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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옛 친구이자 학문적 라이벌 이시가미 와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의 두뇌와 끈기 대결이 펼쳐진다. 수학의 천재로 알려진 이시가미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역시 물리학 교수 우가와 마나부는 명석한 두뇌와 조직력으로 그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그 대결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두 친구는 서로 배려하면서 다른 목적으로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마나부는 이시가미를 이렇게 평가한다.
“ 이시가미라면 지금쯤 대학교수가 되어 리만의 가설에 도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달마 이시가미가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엘데슈의 뒤를 이어 방랑하는 수학자라도 된 건가?” (본문 117)
또한 이 소설은 이성과 감성, 치밀한 사고와 감성적 사고의 공존하면서, 때로는 서로 배척하면서 글을 이끌어 간다. 이가미는 삶의 의욕을 읽고 그의 연립주택에서 자살하려고 밧줄을 준비하고 실행 단계에 옮기는 찰나에 초인종이 울린다. 문 앞에 서 있는 두 모녀를 보고 그의 삶은 새로운 활기를 찾는다.
“이시마의 몸속으로 뭔가가 치달렸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그때까지 그는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을 빼앗기거나 감동한 적이 없었다. 예술의 의미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본문 392)
이시가미의 하나오카 야스코에 대한 나 홀로 사랑은 이 때부터 불붙기 시작한다.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열정적 사랑을 앞뒤 가리지 않고 올인 한다. 그것은 하루 종일 밤새도록 수학 문제에 몰두할 정도의 집중력을 가진 그의 외골수 성격이 한몫 했을 것이다.
아무튼 사랑의 힘은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듯이 천재 수학자를 사로잡았다. 대부분 이과 계통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사고를 하고, 이지적이며, 그게 도를 넘으면 냉정하고 이기적이기 까지 하다. 그런데 천재 수학자가 그것도 중년이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하여, 살인 사건에 개입하여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위력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추리 소설은 수학의 공식도 동원되고 과학적 이론을 통한 추리도 이야기의 필연성을 더하게 한다. 또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조작과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 소설의 흥미를 배가 시킨다. 한 예로 알리바이를 위하여 극장의 반 권을 너무 챙겨놓으면 인위적 조작으로 생각할까봐 팸풀릿에 끼워 무관심한 척 한다. 이 보다 더 극적인 것은 이 소설의 말미에 등장한다. 도미가시의 시체를 본 이시가미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기하학 문제를 풀듯이 순식간에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이에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도 막상막하다. 구시나기 형사가 이시가미 학교에 찾아 갔을 때, 그가 마침 수학 문제를 내고 있었는데 어렵지 않느냐고 했을 때.“선입견으로 맹점을 찌른다.”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유가와는 놀란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뉴얼대로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한 학생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는 문제다.”라고 그 교수는 말한다.
또 한 유가와는 “P≠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라는 이시가와의 말을 전하면서 구시나기에게 충고한다.
“ ‘이것은 범인이 조작한 알리바이로 자수를 하고, 경찰이 그것을 풀어라’라는 뜻으로 이시가미는 하나의 대답을 자네들에게 제시했어. 이번의 자수이고, 진술내용이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들의 패배를 뜻해. 자네들이 지금 취하는 방식은 그가 제시한 증명방법을 그냥 따라가고 있을 따름이야.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해답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내고, 그가 제시한 해답 말고는 절대로 다른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해답이 유일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 (본문 339-340)
그의 하나오카 야스코에 대한 헌신적 사랑은 사회적 통념을 초월한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감옥살이를 자처하고 자수의 길을 택하는 이시가미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난감하다. 정작 야스코는 그의 헌신은 고마워하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자포자기 했던 자기의 삶에 잠시나마 의지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한 보답인지. 아니면 그녀를 향한 사랑의 욕망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선, 악의 개념 없이 범죄에 가담한 것인지. 아무튼 오랜만에 추리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