한 것만 보면 절절매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극악무도한 조폭도 약한 부분이 있다는 멧세지 같다. 그들도 인간이고 보통 사람의 삶에서 약간이 이탈일 뿐이다. 우리의 이라부는 때로는 능글맞게 야쿠자 환자와 티격태격 하면서 그에게 점차 힘을 주고 이겨나 가게 한다. 세이지의 동거녀 술집문제로 다른 나와바리의 조직원과 갈등도 직접 나서서 개입하고 오히려 이라부가 야쿠자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라부 이치로의 대학 친구가 환자로 등장하는 <장인의 가발>은 가히 엽기적이다.  집안의 격차로 처가에서 트림 한 번 못하고 강박증에 억매여 살아가는 다쓰로가 이라부의 특이하고 대담한 행동 치료에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의대 동창회에서 우리의 영웅 이라부는 이렇게 평가되고 있었다. “ 야, 그 다랑어 맛있어 보이는데.” “가운데 코너에 빨리 가야 돼. 금세 없어져.”  “ 이미 늦었어. 이라부가 왔어. 다랑어든 장어든 깡그리 그놈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저 녀석, 몇 장이나 먹을 생각이야” “ 몇 장은 무슨 몇 장, 전부 다겠지. 역 앞에 있던 ‘서울정’이라는 갈비 뷔페, 저 인간이 문 닫게 만든 거 벌써 잊어버렸어?” 

  이라부의 주동으로 그렇게 어렵고 권위적인,  다쓰로 벗기고 싶어 하던 그의 장인의 가발을 벗기 고, ‘곤노우 신사 앞(金王神社前)이라는 이정표를 ’王’자에 점 하나 찍어서 ‘긴타마(金玉, 불알을 뜻하는 속어) 신사 앞’ 으로 만든다. 소심하고 강박증에 시달리는 다쓰로에게 사고의 유연성 을 심어 줄려고 글자를 바꾸어 사회를 희화화 한다.  그리고 장인의 가발은 다쓰로가 극복해야 할 강박증의 병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후 다쓰로는 집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트림도 꺽꺽대게 된다.

   정신과 병원장 이라부 이치로는 <3루수>에서 야구도 하면 프로 야구선수의 대인기피 및 피해망상증을 치료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이라부는 주사를 놓은 것을 매우 좋아한다. “무작정 주사를 찔러버린다. ‘아야야야야’ 얼굴을 찡그렸다. 간호사의 가운 가슴팍이 벌어져 있어 무심코 계곡 쪽으로 시선이 쏠리고 말았다. 앞에서는 이라부가 흥분한 표정으로 주삿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순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주사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신과 계통은 진정제 외에는 주사가 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라부는 흥분까지 느끼고 환자는 간호사의 풍만한 가슴을 쳐다보며 무조건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비타민일망정.  우리나라도 감기 환자에게 쓸데없는 항생제 말고 비타민 주사 한 대 놓아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면 그것도 좋을 것인데.

<여류작가>에서는 이라부가 소설을 쓰고 육감적인 다소 무관심하고 우유분단하기 까지 한 간호사 마유미는 그림을 그린다. 유명세와 자기기만에 빠져 강박증에 시달리는 여류작가 호시야마의 경멸에도 이라부는 도전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 이 작가가 글을 쓸 때마다 전에 썼던 것으로 오인하여 초조해하고 고민할 때, 이라부는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는 자신일 뿐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멧세지를 이라부는 이 여류작가에게 강하게 암시한다. 역시 이 작가도“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라고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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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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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과 신념의 실크로드 도보 여행기를 또 한 번 읽는다. 이 글은 2,3권을 다시 읽고 쓴다. 60이 넘은 퇴직 기자가 터키 이스탐풀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 2000킬로키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다. 이제는 늙음이라는 세월 앞에 한 쪽으로 물러나 지나온 삶을 되새길 나이에 그는 안락한 의자와 TV를 포기하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최초로 실크로드 단독 도보여행에 성공한다.

