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이 있다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상 - 비밀 노트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이런 책이 있다니!” 어느 국내 작가의 추천도서 목록을 보고 읽기 시작한『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비밀 노트) 편에 대한 나의 감탄이자 탄식이다. ‘개자식’과 ‘마녀’가 갑자기 동거하면서 엮어내는 이야기는 슬퍼할 여유도 없이 문장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작가의 무미건조한 툭툭 던지는 문체에 때로는 증오하고, 한편으로 매료되면서 거침없는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름도 비슷한 고립무원의 쌍둥이 형제가 남편을 독살했다고 이웃들이 믿고 있는 할머니 댁에 동거하면서 시작된다.  이 아이들은 조숙한 것인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 생존에 대한 스스로의 ‘몸체험’을 통하여 체득한 지혜로, 단식도 하고 신부도 협박하며, 각박하고 위험한 전쟁 중의 삶을 헤쳐 나간다. 그런데 가끔은 막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불쌍한 이웃을 돕는 휴메니티도 발휘한다. 

 존재가 의식을 지배하고 한 인간의 모든 것을 규정하기 쉽듯이 전쟁 중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쌍둥이들은 막힘이 없다. 절망하고 좌절하며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존재하기 위해서 일하고 미래를 위해서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고 실행한다.

작가의 건조한 묘사는 더욱 여운을 남기고 그것의 울림은 크다. 쌍둥이 형제는 진흙탕 속 같은 삶에서 어떤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어느 장에서도 작가의 감정을 실지 않는다. 그들은 관성적으로 앞에 놓은 난관을 헤쳐 나가고 극복하여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간결한 문체가 이런 상황에 더 힘 있는 진행을 부추긴다.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폭격 맞고 죽은 친모를 앞마당에 묻고도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전쟁이 이들에게 이렇게 매 마른 삶을 강요한 것인지, 아니면 천성인지는 알지 못한다. 더구나 자신들의 친부를 유인하여 인간 지례탐지기로 만들어, 결국 죽게 만들고 자신의 탈출로를 확보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책 편집이 엉성하고, 쪽 수를 많이 줄여도 될 것을 인위적으로 늘여 놓은 것 같은데 무슨 이유가 있는지. 혹시 절판 된 것을 다시 복원하는 과정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아무튼 말이 필요 없다. 일단 한 번 이 책을 잡으면 마력에 빠져 들게 되어있다. 2.3권이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