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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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선택하고 나서, ‘왜 심장이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 의아해 했다. 일천한 나의 인문 사회학적 지식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필자가 진보적 좌파 지식인이라 그런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료를 찾아보니 비로소 이해가 갔다.

 이 책의 제목인 이 말은 좌파의 오랜 수사로 고인이 항상 강의 시간에 강조해 온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라는 말과 함께 필자의 모토가 된 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마음이 왼쪽을 지향하므로 부자보다는 빈자를 강자보다는 약자를 배려하며 살라함이 아닌 것이지.

이 책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에 여시아독(如是我讀)으로 독후감 형식을 빌고 있다.  평생을 책에 천착해오고 지독한 책벌레로 그가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들어간 글이기 때문에 쉽게 막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또한 ‘어깨에 힘을 빼서 소리를 낮춰 사랑과 희망을 가지고’(54쪽) 쓴 글이기 때문에 왼쪽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칼럼의 특성상 짧은 글의 형식이지만 촌철살인 같은 그의 철학이, 날카로운 세계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누구 말과 같이 ‘밥벌이의 지겨움’때문인지 아니며 삶의 연륜 으로 인한 순응인지, 보수 신문에서 떠드는 애기가 가끔 나와  약간 실망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메이저 신문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끝까지 자기의 이념을 밀고 갔으면 했는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도 이 책 ‘성장이나 분배냐를 넘어서’에서 그는 목욕탕에서 만난 ‘조그만 기업’인의 입을 빌어 경제의 어려움을 애기한다. 보수 신문이 노무현을 까기 위해서 많이 쓰던 수법이 택시 운전기사 말을 많이 인용하는데, 아무튼 IMF 때 보다 경제가 안 좋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경기가 안 좋은 정점에 정치가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의 LG 카드 문제 등 위기를 잘 마무리 한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집권 정부의 책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초기부터 거대 야당이 발목을 잡고, 보수 언론이 대통령으로 인정을 않는 상황에서 경제가 잘 될 리가 없다. 왜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  소위 메이저 신문에 칼럼을 쓰는 역량 있는 지식인인 필자는 정치의 시시비비를 언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소외되고 음지에 섰던 많은 이들의 희망이었던 정운영이 노무현 탄핵 때 부당성에 대해, 아니면 정당성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필자는 그 잘 쓰는 달필로 어정쩡하게 양비론이나 펼치지 않았는가 묻고 싶다. 하기야 얼마 전에 노동 운동하고 노동계에서 감투 썼던 인간들이 중도도 아니고 오른 쪽으로 홱 돌아서서 골통 보수보다 더한 짓거리를 하는 행태를 한두 번 보아왔나.  

또한 그는 “나는 여전히 분배론자이다.”라는 전제하에 “성장을 통해 분배의 공정을 도모할 수 있지만. 공평한 분배로는 성장을 기약하지 못한다.”(163쪽) 고 말한다. 이것이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라도 주류 신문에 경제학자라는 교수들이 매일 등장하여 씨부렁거리는 이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분배냐 성장이냐는 신선놀음에 나라 경제 썩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왜 이렇게 골골하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왜 투자를 피하는지도 아마 대통령을 빼고는 모두가 알 것이다. 투자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자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162쪽)
정말 대통령은 신문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에 꽝이라, 경제수석이 보고해도 말귀를 못 알아들어 먹는다는 안타까움인지 나는 모르겠다. 정말 그 대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 속내를 필자가 몰라서 능청을 떠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마지막 장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에서 필자는,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은 유권자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2030세대는 개혁 대상과 대안을 확실히 정하고 개혁을 지지하여 노무현을 지지 했는지 아니면 기득권층이 싫어서 그랬는지”(248쪽) 우려를 표하면서 “개혁은 집요하게 추진하되 그 방법만은 크게 요란하지 않으면 좋겠다.”(249쪽)고 충고한다. 새로 태어난 정부에 대해 ‘김대중 정부의 반면교사’(249쪽)의 예를 들면서 잘 되기를 주문하는 것은 언론에 몸담은 자로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주문은 개혁을 하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왜 기득권층도, 보수언론도 서로 도와 개혁이 완성되게 하자라는 요구는 없는가. 그리고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가 ‘개혁 대상과 대안’까지 고려해서 투표하는가?
순 억지소리로 들리는 것은 나의 정치적 식견 부족 탓인가?

