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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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을 소개한 여러 글을 보면, ‘흡입력이 있다’, ‘한 번 이 책을 손에 잡으면 쉽게 놓지를 못 한다’,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소개가 과장이 아닌 것을 새삼 느꼈다. 감기 기운으로 머리가 몽롱했지만, 어떤 때는 혀를 끌끌 차면서, 때로는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이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즉 엉성하게 얽힌, 거친 한 가족사를 단숨에 읽어 버렸다.  쑤퉁의 <<이혼 지침서>>도 읽으려 구해놓고 시간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어느 것에 몰입하여 더위를 잊으려한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로데스크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존하기 위해서 서로 증오하고
죽이며 모함한다. 그것도 물질 등 어떤 필요에 의해서 맺은 혼인이지만, 일가친척끼리 심지어 부부
자식간에 서로 배신하고 악행을 밥 먹듯 자행한다.

   아무리 살기 어려운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이 소설은 그 당시 대국 중국 사람들의 삶 을 팍팍하고 처절하기만 한 것으로 그린다. 형이 제수씨의 임신한 배를 구타하고, 자매가 마치 원수지간 보다 더하게 싸우고, 가족 서로가 비웃고 괴물처럼 살아간다. 위화의 소설에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그 당시 소설에는 이렇게까지 삭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향의 <<뽕>>에는 낭만과 해학이 있고, <<감자>>의 복녀도, 그의 남편도 살기위한 우발적인 악행이지, 이 소설처럼 등장인물이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악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이 책은 중국의 중소 도시로 홍수 때문에 고향을 잃은 주인공 우룽이 흘러들어 오면서 시작된다. 
 우룽이 이 도시에서 굶주릴 때는 순박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는 ‘대홍기 쌀집’에서 ‘잠은 서서 자도 되니 삼시 세 때만 먹여 달라.’ 간청하여 일자리를 구한다. 주인집의 천대로 그는 서서히 복수의 칼날을 갈고, 그 쌀집의 자매의 괄시와 유혹이 더욱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다.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악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그에게, 주위 환경이 더욱 추악한 캐릭터의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우룽의 쌀에 대한 집착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된다. 쌀더미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간
통이 행해지며,  여자의 은밀한 곳에 쌀을 넣는 변태적인 행동을 반복 한다.  쌀을 구하기 위해 큰
배의 식구들을 모두 수장시키고 주위 사람들은 이런 악행에 공모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즐거워한다.

이 당시의 생존에 있어 돈보다 더 값진 것이 쌀일 것이다. 물론 쌀은 재물을 상징하고 이 당시의 물질문명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러다 보니 악행이 행해 지는 것이다.

   펑양수라는 시골에 살던, 어느 정도 순박했던 우룽이 대홍기 쌀집이 있던 와장가라는 도시에서
급격히 변해 간다. 도시의 급변하는 물질문명에 의해 한 인간이 어떻게 몰염치한 인간으로 세속화
되어 가는가. 즉 작가는 주위 환경에 의한 인간성 파괴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고도 볼 수 있다. 

  ‘대흥가 쌀집’ 사람들은 하나 같이 쌀과 같은 물질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모피 코트에 몸을 내준 큰 딸, 금붙이로 먹을 것으로 바꾸어 먹다가 동생을 죽인 우룽의 아들, 그래서 그의 아들 다리를 분지르고, 며느리들은 우룽이 빨리 죽어 유산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우룽 역시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조직 깡패 두목으로 활동한다. 그는 힘없는 자를 약탈하고 괴롭히는 온갖 망나니짓을 거듭하다가 사필귀정인가 중한 성병이 걸려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한다.

  우룽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에도 고향 펑양수에 대규모로 땅을 매입하여 돌아갈 준비를 한다
. 아무리 우여곡절의 삶이라도 그이 머리 속에는 한시도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에게 고향은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에서의 삼포처럼 그의 유토피아요, 파렴치한 그의 생을 보듬어줄 인간성 회복의 장소다.

