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박범신(1946~)이 한창 때 쓴 인기소설 <풀잎처럼 눕다>(고려원 1986)가 있습니다.책날개에 박힌 그의 사진은 왠지 모르게 반항기가 가득한 인상입니다.책 표지 뒤엔 박범신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잘 묘사한다"고 평했습니다.섬세하고 감각적이다...젊은 작가에게 어울리는 평가지요.
이제 그도 예순을 훌쩍 넘었습니다.최근작 <은교>에서 그는 늙은 시인의 입을 통해 이렇게 항변합니다."젊음이란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다.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은교는 소설도 잘 팔렸고 영화화되어 흥행에도 성공을 거둡니다.그러면서 박범신은 신문이나 방송에도 자주 나와 늙은이에게도 사랑하고픈 마음이 있다고 강조합니다.젊은 시절의 그를 알던 사람들은 좀 착잡해지죠.한때 젊은 작가로 잘 나가던 그도 이젠 나이가 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미시마 유키오(1925~1970)는 40대라는 한창 나이에 할복자살합니다.그렇기에 젊음이란 무엇인가 늙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박범신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무엇보다도 그는 그 특유의 유미주의적 마초기질 때문에 늙음에 대해 더 신랄한 논평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었으나 그다지 큰 반향을 못불러 금방 독서시장에서 사라진 산문집 <행동의 미학>에서 미시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젊은 여자의 미모라는 것은 별다른 노력의 산물도 아닌데 지나치게 큰 찬사를 받지.그 벌로 나이들면 그만큼 푸대접을 받는 것이다."
냉정하고 신랄한 논평입니다.그런데 미시마가 노인이 되도록 장수했다면 박범신 비슷한 말을 했을까요? 젊었을 때는 노인이 별세계의 사람으로 여겨집니다만 자신도 노인 대열에 합류하면 또 생각이 달라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