이 장의 ‘쇳소리 나지 않는 개혁을’에서 로맨티스트이자 창백한 인텔리케차의 염려가 노골적으로 들어난다. 필자는 이 말을 하고 싶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에둘러 말한 것인 아닌 가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원위가 마련한 ‘재벌, 금융 개혁 방안’에 계열 분리 청구가 포함되었다고 한다.”(252쪽)
“노무현 정권의 개혁 행로가 쇳소리와 칼바람을 부를지 점진과 자율로 기울지, 그것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253쪽) 라고 말하면서 “새 정권에 새로 전하거니와 개혁은 쿠테타가 아니라 일상의 생존 방식이 돼야 한다.”(253쪽)고 걱정하고 또 새 정권을 물가에 내놓은 애들 마냥 염려 한다. 이제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안심할 것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더 친 재벌 적이고, 뭔가 개혁하려 하면 벌떼같이 일어나는 보수 기득권층의 반발로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현실을 안다면.

내가 보는 견지로는 과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 책의 필자 정운영은 좌파와 보수를 아우르는 글이 아닌 분명히 보수 쪽에 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보수 신문이 정운영에게 지면을 할애 한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 가 아닌 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개혁 작업에 ‘끼워 팔가’로 밀어 넣은 언론 관계 법안이 비판적인 신문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확실하다.”(294쪽) 여기서 비판적 신문에 재갈을 물린다는 문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나는 이 책 마지막 몇 장을 읽지 않고 덥고 말았다. 나는 필자가 노무현 정부의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기를 바랐다. 족벌언론, 사학, 재벌 등 난마처럼 이리저리 얽혀서 아직도 힘이 막강한 자들을 개혁하는 대안을 제시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동의 할 수 없는 내용의 글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칼럼 집 하나로 그를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1장에서처럼 책을 읽고 잔잔한 목소리로 그 감상 평을 전하는 것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챕터1의 ‘여시아독(如是我讀)’의 책 소개 중에서 내가 꼭 읽고 싶은 목록>
 
독토머스 머턴의 <장자의 도>는 “영문학 전공의 여교수가 번역했는데 그의 전공에서 오는 선입관을  붙들어 매라고 이 칼럼의 필자는 말한다.” <장자의 도>의 머턴은 동양 사상에 심취한 영국인 사제가 장자에 나오는 숱한 해학, 우화, 경구 가운데 그 정수를 가려내 62편의 시로 번안한 ‘시편’이다.”라고 소개한다.

“‘제 3의 길’ 전도사이고, 블레어 노선 코치”라고 표현하면서 앤서니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를 소개 한다.  저자 때문에 살 마음이 생겼고, 제목 때문에 책을 샀다고 말하면서 칼럼은 시작된다. 이 책을 읽고 칼럼은 기든스을 “‘발은 우향우로 돌면서도 입으로는 새로운 중도 좌파’”라고 한탄을 한다. (18쪽) 이 책이 기대에 기든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상당히 못 미치는 느낌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칼럼의 말미에 “노동당 간판을 앞세운 정당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한 즈음 이 책은 8000원 본전의 몇 곱이나 되는 교사와 지혜와 반면교사의 경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라고 이 책을 읽는 의의를 찾는다.

역사연구소가 집필한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의 소개는 우리 노동자들의 위상을 역사와 현재로 구분하면서 잘 알리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미국의 노동총연맹은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데이의 효시라고 한다.
우리 메이데이의 변천은, 근로일(1938.일제시대)- 노동운동 주도 좌익계 전평(全評)- 정치 운동 이유로 1947 전평 불법화-대한노총- 노동절(1957.03.10)-근로자의날(1963)-민주노총(1990) 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이 칼럼은“이 책은 치열한 시대의 치열한 보고서이다”라고 단정 짓는다.