  우룽은 그의 조카의 혹독한 고문으로, 거의 반죽음에 되어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가기 싫다는 작은 아들을 강제로 동행하여 고향으로 향한다. 기차 한 칸에 역시 쌀을 가득 채우고 가다가 쌀 위 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 보다는 혈안이 되어 땅 문서를 찾지만 허사로 끝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 중국에서는, 위화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으로 된 치아가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주인공 우룽도 멀쩡한 생 이를 모두 발치하고 금니를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허기야 이 금니가 이 소설의 끝 부분에서 작은 아들의 유일한 유산이 된 것이지만 말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숨 돌릴 사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이 흥미를 배가하고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나름대로 구성도 무난하고 다소 거치를 표현은 삭막한 소설의 내용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절제한 인간의 욕망의 허무함과 결코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물질이 최선이 될 수 없음을 은연중 나타낸다. 한 편으로는 인간의 선, 악은 선천적 선택인가? 아니면 주위 환경의 영향인 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의문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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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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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킹의 문체는 자유스럽고 시원스럽다.  거침없는 표현이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허황된 생각이 될까! “나 X하고 싶어” 등 거친 표현이 저자 거리의 욕설로 들릴 수 있지만, 상황에 맞고 보편적 인간이 가지는 정서를 그대로 표현, 마치 독자의 분노를 대신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은, 그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수동태를 쓰는 작가를 소심한 작가”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그의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근거다. “수동태를 쓰는 작가는 나약하고 종종 괴롭히기 까지 한다. ‘회의는 7시에 개최될 예정 입니다.’라고 쓴다. 당당히 써라. ‘회의 시간은 7시입니다.’라고 써라.” 라는 주장이 그의 글이 세련되면서 우리 마음속에 화살이 꽃이 듯 다가오는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옷감을 짜듯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인간의 내면심리의 묘사는 섬세하다 못해 독자를 전율의 도가니로 빠지게 한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로 나는 존그리 샴과 스티븐 킹을 많이 읽는 편이다. 지금까지 읽어 본 그들의 책중, 생각나는 책만 꼽는다면 존그리 샴의 <<의뢰인>>, <<거리의 변호사>>, <<그린마일>>, <<배심원>> 등이 있고, 스티븐 킹의 <<캐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쑈생크 탈출>>  등을 들 수 있다. 실제 직업이 변호사였던 존그리 샴은 문학성이 전문 소설 이상 수준이고 유머와 위트, 재치가 있다.  무절제한 인간의 욕망으로 거미줄 같이 얽힌 사건을 전문적인 법적인 상식을 통해서 흥미 있게 풀어간다. 이에 비해, 스티븐 킹은 인간 내면의 악마성이 얼마나 잔혹하게 나타날 수 있는가 보여준다. 떼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슬며시 도입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유영하게 만든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보면 어린 시절에 그의 어머니의 끝임 없는 글쓰기에 대한 칭찬과 독서를 격려했다고 한다. 그런 것이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독창적 상상력을 그가 가진 것이 아니진 생각해 본다.

   <<미저리>>는 단순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대중소설의 인기작가 폴 셀던이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그 장소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애니 월크스에게 구출된다. 아니 구출된다기 보다 납치 된다. 간호사 출신인 이 여자는 전반부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를 스토커하는 아주 열성 팬으로 알고 읽게 된다.  애니는 폴을 방안에 가두어 두고 소설을 쓰라고 강요한다. 소설 속에서 죽은 미저리를 살려내고 재미있게 자기를 위해서 글을 쓰라고 N자가 빠진 구식 타자기를 사다 준다.  그리고 작가들이 알지를 못하는 헛소리로 글을 애매하게 쓴다고 욕설을 퍼붓는다. 이 정도의 진도가 나갔을 때  이 여자가 평론가를 상징하고 폴이 스티븐 킹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작가가 평론가들의 무지함을 간접적으로 욕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그녀의 살인 전력과 조울증 비슷한 미친 행동으로 작가 폴을 괴롭히는 부분으로 들어갔을 때 완전히 미친 여자로 다가 온다. 미쳐도  때로는 지성적으로, 기분에 따라서는 아주 잔혹하게 광녀가 된다.  그녀가 사람을 톱질하고 토막내고 찌르고 하더라도, 폴과는 어는 정도 서로 연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애니 월크의 다중적이고 독특한 미친 행동과 심리를 이 책의 작가가 그렇게 섬세한 캐릭터로 만들어 낸 것은 정신 병원에 관찰하러 많이 다닌 것이 아닌가.

  이 소설은 읽는 내내 공포와 전율 감을 주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쥐 심장 뛰는 것이 이렇게 처절해!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이렇게 처절해! 이게 우리 모습이야. 우리는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쥐덫에 걸린 쥐만큼이나 아는 게 없어.” 애니가 폴을 빗대놓고 하는 말이다.    

  애니의 인간에 대한 적대감과 파괴 의식은 흥미롭고 애처롭다. 우리 모두 애니 월크스의 세계에 빠져 보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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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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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툼한 색다른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끌려 이 책을 검색하게 되었다.  뒤에 추천하시는 분이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손학규’ ‘김정남’ ‘신경숙’ 같은 분이 추천하여 열독하게 되었다. 1권을 일고 미쳐 2권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아 다음에 본격적인 리뷰를 쓰려고 약간의 메모만 하려 한다.

