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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나는 자연 친화 론 자의 글인 줄 알았다. 각박한 도시를 떠나 숲으로 와라. 자연 속에서 골치 아픈 속세를 잊어버리고 음풍농월하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져 보자는 내용인줄 지레 짐작했다. 그것은 잘못된 선입관이었다. 영국에서 20년 객지 생활을 했던 빌 브라이스가 고향에 돌아와 빈둥빈둥 놀다가 자신의 존재를 찾고 신체를 단련하는 이야기다. 그는 운동과 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뚱뚱한 몸으로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위대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18킬로의 배낭을 메고 험한 산을 가로지르는 모험의 기록을 보는 것은, 그런 것들에 마음은 있으나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다. 그런 유의 책을 읽으면, 마치 내가 고행의 길을 여행하고 희열을 느끼는 것 같은 감정을 갖게 한다. 한비야의 여행기는 가장 적은 경비로 가장 리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세계 여행의 지침서이다. 『개미』의 작가와 이름이 비슷한 프랑스 국적의 전직 언론인이었던 노인은 3년에 걸쳐 겨울을 빼고, 터어키 이스탐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도보 여행을 하고, 『나는 걷는다』라는 세 권의 책을 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를 그렇게 걷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바로 빌 브라이스의 책을 번역한 홍은택도 미국을 동서로 횡단하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빌 브라이스는 이 번 트레일을 같이 할 동료로, 모든 면에서 신뢰감이 안가지만 인간성만은 좋은 스티븐 카츠를 선택한다. 그들의 3360키로의 대장정은 단순히 목숨 건 사투의 고행담 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빌 브라이스가 개그 프로의 원고를 쓰는 작가가 아닌 가 착각할 정도로 그의 책은 저절로 웃음이 나게 만든다. 크게 액션을 취하지 않더라고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든다. 자기 이야기 할 것은 다 하면서 능글맞은 유머 있는 문체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빌 브라이스가 종주하기로 마음먹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잘 정비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정비’라는 말이 자연을 해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좀 그렇지만, 다시 말하면 등산객의 편의를 위한 것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무려 삼 천 키로가 넘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심이 나는 곳은 ‘보조 트레일’까지 잦추어다니 감탄할 정도다. “ 어떻게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길을 잃을 수가 있을까. 그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잘 구획되고 흰 표적이 달려 있는 보도다. 나무와 나무들 사이에 난 길고 탁 트인 복도만 구별할 수 있으면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따라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약간 의심이 나는 곳-보조 트레일이 나오거나 도로와 마주치는 곳-에는 항상 흰 표적이 있다. ”(316쪽)
1984년인가에 남나희가 쓴 『하얀 능선에 서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젊은 처자의 몸으로 최초의 백두대간을 종주한 기록이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사전에 등재가 되어 있지 않다. 이리저리 궁리하여 만들어 놓은 조어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지금은 휴식년제다 뭐다 해서 입산금지 구역이 많아서 백두대간 종주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자연을 보호한다고 하는데 뭐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면 ‘대운하’니 어쩌니 하는 것을 보면 어페가 있는 정책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남난희 등산 기록이 생각난 것이다. 그녀를 검색해 보니, 57년생이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어느 티브이에서 보니, 현재 그녀는 지리산에서 아들과 같이 된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녀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어느 사이 중늙은이가 되어서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와이프의 말에 의하면 인간극장의 주인공도 되었었다고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자연 환경과 그것과 잘 어울리는 그들이 부러웠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 천 킬로의 험한 산을 해마다 종주한다는 것이 과연 미국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힘들게 산을 타는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간혹 전문가 뺨치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촌철살인의 비판이 날카롭다. 그는 ‘자연보호 공원’에서 오히려 자연의 오염이 심각함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실제 국립공원관리국은 뭔가를 멸종시키는 게 전통인 듯싶다. 이 공원이 창설되고 반세기의 관리도 못 받았는데 42종의 포유류가 20세기에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멸종됐다.”(153쪽)
빌 브라이스가 그의 불성실한 친구와 함께 고전분투하면서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가는 과정에서 웃지 못 할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들 딴에는 목숨을 건 사투요, 고역의 등정을 하다가, 어느 식당에 들러 모처럼 만의 휴식 중에 일어난 일이다. 벽에 걸려 있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전면 지도를 보게 된다. 그것의 길이는 무릎에서 머리까지 120㎝인데 자기들이 그렇게 힘들게 온 길이 5㎝였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네. 모든 노력과 수고, 습기, 눈보라, 등등,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고 극복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172쪽) 안쓰럽고 그러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과연 그들은 목표를 완주할 수 있을까. 궁금하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휴일 날 뚱뚱한 몸으로 할 일 없이 집안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무의미하게 보내는 자들이나,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해지는 매너리즘에 빠져 해매는 게으름뱅이 들에게는 이 책은 당장 배낭을 챙기고 떠나게 만드는 동기유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