‘책임 투자로 좋은 세상을’이라는 제목으로 에이니 도미니의 <사회책임투자>를 언급한다. 눈에 띠는 대목은 “일례로 나이키 주식을 사는 행위는
 투자지만, 나이키의 베트남 공장이 노동자를 가혹하게 대하는 사실을 알고 주식을 팔아버리면 사회 책임 투자가 된다.”“디즈니의 <101마리 달마티안> 강아지 잠옷은 아잍티 에서 6센트에 만드는데 미국에서 20달러에 팔린다. 디즈니 주식을 투자 대상에서 빼버려 아이티에서 착취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좋은 세상’이다. ”로 사회적 책임 투자로 부자보다는 빈자를, 강자보다 약자를 배려할 것을 주문한다.

<김남주 평전>은 이 칼럼의 저자와 같이 덥석 사서 당장 읽고 싶다. 김남주 시 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 도 역시 소개된 시 몇 구절에 울면서 읽고 싶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피로 쓴 그의 민주를 향한 처절한 절규를, 민중을 위한 정열을 느껴보고 싶다. 그는“시인은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41쪽)면서 시 대신 무기를 잡는다. 남민전이라는 조직 활동의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 그는 감옥에 가면서 반려자 박광숙에게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42쪽) 말했다고 한다.

2002년에 쓴 이 칼럼에서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주목하고 있다. 즉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라는 구호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라는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룰라와 노동자당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 하고 정치적 혁명을 기대 한다. “1차 투표에서든 27일 결선 투표에서든 그가 당선된다면, 1970년 칠레의 아옌데 이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좌파 정권이 남미에 출현하는 것이다.”(86쪽)

그런데 그는 필자의 기대처럼 대통령이 되었다.(2002년)
보수 신문에서는 ‘노동귀족’과 ‘포퓰리즘’과의 타협을 철저히 막은 룰라를 닮으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계속 요구하였다. 룰라가 초등교만 졸업하고 좌파에 비주류에 속하여 현 대통령과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가 보수 신문이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 일까,  줄곧  룰라 따라하기를 주문했다. 일천한 나의 상식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룰라는 2004년까지 지지율이 높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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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단식 다이어트 & 건강법
백승헌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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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갈수록 몸무게가 불어 절식하고 다이어트를 한지 약 100일이 되었다. 8㎏ 줄였지만 아직도 만족 할 수 없어 고전분투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감량이 되다가 두세 달 지나면 정체기가 있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적지 않은 노력을 한 것 같은데 체중계의 바늘이 꿈쩍을 하지 않으면 실망도 되고,  또한 의지도 약해진다.  그러다 보면 술도 입에 대게 되어 다시 악순환이 거듭 되는 것이다.

  다이어트 관련 책을 읽다보면 감량에 도움이 될 까하여 이 책을 선택하였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약하고 주어진 환경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필요 없는 군살을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쩌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다이어트 관련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무관심해진 경우도 있으리라.

매스컴 중 신문으로는 다른 내용은 몰라도 다이어트(건강) 정보에 있어 조선일보가 제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매스컴들이 좀 더 색다르고 쇼킹한 정보를 찾다가 보니 아주 극단적이고 비과학적인 프로그램을 종종 소개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가 습득한 지식과 경험으로 비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input가 output보다 많기 때문 인 것으로 본다. 즉 잉여 열량을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나의 경우는 술이 문제다.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줄이려고 해도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안주를 안 먹어 보기도 하고, 술을 먹기 위해 몇 끼니를 굶기까지 한 경우도 있다. 정말 술과 스트레스는 다이어트에 최대 적이다.