   느슨한 구성이 오히려 리얼리티를 더하는 것 같다. 요즈음은 우리 출판계에서는 노동계 소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고 있어 접할 기회가 적었다.  박노해 같은 사람이 한창 활동할 때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이런 분류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는데.  다수는 변절하고 자기들끼리 티격태격 선명성 싸움을 하고, 보수 신문의 활발한 왜곡 활동으로 시들해 졌다.

   이 책은 약간이나마 이런 나의 아쉬움을 보상해 준다. 앞으로 다시 한 번 읽을 것이다.

“ 자본가의 관점에서 보면 공장장님이 옳습니다. 그 기계는 코스의 재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
면 코스를 지배하고 있는 회사의 재산이겠죠. 하지만 우리 관점에서 보자면, 직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기계는 우리 것입니다. 이 기계에 그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노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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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1
카린 슬로터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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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추리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은 쉽게 집중할 수 있고, 재미가 있어 항상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왠지 흥미 위주의 독서가 되는 것 같아 꺼려 온 것도 사실이다.  알라딘 같
은 독서 싸이트에 들어가 보면, 상당한 수준의 추리소설 메니아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한 분야에 몰입하여 성과를 거두고 삭막한 인생살이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면, 그것도 독서의 효과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알라딘은 추리소설 읽기가 무조건 시간 낭비라는 나의 편견
을 약화 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린 슬로터의 <<의혹>>을 읽게 되었다. 1권에서는 범인이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지고 있을 수 있어서 그런대로 넘어 갔다.  2권서부터 앞의 내용이 중복되고, 개연성의 장치가 느슨하게 설정된 것이 보였다. 책을 집어 던졌다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작은 마을에서, 그 마을의 대학에서 여러 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마을의 의사 사라 런턴
을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을 검시하던 중 자기의 여동생이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시체로
발견 된다. 자기와 같이 사건 현장에 온 동생이 검시 중 타살된 것이다. 두 사건의 관련성에 강한
의혹을 품게 되어 이 소설은 시작된다.

 제프리라는 경찰 서장은 막가파식으로 범인을 수사하고, 결국에는 이 소설 끝부분에서 리처드라는 범인이 스스로 장황하게 자기의 범행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그런데 완전범죄 같은 엔디의 타살 사건에(자살로 위장) 대해서 별다른 설명 없이 자기가 그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자사로 위장하여 완벽하게 유서도 쓰게 하여 죽일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 소설의 장점은, 미약하지만 계속되는 사건과 조그만 대학 구성원간에 끈임 없는 의혹이 그래
도 이 책을 읽게 한다고 본다. 그리고 모두 알고 지내는 마을 사람들의 미묘한 갈등이 독자를 사로
잡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19세 미만의 구독 불가’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이 것은 19세 미만도 열심히 읽어라 하는 뜻으로 받아 들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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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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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꼽을 잡고 웃다가 또 눈물을 흘리며 읽는다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접하고 나서 위화라는 작가를 집중하게 되었다. 이 번에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읽으며, 또 한 번 슬프고도 답답하고, 웃으면서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고향인 시골에 가면 어릴 때부터 잘 아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젊었던 할머니는 이제 깊은 주름살에 코가 땅에 닫도록 굽은 허리로 요즘도 마을을 천천히 돌아다니신다. 그 할머니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그래도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리고(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는 사람의 일이
라) 살아가는 모습을 이 소설을 보면서 떠올려 본다. 그리고 TV 같은 매체에서 소개되는 장애 등
여러 어려움을 가진 분들을 보면 '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우냐'고 눈물을 흘리며 반
문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인간의 삶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높은 산으
로 바위를 지고 오르듯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위화의 소설은 웃음 속에서도 에둘러서, 살아가
는 것의 슬픔을 간접적으로 많이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구전되는 민요를 수집하러 활기찬 농촌에 돌아다니다, 소를 부리는 복귀라는 노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는 액자구성이다.

  복귀는 매우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온갖 여색을 탐하고, 노름 같은 잡기로 가산을 탕진한다.  그
의 아버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반 탕진하고 아들이 이번에 완전히 소작으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복귀가 읍내에서 여색을 즐기느라 며칠 일씩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의 아내 가진은 난
감했다. 그래서 당시의 분위기상 남편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요리를 통한 재치 있는 충고를 한다
.   "하루는 읍내에서 돌아오니 가진이 웃음을 가득 머금고 네 가지 요리를 정갈하게 차려 내 앞에
놓고 술을 권하더구먼. (중략) 그 네가지 요리는 모두 야채요리였는데, 각각 다르게 만들었지만 요
리 밑에는 모두 크기가 같은 돼지고기가 있었어.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마지막 요리를
먹고 나서 보니 밑에 또 돼지고기가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가진의 뜻을 알아차렸거
든. 그녀는 나를 깨우치려는 거야. 여자들이 겉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아래는 모두 같다는 뜻이었지
."  
  아무튼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집에 돌아온 복귀는 지주의 권위 등 모든 권한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만다.  그의 아버지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똥통에 넘어져 죽는다.  이런 가
운데 특유의 중국 사람들의 속성인지 급변한 자신의 환경을 수용하고 재빠르게 삶의 방향을 전환한 다.  복귀는 용이의 밭을 빌린 뒤 " 하루하루가 고되고 피곤했지만 마음은도리어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나는 우리 서씨 집안도 애초에는 한 마리 병아리에 불과했으므로, 내가 이렇게 일을 해나간다면 얼마 안 가서 병아리가 거위가 되고, 서씨 집안도 다시 일어설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지."  

