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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하루 ㅣ Mr. Know 세계문학 14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고
열린책들 황보석 옮김 2000년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이 소설은 단 하루를 시간적 공간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는 끼르기르스탄인이지만 까자흐스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초목 생활이나 민담, 전설에 대해서 또 그 당시의 철의 장막 같은 정치적 현실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소설은 요즈음 해외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까자흐스딴의 조그만 간이역 보란니 - 부란니에서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부란니 예지게이가 가장 고참 역무원 까잔갑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과정에서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민담과 여러 정치적 상황을 매개로 전개된다. 까잔갑은 주인공이 이 곳에서 정착하도록 도와주고 평생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망자의 아들에 반대를 무릅쓰고 간이역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까자흐인의 성스러운 전통적 매장지 아나 - 베이뜨(어머니의 안식처)를 매장지로 정하고 그 곳으로 가는 여정이 시간적 공간이다.
이 소설에서는 매장지로 향하면서 전개하는 예지게이의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살펴본다. 우선 낙
타의 이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그 당시 운송 수단으로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낙타와 함께 대화하며 분노하고 척박한 땅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예
지게이에게는 어린 새끼일 때 까잡갑으로 선물 받은 ‘까라나르’라고 부르는 낙타가 있다. 마치 그의 분신처럼 사랑하고 비교적 먼 지역의 사람들도 ‘까라나르’를 부러워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한 낙타의 신기한 내용도 있다. “ 보드카가 나오자 예지게이는 빈 잔을 비우고 나서 안주로 약간의 오르꼬츠- 어린 낙타의 육봉에서 뺀 기름을 먹으니 온몸이 후근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행복이 밀려왔다. 낙타는 육봉에 지방을 저장하는 데 그곳에 많은 지방을 저장한, 큰 육봉을 가진
낙타가 힘도 강하다.”
그 당시 철의 장막의 비밀 정치가 한 가정을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야기도 나온다. 학교
선생이었던 아부딸리쁘는 독소전쟁(2차 세계대전)시에 소련군으로 참전하여 싸우다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빨치산 투쟁을 하다 교직에 복귀한다. 그러나 포로로 잡혔을 때, “선생님 그러면 전쟁 포
로였나요?. 그렇다면 왜 자살하지 않았나요? 굴복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게 명령이었잖아요.” 당
간부 아들의 고발로 인민 교육부에 의해 해고 된다.
살 곳이 없어진 아부딸리쁘는 이렇게 이 간이역으로 흘러들어와 예지게이의 도움으로 역무원이
되어 살아간다. 척박한 간이역 마을에서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이웃과 정을 나누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그의 자식들이 읽어 볼 자신의 과거 시절의 역사를 기록하다가 고발되어 이 곳을 떠나 결국 죽게 된다. 예지게이는 이 사건에 많은 충격을 받고, 그의 부인
과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부인에게 연정도 가지고 고민한다.
이 소설에서 봉건주의 시대의 중국에서 보다 더 잔혹하고 꿈직한 그러면서도 가슴 아픈 민담은
결국 잊지 못하게 한다. 아주 옛날 중앙아시아의 사로제끄의 목초지를 놓고 경쟁하던 츄안유안 족
은 카자흐인을 포로로 잡아 ‘만꾸르뜨’라는 노예를 만들곤 했다.
이들에게 걸려든 노예는 도망을 못 가게하고 아무 의식 없이 동물처럼 주인을 섬기도록 소름끼
치는 행위를 한다. 우선 정복자는 어미 낙타를 죽여 묵직한 유방을 도려낸다. 그 것을 몇 조각으
로 나누어 아직 더운 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면도로 박박 민 포로의 머리에다 씌운다. 이것을
<시리>라고 한다.
그러면 그것은 민머리에 접착제처럼 들러붙는데 그 모습은 오늘날의 수영모자와도 비슷하다. 그
리고 족쇄를 채워서 고통으로 영혼을 찢는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먼 곳으로 끌려가 며칠 동
안 방치 된다. 그러면 머리에 씌어진 낙타의 생가죽이 말라 가면서 죄어드는 압력으로 죽어 가는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로제끄의 햇살 아래서 시리는 사정없이 노예가 될 사람의 머리를 쇠테
처럼 압박을 가한다.
다음날이 되면 희생자들의 박박 밀린 머리칼이 자라서 낙타 가죽을 뚫지 못하고 휘어져 사람의
머리 속으로 파고든다. 이 혹독한 과정 속에서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자만이 노예가 된다.
츄안츄안 족의 손에 넘어간 ‘만꾸르뜨’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구하려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모습만 사람이지 살아 있는 시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포로를 복종시키려면 그저 누군가
의 목을 자른다거나 겁을 주는 편이 쉬웠을 것이지만 츄안츄안 족은 그러는 대신 포로의 기억을 말
살시키고 그의 이성을 파괴하여 완전한 그들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설에 나이마-아나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 이 츄안츄안 족의 ‘만꾸르뜨’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구하러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고 주인 말만 듣고 화살을 쏘아 그녀를 죽이고 만다. 이 이야기로부터 위 글에 나오는 까
잔갑이 묻히러가는 ‘아나-베이뜨(어머니의 안식처)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 보니 이 ,만꾸르뜨‘가 바로 스탈린 시대에 대한 은유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독서 평이다.
결론으로 까잔갑은 이 ‘어머니의 안식처’에 묻히지 못한다. 그것은 아나-베이뜨가 어느새 로켓
발사 기지가 되어 철조망으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