지금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에 불과하다. 그러면 한 때 대체의학으로서 많이 활용되었던 ‘생활 단식’은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 저자의 이론을 근거로 알아보겠다. 어느 책에서 보니 ‘단식은 칼을 안댄 수술이다.’라고 하였다. 음식 섭취를 끊어 우리 몸을 청소하고 장기에 휴식기를 주어 더 기능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했을 것이다.  저자는 장기간의 단식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곤란하기 때문에 주말 등 하루나 이틀에 걸쳐하는 단식을 권한다. 즉 이것을 ‘생활 단식’이라 명명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몸이 아프면 마루 밑에 겨들어가 나오지 않고 음식을 거부 한다. 이 책에서는 “동물들은 아프면 무작정 굶는데 이것도 자연치유력을 높이기 위한 본능적 단식이다.”라고 했다. (본문 21)  내가 알기로도 몸이 아픈데도 오로지 먹는 종은 인간 밖에 없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때가 되면 관성적으로 숟가락을 드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한 끼 굶으면 다음에 많이 먹는다는 핑계로 말이다. 이런 미련한 짓을 그만두고 일단 시장하지 않으면 과감히 굶어야 할 것이다.

“음식의 공급이 끈기면 몸 안에 과잉 축적되어 있던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숙변이나 독소 물질 등이 제거 된다. 또한 체내의 대표적 에너지 체계인 신경과 호르몬, 혈액, 氣에너지 등의 밸런스가 적절히 조절된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각종 원인 불명의 질환이나 체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병하는 질병의 대부분은 단식으로 치유할 수 있다.” (본문 23)  숙변이라는 개념이 양의에서는 없다. 며칠을 굶고 대장 내시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식을 하고 관장을 하면 콜타르 같은 변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양의에서는 굶어도 담즙은 나오기 때문에 변의 색깔이 그렇다고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 더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다.

생활단식의 효과로 (본문 29) 1. 체내 불순물 및 노폐물이 제거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감) 2. 혈액이 정화되며 면역력이 증대된다. (전혀 공감할 수 없음) 3. 비만 해소 및 체질의 균형이 잡힌다.( 많이 공감)

이 글에서 체중은 한꺼번에 줄이려 하지 말고 서서히 장기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요요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본문 154) 맞는 말이다. 우리 몸은 ‘항상성의 원리’를 가져서 항상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가려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적게 먹으면 더 많이 저장하여 비상시 대비하려는, 시키지도 않는 일을 우리 몸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10년 단위로 봤을 때 다이어트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자가 요요현상을 언급해 놓고, 자기는 4주 만에 11㎏을 뺄 수 있었다고, 그것도 바로 앞장에서 자랑하는 것은 모순이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알은 것은 유럽의 ‘피타고라스’ ‘뉴턴’ ‘톨스토이’ 등도 단식을 선호 했다는 사실이다.  동양 중 대체의학이 가장 발달하고 활용되는 나라는 일본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니시 요법, 풍욕, 조식폐지, 등 우리의 단식 이론은 일본 것을 많이 모방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많은 대체의학 중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수많은 실험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 뿐이다.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산소 래디칼(활성 산소, 유해 산소)이 많이 생성되어 노화 등 많은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천년을 산다는 천년 학은 위의 5분의 1만, 심지어 돼지도 위의 80%만 채우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본문 220)  할!  나는 술을 먹으면, 위장이 취해서 그런지 계속 먹는데 돼지만도 못하단 말인가.

적게 먹자! 소식!  참으로 말하기 쉽고 흔한 말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습관화하여 위를 줄이자.   적은 칼로리의 음식 섭취. 그래서 건강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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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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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옛 친구이자 학문적 라이벌 이시가미 와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의  두뇌와 끈기 대결이 펼쳐진다. 수학의 천재로 알려진 이시가미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역시 물리학 교수 우가와 마나부는 명석한 두뇌와 조직력으로 그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그 대결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두 친구는 서로 배려하면서 다른 목적으로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마나부는 이시가미를 이렇게 평가한다.
“ 이시가미라면 지금쯤 대학교수가 되어 리만의 가설에 도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달마 이시가미가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엘데슈의 뒤를 이어 방랑하는 수학자라도 된 건가?” (본문 117)
 