1권에서 1차 목표 터어키의 에르주름을 얼마 안 남겨 놓고 이질로 쓰러져 앰브럼스로 실려 가는 것으로 끝나고, 2권에서는 2000년 5월에 다시 시작한다.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철저하게 1미터라도 다른 운송 수단에 신세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쓰러졌던 지점을 찾아간다. 돌풍과 눈보라와 무시무시한 캉갈(들개의 일종)의 위험이 도사려도 단 한 발자국도 놓치려 않는다.

의문이 나는 것은 필자가 하루에 6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걷는다고 하는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뛰다시피 해야 한 시간에 겨우 6킬로미터인데 서양 사람은 다리가 길어서 빨리 걷는 것인지. 물론 그에게 걷는 것 자체가 그렇게 생소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수차례의 도보 여행을 했다고 하지만 그의 걷기 속도는 동양 사람들의 경보 수준이다.

그의 여행의 출발지인 터키는 책 내용대로 하면 노상강도 및 도둑이 들끓는 무법천지이다. 일부 개인의 행동을 가지고 그 나라를 판단하는 것은 오류가 있지만 터키에는 왜 그리 다혈질이 많고 억지를 쓰는 인간이 많은지. 물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음식과 잠자리 등 과분한 친절로 대접해주는 순박한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그 나라의 이미지를 상쇄해야 하겠지만.

그는 이란에서 터널을 지나다 그 곳에서 여행을 마칠 위험에 처하다 구사일생 한다. “검은 터널 출구를 비추는 건 차량의 전조등뿐이었다. 관자놀이가 펄떡거렸다. 기침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 했지만, 다리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의 표현대로 이 비상식적 도보 여행은 자기와의 싸움이자 의지의 결정체다. 무더운 사막, 타란툴란(독거미), 그것들 보다 더 무서운 나쁜 인간들.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무모한 도전을 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마법을 건다. “이 부서지기 쉬운 순간은 나와 세상 사이에 화합이 자리 잡는 시간으로, 사람들은 그 시간을 연장할 수 없는 걸 아쉬워한다. 슬픔이 다시 찾아오는 때에 떠올리게 되는 기분 좋은 순간들은 찌르레기의 비행처럼 덧없고 강렬한 순간이며, 우리 인간의 부조리한 삶에서 훔쳐낸 순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 행복을 찾아서 나는 떠난 것이고, 2000년 이상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실크로드는 그러한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합한 곳으로 보였다. 나는 낙천주의자다. ”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은 사회주의를 버린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관리들이 폐쇄적이고 거의 조폭 수준이라 읽는 사람까지 짜증나게 한다. 그에게 있어 여권 문제는 힘든 걷기보다 더 피곤하게 한다. 중국의 관리들은 이란이나 ‘탄’ 들어가는 나라보다 조금 낮지만 그는 그들의 억지에 ‘메이유’ (싫다)라고 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경찰이 연행하려 해도 싫다고 대답하면 처음 경험하는 그들은 어쩔 줄 몰라하니 통쾌하기 까지 하다. 그래도 그는 중국 국경에서 100키로를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폭력을 당한다.

그는 여행 중 여러 방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중국 신장자치구에서 자전거 여행 중인 금발의 컴퓨터 기술자 네덜란드인 부스마커. “전 세계적으로 커뮤니케에션 수단이 점점 다양해지고 현대화될수록, 이 친구처럼 느리고 구식인 생활방식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고효율적’이라고 말하며 안주하고, 속도가 중요한 미덕이 된 이 세계에 대한 반란과 저항이 필요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정말 어떤 일에 집중하면 희열을 느끼고 고되고 힘든 것도 기쁨으로 전환되는가?
“ 낮잠을 자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아침 내내 걷는 동안 맞본 즐거움 때문에 너무 흥분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 걷기에 대한 열정과 함께, 늘 좀더 멀리 가려고 하는 편집증인 욕망이 다시 살아났다. ”

