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배꼽을 잡고 웃다가 또 눈물을 흘리며 읽는다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접하고 나서 위화라는 작가를 집중하게 되었다. 이 번에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읽으며, 또 한 번 슬프고도 답답하고, 웃으면서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고향인 시골에 가면 어릴 때부터 잘 아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젊었던 할머니는 이제 깊은 주름살에 코가 땅에 닫도록 굽은 허리로 요즘도 마을을 천천히 돌아다니신다. 그 할머니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그래도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리고(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는 사람의 일이
라) 살아가는 모습을 이 소설을 보면서 떠올려 본다. 그리고 TV 같은 매체에서 소개되는 장애 등
여러 어려움을 가진 분들을 보면 '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우냐'고 눈물을 흘리며 반
문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인간의 삶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높은 산으
로 바위를 지고 오르듯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위화의 소설은 웃음 속에서도 에둘러서, 살아가
는 것의 슬픔을 간접적으로 많이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구전되는 민요를 수집하러 활기찬 농촌에 돌아다니다, 소를 부리는 복귀라는 노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는 액자구성이다.

  복귀는 매우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온갖 여색을 탐하고, 노름 같은 잡기로 가산을 탕진한다.  그
의 아버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반 탕진하고 아들이 이번에 완전히 소작으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복귀가 읍내에서 여색을 즐기느라 며칠 일씩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의 아내 가진은 난
감했다. 그래서 당시의 분위기상 남편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요리를 통한 재치 있는 충고를 한다
.   "하루는 읍내에서 돌아오니 가진이 웃음을 가득 머금고 네 가지 요리를 정갈하게 차려 내 앞에
놓고 술을 권하더구먼. (중략) 그 네가지 요리는 모두 야채요리였는데, 각각 다르게 만들었지만 요
리 밑에는 모두 크기가 같은 돼지고기가 있었어.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마지막 요리를
먹고 나서 보니 밑에 또 돼지고기가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가진의 뜻을 알아차렸거
든. 그녀는 나를 깨우치려는 거야. 여자들이 겉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아래는 모두 같다는 뜻이었지
."  
  아무튼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집에 돌아온 복귀는 지주의 권위 등 모든 권한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만다.  그의 아버지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똥통에 넘어져 죽는다.  이런 가
운데 특유의 중국 사람들의 속성인지 급변한 자신의 환경을 수용하고 재빠르게 삶의 방향을 전환한 다.  복귀는 용이의 밭을 빌린 뒤 " 하루하루가 고되고 피곤했지만 마음은도리어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나는 우리 서씨 집안도 애초에는 한 마리 병아리에 불과했으므로, 내가 이렇게 일을 해나간다면 얼마 안 가서 병아리가 거위가 되고, 서씨 집안도 다시 일어설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지."  

   복귀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의사를 구하러 왔다가 하찮은 일로 사소한 싸움을 하다가 국민당군
장교에게 그 자리에서 징발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썩을 대로 썩은 국민당 군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에 참여하게 된 복귀는 꿈찍한 경험을 하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다. 

마치 그 옛날 삼국지를 보듯이 잘못된 내전으로 애매한 민중만 의미 없는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잃어 간다.  " 날이 밝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를 내놓고 보니 어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수 천 명의 부상병들은 전부 죽어 있더군. 되는 대로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그 시체들 위에는 엷게 눈이 덮여 있었지."

     그런데 전화위복인가, 아니면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모택동의 인민 정부가 들어서서
토지개혁이 시작되었다.  복귀의 재산을 노름으로 차지한 용이는 지주로 재산뿐 아니라 목숨마저도 몰수당하고 만다.  용이가 사형 당한 뒤 복귀가 하는 이야기는 웃음과 함께 위의 고사 성어를 대변 한다. "  애당초 아버지와 내가 집안을 패가망신시키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당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겠나. 얼굴을 문지르고 팔을 만져보았더니 다 괜찮더군."

    이 소설은 복귀의 식구들이 하나하나 죽는 것으로 그의 운명을 비탄에 빠지게 했다가 잊을만하
면 또 죽음의 불행이 시작된다.   복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난 다음 복귀는 약간의 휴식기를
가지고 그래도 평화롭게 살아간다. 

  복귀 가족이 고되게 살아가는 중에  모택동의 시대의 어두웠던 역사도 종종 나온다.
대약진 운동이라는 미명아래 집안에 있는 솥을 비롯한 쇠붙이를 모두 공출 받는다. 아마도 모자라
는 철강을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드럼통에 솥을 넣고 장작으로 그 것을 녹이려고 밤낮을 잠도
못자고 인민이 착취를 당하는 장면은 실소를 넘어 엉뚱하다. 그리고 강청 등의 사인방의 홍위병도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고단한 삶을 더욱 악화시킨다.

     복귀의 처 가진은 천상 어려웠던 60년대의 우리 어머니의 상이다.  대기근이 와 모든 사람이
굶기를 밥 먹듯이 할 때 가진은 아픈 몸을 이끌고 풀 한 뿌리라도 더 캐려고 바동거린다.  고구마
하나를 가지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목숨을 걸고 다투고,  연못물로 배우를 채우며 겨우 목숨만 부
지하는 시대에 가족을 위하여 철저히 자기를 희생한다.

   화불단행이라고, 가진의 병세가 위중할 때,  복귀의 아들 유경은 현장의 처를 살리기 위한 수혈
을 하고 죽고 만다. 가진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복귀도 슬픔의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자기
자식의 얼울한 죽음에 화 몇 번 내고, 수혈 대상자의 남편이 전장에서 전우였다고 어물 쩡 넘어가
는 것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체념의 사고가 몸에 밴 것인가.

      착하고 성실한 복귀의 딸 봉하도  출산을 하는 중 죽는다. 장애를 가지고 혼인을 하여 잘 살
아보려고 하다가 불행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녀의 남편도, 아들도 모두 죽는다.  오로지 복귀
와 소 밖에 남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복귀는 생과 사를 달관했다고 해야 되나. "옛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네. 내 붙이들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모조리
내 손으로 땅을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젠  내가 죽는다해도 안심이네.  내가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거두어 주겠지. 베게 밑에 10원을 넣어두었는데 그것으로 장례를 (중략)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정말 순식간에 지나버렸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우여곡절의 처절한 삶도 생각하기 나
름이다. 눈물을 발판 삼아 다시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마치 복귀처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위
화는 말한다.  작가는 현실을 그리되 폭로하고 발설, 까발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의 선과 악을 동일시하고, 동정의 눈으로 세계를 대하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 소설은
슬프지만 따뜻하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역사와 낯설지 않고 우리 조상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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