 또한 이 소설은 이성과 감성, 치밀한 사고와 감성적 사고의 공존하면서, 때로는 서로 배척하면서 글을 이끌어 간다. 이가미는 삶의 의욕을 읽고 그의 연립주택에서 자살하려고 밧줄을 준비하고 실행 단계에 옮기는 찰나에 초인종이 울린다. 문 앞에 서 있는 두 모녀를 보고 그의 삶은 새로운 활기를 찾는다.
“이시마의 몸속으로  뭔가가 치달렸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그때까지 그는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을 빼앗기거나 감동한 적이 없었다. 예술의 의미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본문 392)

 이시가미의 하나오카 야스코에 대한 나 홀로 사랑은 이 때부터 불붙기 시작한다.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열정적 사랑을 앞뒤 가리지 않고 올인 한다. 그것은 하루 종일 밤새도록 수학 문제에 몰두할 정도의 집중력을 가진 그의 외골수 성격이 한몫 했을 것이다. 

 아무튼 사랑의 힘은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듯이 천재 수학자를 사로잡았다. 대부분 이과 계통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사고를 하고, 이지적이며, 그게 도를 넘으면 냉정하고 이기적이기 까지 하다. 그런데 천재 수학자가 그것도 중년이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하여, 살인 사건에 개입하여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위력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추리 소설은 수학의 공식도 동원되고 과학적 이론을 통한 추리도 이야기의 필연성을 더하게 한다. 또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조작과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 소설의 흥미를 배가 시킨다. 한 예로 알리바이를 위하여 극장의 반 권을 너무 챙겨놓으면 인위적 조작으로 생각할까봐 팸풀릿에 끼워 무관심한 척 한다. 이 보다 더 극적인 것은 이 소설의 말미에 등장한다. 도미가시의 시체를 본 이시가미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기하학 문제를 풀듯이 순식간에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이에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도 막상막하다. 구시나기 형사가 이시가미 학교에 찾아 갔을 때, 그가 마침 수학 문제를 내고 있었는데 어렵지 않느냐고 했을 때.“선입견으로 맹점을 찌른다.”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유가와는 놀란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뉴얼대로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한 학생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는 문제다.”라고 그 교수는 말한다.       

또 한 유가와는 “P≠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라는 이시가와의 말을 전하면서 구시나기에게 충고한다.
“ ‘이것은 범인이 조작한 알리바이로 자수를 하고, 경찰이 그것을 풀어라’라는 뜻으로 이시가미는 하나의 대답을 자네들에게 제시했어. 이번의 자수이고, 진술내용이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들의 패배를 뜻해. 자네들이 지금 취하는 방식은 그가 제시한 증명방법을 그냥 따라가고 있을 따름이야.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해답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내고, 그가 제시한 해답 말고는 절대로 다른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해답이 유일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 (본문 339-340)


  그의 하나오카 야스코에 대한 헌신적 사랑은 사회적 통념을 초월한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감옥살이를 자처하고 자수의 길을 택하는 이시가미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난감하다. 정작 야스코는 그의 헌신은 고마워하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자포자기 했던 자기의 삶에 잠시나마 의지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한 보답인지. 아니면 그녀를 향한 사랑의 욕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선, 악의 개념 없이 범죄에 가담한 것인지.  아무튼 오랜만에 추리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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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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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의 매력에 끌려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이 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애니메이션 및 게임으로 변환되어 많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소위 추리소설 형식에 모험 판타지 성격을 띤 소설. 거기에 작가의 ‘미다스의 손’과 같은 문체로 윤색해서 독자를 몰입으로 이끄는 미야베 미유키의 역작으로 보인다.