   복귀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의사를 구하러 왔다가 하찮은 일로 사소한 싸움을 하다가 국민당군
장교에게 그 자리에서 징발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썩을 대로 썩은 국민당 군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에 참여하게 된 복귀는 꿈찍한 경험을 하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다. 

마치 그 옛날 삼국지를 보듯이 잘못된 내전으로 애매한 민중만 의미 없는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잃어 간다.  " 날이 밝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를 내놓고 보니 어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수 천 명의 부상병들은 전부 죽어 있더군. 되는 대로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그 시체들 위에는 엷게 눈이 덮여 있었지."

     그런데 전화위복인가, 아니면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모택동의 인민 정부가 들어서서
토지개혁이 시작되었다.  복귀의 재산을 노름으로 차지한 용이는 지주로 재산뿐 아니라 목숨마저도 몰수당하고 만다.  용이가 사형 당한 뒤 복귀가 하는 이야기는 웃음과 함께 위의 고사 성어를 대변 한다. "  애당초 아버지와 내가 집안을 패가망신시키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당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겠나. 얼굴을 문지르고 팔을 만져보았더니 다 괜찮더군."

    이 소설은 복귀의 식구들이 하나하나 죽는 것으로 그의 운명을 비탄에 빠지게 했다가 잊을만하
면 또 죽음의 불행이 시작된다.   복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난 다음 복귀는 약간의 휴식기를
가지고 그래도 평화롭게 살아간다. 

  복귀 가족이 고되게 살아가는 중에  모택동의 시대의 어두웠던 역사도 종종 나온다.
대약진 운동이라는 미명아래 집안에 있는 솥을 비롯한 쇠붙이를 모두 공출 받는다. 아마도 모자라
는 철강을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드럼통에 솥을 넣고 장작으로 그 것을 녹이려고 밤낮을 잠도
못자고 인민이 착취를 당하는 장면은 실소를 넘어 엉뚱하다. 그리고 강청 등의 사인방의 홍위병도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고단한 삶을 더욱 악화시킨다.

     복귀의 처 가진은 천상 어려웠던 60년대의 우리 어머니의 상이다.  대기근이 와 모든 사람이
굶기를 밥 먹듯이 할 때 가진은 아픈 몸을 이끌고 풀 한 뿌리라도 더 캐려고 바동거린다.  고구마
하나를 가지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목숨을 걸고 다투고,  연못물로 배우를 채우며 겨우 목숨만 부
지하는 시대에 가족을 위하여 철저히 자기를 희생한다.

   화불단행이라고, 가진의 병세가 위중할 때,  복귀의 아들 유경은 현장의 처를 살리기 위한 수혈
을 하고 죽고 만다. 가진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복귀도 슬픔의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자기
자식의 얼울한 죽음에 화 몇 번 내고, 수혈 대상자의 남편이 전장에서 전우였다고 어물 쩡 넘어가
는 것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체념의 사고가 몸에 밴 것인가.

      착하고 성실한 복귀의 딸 봉하도  출산을 하는 중 죽는다. 장애를 가지고 혼인을 하여 잘 살
아보려고 하다가 불행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녀의 남편도, 아들도 모두 죽는다.  오로지 복귀
와 소 밖에 남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복귀는 생과 사를 달관했다고 해야 되나. "옛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네. 내 붙이들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모조리
내 손으로 땅을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젠  내가 죽는다해도 안심이네.  내가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거두어 주겠지. 베게 밑에 10원을 넣어두었는데 그것으로 장례를 (중략)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정말 순식간에 지나버렸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우여곡절의 처절한 삶도 생각하기 나
름이다. 눈물을 발판 삼아 다시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마치 복귀처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위
화는 말한다.  작가는 현실을 그리되 폭로하고 발설, 까발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의 선과 악을 동일시하고, 동정의 눈으로 세계를 대하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 소설은
슬프지만 따뜻하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역사와 낯설지 않고 우리 조상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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