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평점 :
내 조카는 지방의 명문고라고 소문이 난 학교 기숙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는 원거리 통학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학생들을 가두어 놓고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는 장소였다. 하루는 형수가 사색이 되어 아이 학교로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지, 이 놈들 몇 명이 사감선생을 재워 놓고 야밤에 술판을 벌이다 걸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험이 끝나면 연례행사로 그랬다는 것이다. 개교 이래로 처음 있는 사건이라 학교가 난리가 났다. 나도 놀랐다. 그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설득력 있게 형수를 위로했을 것이다.
고딩 때부터 술을 푸다니, 작가의 이력은 평범하지 않다. 그래도 좋은 대학가고 기자도 했으니, 학생 시절의 일탈이 반드시 성장 과정에서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기야 주머니에 있는 송곳은 언젠 가는 삐져나온다고 하듯이 워낙 능력이 뛰어 났는가 짐작도 해 본다.
역시 뒤로 갈수록 그의 잠재적 능력이 뛰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기본이 되어 있었지만 불과 한 달의 공부로 연대를 들어갔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를 소개하는 지인들의 글을 보니 내가 술에 취하는 것 같았다. “장승욱에게 있어서 술은, 어떤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있어서 술이란,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뭍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에게 공기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이, 그리고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들에게 물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이,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숨을 쉬듯 술을 마시고, 물속을 헤엄치듯 술잔 속에서 유영을 즐길 수가 있단 말인가?”(37쪽) 그가 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한다는 말인가.
그는 그러면 왜 그렇게 술을 마셨을까? “그 시절 나를 술 마시게 한 것은 정체를 모를 슬픔이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일은 세상의 슬픔을 마시는 일이며, 세상의 슬픔과 살을 맞대어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다.”(61쪽) 열아홉 살의 나이에 그는 왜 그리 많은 슬픔을 지니고 있었을까. 어쩌면 글쟁이가 되려는 기질 때문이 아닐까. 자유분방하고 끊임없는 자의식도 그를 술로 가까이하게 부추겼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추체험이 되어, 읽는 내내 술로 인하여 기분이 좋아졌다가 속 쓰림으로 우거지상이 되었다가 한다. 장승옥의 주량은 우리 모두를 취하게 만들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5,6 병은 기본이니, 그의 피부를 바늘로 톡 찌르면 알코올이 주르륵 흘러나올 것 같다. 그의 아세트알데히드 해독 능력은 타고났는가 보다. 부럽다.
장승옥은 나와 술 스타일이 비슷 점도 있다. 나도 돈이 있건 없건 룸살롱은 질색이다. 아가씨가 들어오면 어색하고, 그녀들이 자주 술을 먹으라고 부추겨서 불편하다. 그런데 장승옥에게 꼭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술자리에서의 ‘과묵’이다. 아무리 웃기는 애기라도 ‘허’ 한 번이면 끝이라니, 얼마나 멋있는가. 나는 술만 취했다 하면 희로애락이 확대되어서 그런지 마구 지껄이고 분주하다. 장정일이 그래서 한 동안 술을 끊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장승팔은 아무리 술을 먹어도 ‘과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남의 애기에 귀 기우린다고 한다. 그 많은 술을 먹고 침묵으로 일관하여, 그 에너지를 발설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가게 간판을 바꾸어 놓고, 술상을 뒤엎는 행위 등 악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은 시인이 ‘요즘 젊은 문인들은 술을 먹지 않는다.’ 고 대성일갈한 적이 있다. 그 때‘술을 먹어야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맑은 정신이 작품 활동에 좋다.’ 라고 반론도 만만찮았다. 나는 고은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예술과 술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아무튼 작가의 술로 인한 애기는 재미있다. 그리고 인생의 고뇌를 읽을 수 있고, 술이 매개되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도 한 편의 드라마다. 그가 건강 조심하며 계속 마시기를 빈다. 그래서 취생록 2편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