 ‘용기 있는 이야기’를 제목으로 복잡한 가정환경을 환상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주인공 초딩 5학년 와타루. 그는 자신의 꿈과 평화의 안식처인 가정이 붕괴의 위험에 처하게 되자 어린 몸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친구 가 짱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집을 나간 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어른의 세계를 잘 모르는 와타루의 눈물겨운 아버지에 대한 호소가 무산되고 만다. 이 작가의 소설의 특징은 ‘모방범’에서도 그렇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의 반사회적 성향을 가정 붕괴에서 오는 것으로 본다. 이혼으로 인한 한 부모 가정 등 가정불화 속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사건의 범인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이 소설이 ‘어떻게 될까’하는 의문을 계속 가지게 하는 구성 면에서도 흥미가 있지만, 특히  나는 이 작가의 문체에 주목하고 싶다. 어린 아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별 것 아닌 것도 전개 내용에 훼손 없이 맛있게 그려낸다.
“다이마쓰 가오리는 예쁜 여자아이였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가리켜 ‘예쁘다’고 평할 때 ‘예쁘다’말 저 밑바닥에는 정말 자랑스럽고 기뻐서 견딜 수 없다는 의미가 숨어 있을 것이다. ‘아이, 나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예뻤다’.”(본문 45)
 와타루가 가오리를 만나면서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 과정의 묘사다. 그냥 ‘매우 예뻤다.’의 표현을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했다.  ‘얼굴이 예쁘다.’를 말할 때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묘사로 본다.

   공사가 중단된 학교 근처의 건물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아니 보았다는 소동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모방범’에서도 부동산 붕괴로 짓다만 건물들이 살인의 장소로 등장하지만, 이 곳은 와타루 같은 11세의 아이들이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질만한 장소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초자연적 현상을 불러오고 거기에 편승에서 이상한 일이 증폭된다. 정체불명의 목소리, 그 장소에서 만난 건물주의 정상적이지 않은 그의 딸,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와타루의 내면에 폭풍처럼 밀려오는 환상 등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복선이 된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던 와타루에게 닥친 부모 이혼이라는 현실적 운명. 이 운명을 되돌려보려 그는 환상의 고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와타루는 ‘비전’즉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 부모의 이혼을 되돌리고 망가진 가정을 복원 할 것인가?  몇 번이고 운명의 문에서 제어당한 경험이 있는 와타루는 무사히 성공할 것인가? 10년에 한 번 열린다는 ‘요어문’을 통과해 자신의 존재의 불안을 극복하고 현실 사회와의 불화를 헤쳐나 갈 수 있겠는가?  이 것은 2권 등 다음 권을 읽어야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아시카와의 입을 빌어 와타루가 직면 할 다음의 세계가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비전은 현실세계에 사는 인간의 상상력 에너지가 만들어낸 장소야. 그래서 언제나 그곳에 있지. 하지만 현실세계와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요어문’이 열리는 것은 10년에 한 번뿐이야. 뿐만 아니라, 우선 ‘비전’으로 가는 통로에 적합한 장소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부근에 목숨을 걸고 온갖 고난을 만나더라도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는, 잃었던 것을 다시 되돌려 놓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하는 인간이 없다면 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본문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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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5
바오 닌 지음, 박찬규 옮김 / 예담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숨이 꽉꽉 막혀왔다. 전쟁의 비극을 그린 그 어느 소설보다도 시종일관 처참하고 분위기가 계속 가라앉아 있었다. 주인공은 항상 환몽에 시달리고 잊을 만하면 전투 장면을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명분이야 분명히 나름대로 있겠지만, 전쟁의 폐해는 참가자 개인인 물론 그 자손까지 고통과 상처를 대물림하게 한다. 가까운 우리 월남 참전자들의 고엽제 문제가 이를 증명한다.

