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선택하고 나서, ‘왜 심장이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 의아해 했다. 일천한 나의 인문 사회학적 지식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필자가 진보적 좌파 지식인이라 그런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료를 찾아보니 비로소 이해가 갔다.
이 책의 제목인 이 말은 좌파의 오랜 수사로 고인이 항상 강의 시간에 강조해 온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라는 말과 함께 필자의 모토가 된 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마음이 왼쪽을 지향하므로 부자보다는 빈자를 강자보다는 약자를 배려하며 살라함이 아닌 것이지.
이 책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에 여시아독(如是我讀)으로 독후감 형식을 빌고 있다. 평생을 책에 천착해오고 지독한 책벌레로 그가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들어간 글이기 때문에 쉽게 막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또한 ‘어깨에 힘을 빼서 소리를 낮춰 사랑과 희망을 가지고’(54쪽) 쓴 글이기 때문에 왼쪽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칼럼의 특성상 짧은 글의 형식이지만 촌철살인 같은 그의 철학이, 날카로운 세계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누구 말과 같이 ‘밥벌이의 지겨움’때문인지 아니며 삶의 연륜 으로 인한 순응인지, 보수 신문에서 떠드는 애기가 가끔 나와 약간 실망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메이저 신문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끝까지 자기의 이념을 밀고 갔으면 했는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도 이 책 ‘성장이나 분배냐를 넘어서’에서 그는 목욕탕에서 만난 ‘조그만 기업’인의 입을 빌어 경제의 어려움을 애기한다. 보수 신문이 노무현을 까기 위해서 많이 쓰던 수법이 택시 운전기사 말을 많이 인용하는데, 아무튼 IMF 때 보다 경제가 안 좋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경기가 안 좋은 정점에 정치가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의 LG 카드 문제 등 위기를 잘 마무리 한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집권 정부의 책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초기부터 거대 야당이 발목을 잡고, 보수 언론이 대통령으로 인정을 않는 상황에서 경제가 잘 될 리가 없다. 왜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 소위 메이저 신문에 칼럼을 쓰는 역량 있는 지식인인 필자는 정치의 시시비비를 언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소외되고 음지에 섰던 많은 이들의 희망이었던 정운영이 노무현 탄핵 때 부당성에 대해, 아니면 정당성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필자는 그 잘 쓰는 달필로 어정쩡하게 양비론이나 펼치지 않았는가 묻고 싶다. 하기야 얼마 전에 노동 운동하고 노동계에서 감투 썼던 인간들이 중도도 아니고 오른 쪽으로 홱 돌아서서 골통 보수보다 더한 짓거리를 하는 행태를 한두 번 보아왔나.
또한 그는 “나는 여전히 분배론자이다.”라는 전제하에 “성장을 통해 분배의 공정을 도모할 수 있지만. 공평한 분배로는 성장을 기약하지 못한다.”(163쪽) 고 말한다. 이것이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라도 주류 신문에 경제학자라는 교수들이 매일 등장하여 씨부렁거리는 이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분배냐 성장이냐는 신선놀음에 나라 경제 썩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왜 이렇게 골골하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왜 투자를 피하는지도 아마 대통령을 빼고는 모두가 알 것이다. 투자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자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162쪽)
정말 대통령은 신문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에 꽝이라, 경제수석이 보고해도 말귀를 못 알아들어 먹는다는 안타까움인지 나는 모르겠다. 정말 그 대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 속내를 필자가 몰라서 능청을 떠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마지막 장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에서 필자는,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은 유권자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2030세대는 개혁 대상과 대안을 확실히 정하고 개혁을 지지하여 노무현을 지지 했는지 아니면 기득권층이 싫어서 그랬는지”(248쪽) 우려를 표하면서 “개혁은 집요하게 추진하되 그 방법만은 크게 요란하지 않으면 좋겠다.”(249쪽)고 충고한다. 새로 태어난 정부에 대해 ‘김대중 정부의 반면교사’(249쪽)의 예를 들면서 잘 되기를 주문하는 것은 언론에 몸담은 자로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주문은 개혁을 하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왜 기득권층도, 보수언론도 서로 도와 개혁이 완성되게 하자라는 요구는 없는가. 그리고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가 ‘개혁 대상과 대안’까지 고려해서 투표하는가?
순 억지소리로 들리는 것은 나의 정치적 식견 부족 탓인가?
이 장의 ‘쇳소리 나지 않는 개혁을’에서 로맨티스트이자 창백한 인텔리케차의 염려가 노골적으로 들어난다. 필자는 이 말을 하고 싶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에둘러 말한 것인 아닌 가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원위가 마련한 ‘재벌, 금융 개혁 방안’에 계열 분리 청구가 포함되었다고 한다.”(252쪽)
“노무현 정권의 개혁 행로가 쇳소리와 칼바람을 부를지 점진과 자율로 기울지, 그것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253쪽) 라고 말하면서 “새 정권에 새로 전하거니와 개혁은 쿠테타가 아니라 일상의 생존 방식이 돼야 한다.”(253쪽)고 걱정하고 또 새 정권을 물가에 내놓은 애들 마냥 염려 한다. 이제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안심할 것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더 친 재벌 적이고, 뭔가 개혁하려 하면 벌떼같이 일어나는 보수 기득권층의 반발로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현실을 안다면.