그와 여행을 끝까지 같이한 ‘윌리스’(손수레 비슷한 그가 직접 설계하여 만듬) 를 보고 싶다. 한 번 만져 보고 싶다. 여행 중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인 휴메니즘과 그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옮긴이의 말처럼 그가 우리나라를 도보 여행 한다면 부분적이나마 동참하고 싶다.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장자크 루소,<<에밀>>중에서

그의 여정 : 터어키 이스탐불 -앙카라-에르주름-테헤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키르기스스탄- 투루판- 란저우- 중국 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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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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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사고로 뇌에 장애가 생겨 기억이 멈추어 버리고, 기억이 80분밖에 가지 않는 수학 박사, 그를 돌보러 그녀가 파출부로 박사의 집에 들어가 따뜻한 휴머니즘을 만들어 간다. 그녀의 아들도 수학 기호 루트로 불리어지고 야구를 통해 박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서로 교감을 나누어 간다.


   수학이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나에게도 숫자에 대해 다시 애정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하고 공감이 간다. “ 증명에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고가 있나요?” “ 진짜 증명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지. 틀리지는 않아도 너저분하고 짜증나는 증명도 얼마든지 있어. 알겠나? 왜 별이 아름다운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수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곤란한 일이지만 말이야.” 박사는 모든 것을 숫자를 통해 교감하고 소통한다. 그리고 수학적으로 귀결짓는다. 그녀의 아들을 보고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라 하며 루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놀이를 같이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아팠나 보죠?” “ 그 반대였다. 아프기는커녕 크고 강해서 끔쩍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가 사는 장소가 머릿속이라서 말이야. 머릿속에서나 놀 수 있었지. 그 곳에만 너무 에너지를 쏟아서, 뼈까지 가지 않은 모양이다.” “아 알았다. 그 친구가 바로 숫자로군요. 엄마가 박사님은 굉장한 수학 선생님이라고 그랬거든요.” 박사와 루트와의 대화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어느 세계적 수학자가 어떤 수식을 몇 년에 걸쳐 풀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학문 세계에 대한 집중력이 상상한 것 이상이다.


  “어떤 식에든, 어떤 숫자에든 의미가 있으니까 함부로 다루면 가없지 않니.” “문제에는 리듬이 있으니까, 음악하고 똑같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리듬을 타면 문제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함정이 숨어있을 만한 곳도 발견할 수 있거든.” 이 글을 읽으면서 수학 정석을 꺼내놓고 막 풀어보고 싶고 나도 처음으로 수식을 사랑하고 보듬고 며칠을 수에 대하서 생각하고 대 수학자와 이야기 하고 싶어 진다.


  파출부로 아들과 함께 박사와 따뜻한 인간애를 나누고, 숫자로 인간적 교류를 하면서 지내다 박사가 시설로 들어가고, 그녀의 아들은 수학 교사가 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맺는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가는 것은

1) 박사의 기억이 80분 정확하게 1시간 20분까지 밖에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녀의 아들 루트가 학교에 다녀와서 라디오 문제를 이야기 하는 부분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약간 엉성하게 연결된 점이 보인다.


2) 박사의 루트에 대한 생각이 끔직한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이 작품에서는 나타 나지 않는다. 즉 루트를 굶겨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는 하는 것이나, 루트가 아팠을 때 박사가 초인간적(박사의 몸 상태에서) 힘을 발휘해서 루트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것 등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아이를 좋아하는지 박사의 유년기에 문제가 있었던지.

   아무튼 재미있고 쉽게 읽혀지며 해설에서 말했듯이 ‘재미와 무게’를 충족시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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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5-2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의문이요... "그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줘야만 한다" 그런 생각 아니였을까요? 저는...이유가 없어서, 그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보호해줘야 하고, 아껴줘야 한단 박사의 생각에 공감을 느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