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기쿠치 간(기쿠치 히로시라고도 함)은 현역 시절엔 통속작가니, 대중소설만 쓴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당연히 그런 평을 내리는 평론가들을 좋아할 리가 없죠.그래서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쓴 소설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통속적이라며 폄하한다고 마음에 두지 마시오.하지만 의무교육을 겨우 받은 정도의 학력을 지닌 당신의 독자가 당신 문장은 너무 어렵소 하고 말한다면 무시하고 넘어가지 마시오."

 

   문장을 읽어서 알아들을 수 있고 쉽고 명료하게 써야죠.이런 문장은 우선 간단하고 주술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제대로 훈련도 안 된 사람이 괜히 멋을 부리려다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와 술어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비문이 되기 쉽습니다.모두가 인터넷에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라서 그런 글들 중에는 정말 한심한 문장도 꽤 있죠. 주술 관계가 안 맞아 뜻 파악이 안 됩니다.

 

  이런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글 쓰기 전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생긴 엉터리 문장에 대해 "나는 문장이 난해해. 하지만 수준 높은 뜻을 담기 위해선 이 정도 난해함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어려운 문장도 읽을 줄 알아야지!" 하고 오히려 독자를 훈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자기 잘못을 인정 안 하는 못된 합리화지요.

 

  쓸 데 없이 어려운 꼬부랑말이나 한자숙어를 남발하는 것도 못된 버릇입니다.일단 이런 버릇이 몸에 배이면 고치기가 힘듭니다.자신이 박식하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쓰는 문장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재수 없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습니다.말도 그렇지만 글도 우선 일차적인 목적은 상대가 알아들어야 한다는 겁니다.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거든요.

 

  못된 말버릇을 고치기 힘들듯이 못된 글버릇도 고치기 힘듭니다. 쉽고 명료한 문장을 쓰는 것은 말할 때 정확한 발음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으로 많이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글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단연히 어느 정도의 훈련 시간이 필요하죠.그런 훈련을 하다 보면 겉멋만 잔뜩 든 횡설수설한 문장보다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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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8-2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높은 경지에 가 계신 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좋은 문장이란 남들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고
나쁜 문장이란 남들이 읽고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읽게 되는 문장이라고 봅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유명한 외국 작가(스탕달이나 발자크 만큼 유명한 작가인데 이름을 까먹었어요.)누구는 자신이 소설을 쓰고 나서 꼭 (가방끈 짧은) 가정부에게 보여 줘서 그가 어렵다고 하면 고쳐 썼다고 합니다. 매번 검사를 받았대요.
이 일화가 님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는 바입니다.
공감합니다. 그래서 꾸욱~~

노이에자이트 2014-08-28 17:36   좋아요 0 | URL
가정부에게 검사 맡은 작가는 좋은 문장이 무언지 아는 사람이군요.사실 알기 쉬운 문장을 쓰는 것도 어려운 경지입니다.

transient-guest 2014-08-2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를 들어보면 자기 과목/주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교수는 아주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반면에 복잡하게 이야기를 배배꼬는 교수치고 깊은 학식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유'를 잘 드는 선생님, 그러니까 어떤 어려운 이야기도 '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선생님의 경지는 대단한 것이죠. 예수는 그런 면에서 천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8-28 17:3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자신이 강의할 분야에 대해 완전히 소화하지 않으면 알기 쉬운 비유까지 사용하기가 어렵죠.

성서해석 분야에 예수의 비유를 연구하는 분야가 따로 있죠.

심술 2014-08-2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광수 교수도 쓸데없이 현학적인 글에 넌더리를 내죠.
어느 글에선가는 쿤데라의 소설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놓고
참을 수 없는 게 존재인지 존재의 가벼움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고도 말했죠.

pek0501님이 말한 작가가 누군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아, 그리고 전 남들에게 한국영화에 대해 말할 만한 수준이 못 됩니다.
그냥 다른 대중문화는 거의 모르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영화는 조금 안다는 뜻이지
절대적으로 영화를 잘 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8-29 16:50   좋아요 0 | URL
"돌아가신 모모씨의 아들" 같은 문장의 경우도 누가 돌아가셨는지 뜻이 애매하죠.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는 위치에 따라 뜻이 달라지니 조심해야죠.

페크 님이 말한 작가에 대해선 저도 궁금합니다.

저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