내가 보는 견지로는 과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 책의 필자 정운영은 좌파와 보수를 아우르는 글이 아닌 분명히 보수 쪽에 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보수 신문이 정운영에게 지면을 할애 한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 가 아닌 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개혁 작업에 ‘끼워 팔가’로 밀어 넣은 언론 관계 법안이 비판적인 신문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확실하다.”(294쪽) 여기서 비판적 신문에 재갈을 물린다는 문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나는 이 책 마지막 몇 장을 읽지 않고 덥고 말았다. 나는 필자가 노무현 정부의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기를 바랐다. 족벌언론, 사학, 재벌 등 난마처럼 이리저리 얽혀서 아직도 힘이 막강한 자들을 개혁하는 대안을 제시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동의 할 수 없는 내용의 글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칼럼 집 하나로 그를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1장에서처럼 책을 읽고 잔잔한 목소리로 그 감상 평을 전하는 것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챕터1의 ‘여시아독(如是我讀)’의 책 소개 중에서 내가 꼭 읽고 싶은 목록>
독토머스 머턴의 <장자의 도>는 “영문학 전공의 여교수가 번역했는데 그의 전공에서 오는 선입관을 붙들어 매라고 이 칼럼의 필자는 말한다.” <장자의 도>의 머턴은 동양 사상에 심취한 영국인 사제가 장자에 나오는 숱한 해학, 우화, 경구 가운데 그 정수를 가려내 62편의 시로 번안한 ‘시편’이다.”라고 소개한다.
“‘제 3의 길’ 전도사이고, 블레어 노선 코치”라고 표현하면서 앤서니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를 소개 한다. 저자 때문에 살 마음이 생겼고, 제목 때문에 책을 샀다고 말하면서 칼럼은 시작된다. 이 책을 읽고 칼럼은 기든스을 “‘발은 우향우로 돌면서도 입으로는 새로운 중도 좌파’”라고 한탄을 한다. (18쪽) 이 책이 기대에 기든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상당히 못 미치는 느낌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칼럼의 말미에 “노동당 간판을 앞세운 정당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한 즈음 이 책은 8000원 본전의 몇 곱이나 되는 교사와 지혜와 반면교사의 경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라고 이 책을 읽는 의의를 찾는다.
역사연구소가 집필한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의 소개는 우리 노동자들의 위상을 역사와 현재로 구분하면서 잘 알리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미국의 노동총연맹은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데이의 효시라고 한다.
우리 메이데이의 변천은, 근로일(1938.일제시대)- 노동운동 주도 좌익계 전평(全評)- 정치 운동 이유로 1947 전평 불법화-대한노총- 노동절(1957.03.10)-근로자의날(1963)-민주노총(1990) 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이 칼럼은“이 책은 치열한 시대의 치열한 보고서이다”라고 단정 짓는다.
‘책임 투자로 좋은 세상을’이라는 제목으로 에이니 도미니의 <사회책임투자>를 언급한다. 눈에 띠는 대목은 “일례로 나이키 주식을 사는 행위는
투자지만, 나이키의 베트남 공장이 노동자를 가혹하게 대하는 사실을 알고 주식을 팔아버리면 사회 책임 투자가 된다.”“디즈니의 <101마리 달마티안> 강아지 잠옷은 아잍티 에서 6센트에 만드는데 미국에서 20달러에 팔린다. 디즈니 주식을 투자 대상에서 빼버려 아이티에서 착취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좋은 세상’이다. ”로 사회적 책임 투자로 부자보다는 빈자를, 강자보다 약자를 배려할 것을 주문한다.
<김남주 평전>은 이 칼럼의 저자와 같이 덥석 사서 당장 읽고 싶다. 김남주 시 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 도 역시 소개된 시 몇 구절에 울면서 읽고 싶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피로 쓴 그의 민주를 향한 처절한 절규를, 민중을 위한 정열을 느껴보고 싶다. 그는“시인은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41쪽)면서 시 대신 무기를 잡는다. 남민전이라는 조직 활동의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 그는 감옥에 가면서 반려자 박광숙에게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42쪽) 말했다고 한다.
2002년에 쓴 이 칼럼에서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주목하고 있다. 즉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라는 구호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라는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룰라와 노동자당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 하고 정치적 혁명을 기대 한다. “1차 투표에서든 27일 결선 투표에서든 그가 당선된다면, 1970년 칠레의 아옌데 이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좌파 정권이 남미에 출현하는 것이다.”(86쪽)
그런데 그는 필자의 기대처럼 대통령이 되었다.(2002년)
보수 신문에서는 ‘노동귀족’과 ‘포퓰리즘’과의 타협을 철저히 막은 룰라를 닮으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계속 요구하였다. 룰라가 초등교만 졸업하고 좌파에 비주류에 속하여 현 대통령과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가 보수 신문이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 일까, 줄곧 룰라 따라하기를 주문했다. 일천한 나의 상식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룰라는 2004년까지 지지율이 높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