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5
바오 닌 지음, 박찬규 옮김 / 예담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숨이 꽉꽉 막혀왔다. 전쟁의 비극을 그린 그 어느 소설보다도 시종일관 처참하고 분위기가 계속 가라앉아 있었다. 주인공은 항상 환몽에 시달리고 잊을 만하면 전투 장면을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명분이야 분명히 나름대로 있겠지만, 전쟁의 폐해는 참가자 개인인 물론 그 자손까지 고통과 상처를 대물림하게 한다. 가까운 우리 월남 참전자들의 고엽제 문제가 이를 증명한다.

  이 작품을 ‘서부전선 이상 없다’이상의 것이라고 평하는 것이 이 책 표지에 나온다. 그러나 이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주로 병사들의 전쟁
의 공포 심리를 그려 비정한 전쟁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레마르크’의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 흐름에 강약을 주고 이끌어 감이 안정적이다.  반면에‘전쟁의 슬픔’은 구성 자체가 혼란스럽다. 읽기 불편하다. 처음부터 계속 밀어붙이는 심리적긴장감이 오히려 전쟁의 슬픔을 부각 시키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끼 엔’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정신적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전역 병들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심리적 불안감에 쌓여있다. 탱크 운전병인 ‘브엉’도 마찬가지다. 그는 탱크를 몰고 동부전선을 누비고 다녔다. 바퀴에 죽은 시체의 살덩이가 끼어 있을 때도 열심히 싸웠다. 이젠 운전으로 생계를 꾸미겠다고 희망을 가지고 자랑하면서 가더니 초췌한 얼굴에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소설의 내용대로 헌 걸레조각처럼 변해 버렸다.
“차를 타기만 하면 온통 세상이 흔들렸어. 특히 진흙탕이나 물렁한 땅을 지날 때는 구토가 나고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지. 운전대만 놓으면 멀쩡해지는데 말이야. 밤에 잘 수가 없었지.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아서 괴로워 술을 마셨지. 술마시면 고통이 사라졌어. 차를 몰고 시장 길을 지날 때는 특히 참을 수가 없더군. 자전거나 행인들을 보면 달려들어 갈아 뭉개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기 힘들었어.”(본문 195)

                                                                                                                                           ‘끼엔’은 전쟁으로 인해서 사랑도 잃어버렸다. ‘끼엔’과 ‘프엄’의 사랑은, 유년 시절에 읽었던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을 생각나게 했다. 먼 남국의 작열하는 태양, 야자수 아래에서 주인공‘황병장’과 베트남 처녀 ‘응웬 빅뚜이’와의 뜨거운 사랑을 더듬어 본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비극적인 사랑. 아무튼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그들의 사랑은 잔인한 전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폭격을 피해서 학교에 들어가 그 둘이 헤어지는 이유가 모호했지만 말이다.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는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 전쟁 기록문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곳곳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은 마치 사실일 것 같이 그리고 있으나 문학성 면에서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뻔한 것으로 여기지고 치열하지도 않다. ‘ 끼엔’은 영화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것처럼 구사일생이 너무 많다.  간혹 주인공 ‘끼엔’의 감정의 과잉이 문제다. 너무 넘치다. 그것도 심도 있는 심리의 변화 없이 계속 억누른다. 또한 구성 면에서 조금 부족한 면을 보인다.

어느 부분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해 있는데, 내용이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되어 시제가 혼란스럽다. 시점도 엉뚱하게 변경되어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되었다. (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것인데, 이 책 끝 부분에 독자의 입장을 읽고 이해가 갔다.)

  아무튼 이 소설은 나의 유년 시절, 월남 파병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우리 만화에 많이 등장하는 베트콩이 쓴 소설이다. 오락성과 정치성을 가미해서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에서 미군을 고문하고 잔인하게 살해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에 속하는 자의 작품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사랑을 하고 전쟁에 괴로워한다. 개인의 뚜렷한 자기 의사 표시 없이 맹목적으로 전쟁에 끌려와서 처참하게 파멸하는 누구나 똑 같다. 그래서 수많은 인명을 전쟁터로 내 몰은 ‘호치민’도 그들의 입장에서 원망스러울 것이다.

 참고로 베트남의 역사를 이 책의 소개를 통해서 일별해 본다. 
베트남은 10세기에 독립왕국을 이루다가 19세기 프랑스 식민지가 되고 20세기 전반에 일본의 침략을 당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54년 이후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프랑스군의 지휘를 받던 남베트남과  베트남 인민민족 전선이 주도하던 북베트남으로 나뉜다. 남 베트남의 고딘 총리가 경찰정치를 펼치자 지식인들이 베트콩을 결성하고  북베트남에서 이들을 지원, 게릴라전이 전개되고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미국의 개입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다. 1964년부터 1975년까지의 전쟁에 우리나라의 파병인원도 31만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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