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을 소개한 여러 글을 보면, ‘흡입력이 있다’, ‘한 번 이 책을 손에 잡으면 쉽게 놓지를 못 한다’,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소개가 과장이 아닌 것을 새삼 느꼈다. 감기 기운으로 머리가 몽롱했지만, 어떤 때는 혀를 끌끌 차면서, 때로는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이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즉 엉성하게 얽힌, 거친 한 가족사를 단숨에 읽어 버렸다.  쑤퉁의 <<이혼 지침서>>도 읽으려 구해놓고 시간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어느 것에 몰입하여 더위를 잊으려한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로데스크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존하기 위해서 서로 증오하고
죽이며 모함한다. 그것도 물질 등 어떤 필요에 의해서 맺은 혼인이지만, 일가친척끼리 심지어 부부
자식간에 서로 배신하고 악행을 밥 먹듯 자행한다.

   아무리 살기 어려운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이 소설은 그 당시 대국 중국 사람들의 삶 을 팍팍하고 처절하기만 한 것으로 그린다. 형이 제수씨의 임신한 배를 구타하고, 자매가 마치 원수지간 보다 더하게 싸우고, 가족 서로가 비웃고 괴물처럼 살아간다. 위화의 소설에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그 당시 소설에는 이렇게까지 삭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향의 <<뽕>>에는 낭만과 해학이 있고, <<감자>>의 복녀도, 그의 남편도 살기위한 우발적인 악행이지, 이 소설처럼 등장인물이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악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이 책은 중국의 중소 도시로 홍수 때문에 고향을 잃은 주인공 우룽이 흘러들어 오면서 시작된다. 
 우룽이 이 도시에서 굶주릴 때는 순박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는 ‘대홍기 쌀집’에서 ‘잠은 서서 자도 되니 삼시 세 때만 먹여 달라.’ 간청하여 일자리를 구한다. 주인집의 천대로 그는 서서히 복수의 칼날을 갈고, 그 쌀집의 자매의 괄시와 유혹이 더욱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다.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악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그에게, 주위 환경이 더욱 추악한 캐릭터의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우룽의 쌀에 대한 집착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된다. 쌀더미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간
통이 행해지며,  여자의 은밀한 곳에 쌀을 넣는 변태적인 행동을 반복 한다.  쌀을 구하기 위해 큰
배의 식구들을 모두 수장시키고 주위 사람들은 이런 악행에 공모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즐거워한다.

이 당시의 생존에 있어 돈보다 더 값진 것이 쌀일 것이다. 물론 쌀은 재물을 상징하고 이 당시의 물질문명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러다 보니 악행이 행해 지는 것이다.

   펑양수라는 시골에 살던, 어느 정도 순박했던 우룽이 대홍기 쌀집이 있던 와장가라는 도시에서
급격히 변해 간다. 도시의 급변하는 물질문명에 의해 한 인간이 어떻게 몰염치한 인간으로 세속화
되어 가는가. 즉 작가는 주위 환경에 의한 인간성 파괴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고도 볼 수 있다. 

  ‘대흥가 쌀집’ 사람들은 하나 같이 쌀과 같은 물질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모피 코트에 몸을 내준 큰 딸, 금붙이로 먹을 것으로 바꾸어 먹다가 동생을 죽인 우룽의 아들, 그래서 그의 아들 다리를 분지르고, 며느리들은 우룽이 빨리 죽어 유산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우룽 역시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조직 깡패 두목으로 활동한다. 그는 힘없는 자를 약탈하고 괴롭히는 온갖 망나니짓을 거듭하다가 사필귀정인가 중한 성병이 걸려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한다.

  우룽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에도 고향 펑양수에 대규모로 땅을 매입하여 돌아갈 준비를 한다
. 아무리 우여곡절의 삶이라도 그이 머리 속에는 한시도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에게 고향은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에서의 삼포처럼 그의 유토피아요, 파렴치한 그의 생을 보듬어줄 인간성 회복의 장소다.

  우룽은 그의 조카의 혹독한 고문으로, 거의 반죽음에 되어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가기 싫다는 작은 아들을 강제로 동행하여 고향으로 향한다. 기차 한 칸에 역시 쌀을 가득 채우고 가다가 쌀 위 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 보다는 혈안이 되어 땅 문서를 찾지만 허사로 끝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 중국에서는, 위화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으로 된 치아가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주인공 우룽도 멀쩡한 생 이를 모두 발치하고 금니를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허기야 이 금니가 이 소설의 끝 부분에서 작은 아들의 유일한 유산이 된 것이지만 말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숨 돌릴 사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이 흥미를 배가하고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나름대로 구성도 무난하고 다소 거치를 표현은 삭막한 소설의 내용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절제한 인간의 욕망의 허무함과 결코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물질이 최선이 될 수 없음을 은연중 나타낸다. 한 편으로는 인간의 선, 악은 선천적 선택인가? 아니면 주위 환경의 영향인 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의문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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