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설은 역사소설입니다.그래서 그 소설의 집필연대를 아는 것은 소설의 시대를 아는 데 중요합니다.집필연대를 확인하는 것은 단지 역사서를 읽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죠.어른을 몇 살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다르니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이해가 안 될 장면도 소설에는 많이 나옵니다.

 

  현진건 단편에 나오는 부부는 상당수가 20대 초반입니다.'빈처'에 나오는 부부가 하는 대화는 60년대 한국영화에서 중년부부가 하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소설 속의 부부는 20을 갓 넘긴 사람들입니다.이미 그 시절엔  어른 대접을 받던 나이입니다.또 일제시대 때 성인기를 보낸 작가들의 소설에는 친구들끼리도 너나들이를 하지 않고 '하게'나 '자네'를 쓰는 장면이 나옵니다.스물을 넘긴  어른들끼리 야! 너! 하는 것은 유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노총각 노처녀에 대한 기준도 지금과는 달랐습니다.1938년 작인 정비석의 '성황당'에 나오는 남주인공은 28살에 장가를 갔는데 노총각이 장가를 갔다는 말이 나옵니다.하기는 일제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70년대 후반만 해도 여자는 20대 중반이 넘으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습니다.이런 형편이니 일제 때인 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나도향의 장편 <환희>에  20대 중반이면 이미 기생으로서는 퇴기로 간주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황순원의 피난 시절 영남지방에서 겪은 일을 쓴 단편 '곡예사'에는 인심 고약한 주인집 노파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이 노파라는 여인은 50대 후반입니다.하긴 그 당시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50 정도 인 것을 생각하면 무리는 아닙니다.환갑을 지난 60대 연예인을 중년 배우라고 하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요.

 

 대학진학률이 낮았던 70년대엔 거의 대부분의 남자는 고교를 졸업하면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가 군대를 갔습니다.여자들은 중졸이 많았습니다.이 당시 영화를 보면 여대생이란 신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여공이 남자대학생을 사귀다가 여대생에게 뺏기는 장면에서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여대생이냐!" 고 절규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니까요.

 

  오래된 한국단편은 중고교 시절 국어입시 준비를 하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고교를 졸업하고는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하지만 소설은 불가피하게 그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집필연도를 확인하고 정독한다면 당시 생활모습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 짧은 단편을 읽는 데에도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흔히 말하는 '소설 읽듯이 술술 읽는다'는 독서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떤 이들은 오래된 소설을 읽을 때 작품해설을 건너뛰는 이가 있는데 이는 좋지못한 방법입니다.작가의 생애는 물론 작품의 집필 시기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읽어야 합니다.먼 나라의 문화가 생소한 것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과거도 생소합니다.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격언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지요.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 것으로도 얻는 바가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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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06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이 글은 노자님이 최근 쓰신 글 중 최고예요. 일간지에 실려도 손색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강력 추천합니다. ㅋㅋ

재밌고 유익해요.

노이에자이트 2012-04-07 19:01   좋아요 0 | URL
와! 고맙습니다...

마립간 2012-04-0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듯이 술술 읽는다는 독서법이 통하지 않는다. ; 저에게 격려가 되는 글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4-07 19:02   좋아요 0 | URL
소설을 제대로 못읽어본 사람일수록 소설 읽듯 술술...운운 하지요.

기억의집 2012-04-1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5살때만 해도 저의 친정엄마는 저랑 언니를 얼마나 볶았는지 몰라요. 나이 이십중반이 남자 하나 못 사긴다고... 집에 있는 게 엄청 스트레스일 정도였으니깐요. 그런데 불과 10년도 안 되서 결혼 연령이 이십대 후반을 후딱 넘고 지금은 딱히 연령이라는 게 없더라구요. 이십대에 결혼 한다고 하면 다들 말리는 분위기!

노이에자이트 2012-04-18 16:2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여자는 임신 출산이 용이한 나이를 넘기지 말라는 조언이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