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욕하니 발끈한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왔다고 하는 말은 우스개로 들을 수만은 없습니다.육이오를 모르는 50~60대는 박정희 향수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이들이 많으니까요.이번 대선 선거운동 초기에 민주당에서는 독재자 딸 박정희라며 박정희 격하운동에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그러자 박정희를 욕하다니 이건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를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간주한 이들이 발끈했습니다.그들의 단결력은 엄청난 숫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에 무서운 위력으로 선거판세를 흔들었습니다.
박정희를 욕하는 것은 나를 욕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러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어떤가요? 000을 욕하면 나를 욕하는 것이다...진보적인 유권자들에게 이 000은 누굴까요? 우리 현대사에 있을까요?
여운형? 이 분은 돌아가신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게다가 이 분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조봉암? 장준하? 함석헌? 아무리 꼽아봐도 보수진영의 박정희에 맞설 만한 인물이 안 떠오릅니다.리영희? 요즘 리영희 읽는 사람들도 드물고...
김대중은 어떻습니까?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는 "김대중이나 노무현도 보수정당의 지도자일 뿐이며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점에서는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뭐 있냐" 고 거리를 둬야 진짜 진보주의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그러니 김대중 역시 보수진영에서 단합하여 떠받드는 박정희에 비할 정도는 아니죠.
한때 보수진영에서는 조국이나 노회찬 같은 스타급 인물이 없다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보수진영에는 그런 스타급 인물은 없어도 그 스타급 인물 몇 백명에 맞먹는 박정희라는 인물을 갖고 있습니다.박정희 향수가 퇴행적이라 해도 그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서가에서 박정희 관련서적이나 몇 권 꺼내 읽으면서 연말을 보내야겠습니다.조갑제 씨가 쓴 13권 짜리 박정희 전기는 너무 방대하니 그의 초창기 걸작 <유고!>라도 읽어야죠.이거 몇 번째 읽는 것인지...달달 외우겠네...그리고 2010년 월간중앙에 강준식 씨가 연재한 한국대통령 시리즈 중 박정희 편도 빼놓으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