  이 작품을 ‘서부전선 이상 없다’이상의 것이라고 평하는 것이 이 책 표지에 나온다. 그러나 이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주로 병사들의 전쟁
의 공포 심리를 그려 비정한 전쟁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레마르크’의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 흐름에 강약을 주고 이끌어 감이 안정적이다.  반면에‘전쟁의 슬픔’은 구성 자체가 혼란스럽다. 읽기 불편하다. 처음부터 계속 밀어붙이는 심리적긴장감이 오히려 전쟁의 슬픔을 부각 시키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끼 엔’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정신적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전역 병들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심리적 불안감에 쌓여있다. 탱크 운전병인 ‘브엉’도 마찬가지다. 그는 탱크를 몰고 동부전선을 누비고 다녔다. 바퀴에 죽은 시체의 살덩이가 끼어 있을 때도 열심히 싸웠다. 이젠 운전으로 생계를 꾸미겠다고 희망을 가지고 자랑하면서 가더니 초췌한 얼굴에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소설의 내용대로 헌 걸레조각처럼 변해 버렸다.
“차를 타기만 하면 온통 세상이 흔들렸어. 특히 진흙탕이나 물렁한 땅을 지날 때는 구토가 나고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지. 운전대만 놓으면 멀쩡해지는데 말이야. 밤에 잘 수가 없었지.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아서 괴로워 술을 마셨지. 술마시면 고통이 사라졌어. 차를 몰고 시장 길을 지날 때는 특히 참을 수가 없더군. 자전거나 행인들을 보면 달려들어 갈아 뭉개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기 힘들었어.”(본문 195)

                                                                                                                                           ‘끼엔’은 전쟁으로 인해서 사랑도 잃어버렸다. ‘끼엔’과 ‘프엄’의 사랑은, 유년 시절에 읽었던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을 생각나게 했다. 먼 남국의 작열하는 태양, 야자수 아래에서 주인공‘황병장’과 베트남 처녀 ‘응웬 빅뚜이’와의 뜨거운 사랑을 더듬어 본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비극적인 사랑. 아무튼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그들의 사랑은 잔인한 전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폭격을 피해서 학교에 들어가 그 둘이 헤어지는 이유가 모호했지만 말이다.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는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 전쟁 기록문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곳곳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은 마치 사실일 것 같이 그리고 있으나 문학성 면에서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뻔한 것으로 여기지고 치열하지도 않다. ‘ 끼엔’은 영화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것처럼 구사일생이 너무 많다.  간혹 주인공 ‘끼엔’의 감정의 과잉이 문제다. 너무 넘치다. 그것도 심도 있는 심리의 변화 없이 계속 억누른다. 또한 구성 면에서 조금 부족한 면을 보인다.

어느 부분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해 있는데, 내용이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어 시제가 혼란스럽다. 시점도 엉뚱하게 변경되어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되었다. (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것인데, 이 책 끝 부분에 독자의 입장을 읽고 이해가 갔다.)

  아무튼 이 소설은 나의 유년 시절, 월남 파병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우리 만화에 많이 등장하는 베트콩이 쓴 소설이다. 오락성과 정치성을 가미해서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에서 미군을 고문하고 잔인하게 살해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에 속하는 자의 작품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사랑을 하고 전쟁에 괴로워한다. 개인의 뚜렷한 자기 의사 표시 없이 맹목적으로 전쟁에 끌려와서 처참하게 파멸하는 누구나 똑 같다. 그래서 수많은 인명을 전쟁터로 내 몰은 ‘호치민’도 그들의 입장에서 원망스러울 것이다.

 참고로 베트남의 역사를 이 책의 소개를 통해서 일별해 본다. 
베트남은 10세기에 독립왕국을 이루다가 19세기 프랑스 식민지가 되고 20세기 전반에 일본의 침략을 당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54년 이후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프랑스군의 지휘를 받던 남베트남과  베트남 인민민족 전선이 주도하던 북베트남으로 나뉜다. 남 베트남의 고딘 총리가 경찰정치를 펼치자 지식인들이 베트콩을 결성하고  북베트남에서 이들을 지원, 게릴라전이 전개되고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미국의 개입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다. 1964년부터 1975년까지의 전쟁에 우리나라의 파병인원도 31만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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