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의 조문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통일부 장관 명의의 담화문에서는 북한주민들에게 위로한다는 문구가 들어있습니다.정부차원의 조문은 하지 않겠다고 했고, 담화문에도 김정일 사망을 애도한다는 문구는 빠졌습니다만, 1994년 7월의 김일성 사망 당시 김영삼 정부와 민자당(한나라당의 전신)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이 주도한 무시무시한 공안정국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은 의외로 차분한 편입니다.알라딘에서도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글은 그다지 찾기 힘듭니다.

 

  1993년 재임 첫해를 군부숙청으로 화끈하게 보낸 김영삼 정부는 그해 말, 이른바 북핵위기가 조성되면서 군사정권 당시의 반공정신을 보여주기 시작...특히 1994년 3월, 북한에서 서울 불바다 운운 했다면서 북과 대립각을 세우더니, 6월 한반도 전쟁 위기 때(실제 이 당시에 미국은 북한공격 일보직전까지 갔음)는 일부 언론이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을 꾸짖는 기사와 사설을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엄중한 시국에 국민들은 일상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개탄이었습니다.그런데 이어서 전쟁에 대비하여 사재기하는 국민이 늘어나자 이번엔 사재기를 한다고 꾸짖었습니다.뭐 어쩌라는 건지...결국 정부도 나서서 일부 언론이 지나친 위기를 부추기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릅니다.

 

  이러한 대북강경 흐름은 김영삼 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면서 잠깐 해빙 분위기가 찾아오는 듯했습니다.하지만 7월 예기치 못한 김일성 사망으로 이른바 공안정국이 나타납니다.대화상대였다는 김일성은 난 데 없이 민족반역자요, 공산당 괴수라는 것입니다.그런 괴수하고 왜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단 말인가 하고 따지려고 들면, 김일성 조문을 주장하는 사람은 빨갱이라면서 맹공하는  일부 언론...거기에 민자당까지 합세하여 마녀사냥이 시작됩니다.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는 난 데 없이 주사파가 남한에 몇 만 명이라고 주장하며 여기에 가세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갑니다.1993년의 개혁은 간 곳 없고, 김영삼 정부가 군사정권 때의 강경한 반공반북 정책을 휘둘러대니 이게 어떻게 되어가는 일인가 하는 염려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남한 내의 공안정국의 공포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북한은 안정을 되찾아 미국과 협상에 들어가고 그해 10월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은 핵협상에 전격합의합니다.그 와중에 남한은  완전히 소외되어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맙니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사망 당시 남한집권세력은 보수정부. 하지만 김일성 사망 당시의 일로 교훈을 찾았건, 실용주의 대북노선의 승리이건, 조문에 대처하는 현정부가 김영삼 정부보다는 온건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권영세 의원 같은 이가 권양숙 여사까지 조문을 하러 가게 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냈습니다.벌써 미국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일성 조문파동을 회고하면 국가 중대사에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반공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국내정국을 얼어붙게 하는 것이 결국 대북문제에서 남한의 주도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도 그 점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겠지요.물론 아직도 어버이 연합회니, 고엽제 전우회니 하는 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를 못받아들이겠다며 규탄하고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이고...

 

   국방부에서는 북한을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애기봉의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이것도 잘한 결정이라고 봅니다.트리 점등을 추진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는 불만이겠지만 이 단체도 그다지 대화가 통하는 유연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공안정국으로 모든 정치현안을 뒤덮으려는 시도가 아직까지는 드러나지 않고 잠복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검찰이나 사법부의 결정이 걸려있는 문제는 여전히 폭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디도스 사건, 대법원의 정봉주 유죄확정, 그에 연관된 BBK문제... 총선과 대선까지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역사학자나 사회과학자들에겐 한국이 흥미있는 연구대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연구대상이 된다는 게 좋은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하긴 이런 세월을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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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2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렵다. 워째 한국말인데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요 ㅠㅠ
역시 노이에자이트님 지식이란... 상식인가?

노이에자이트 2011-12-23 16:33   좋아요 0 | URL
1993~1994년 당시의 남북관계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게 썼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페크pek0501 2011-12-2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세월 참 많이 좋아졌구나, 느꼈어요. 가수 김연자 인터뷰를 티브이를 통해 봤는데, 공연 때 만난 김정일 위원장이 이러이러한 분이셨어요, 하고 회고하며 말하더라고요.

박정희 대퉁령 시절엔 김일성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살벌하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참 많이 변한 것이죠. 또 전쟁의 위험성을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사재기를 하지 않는 걸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많이 느긋해졌구나, 생각되었어요. 어마어마한 사건을 어마어마하지 않게 보는 우리의 시각이 좀 놀랍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11-12-23 16:35   좋아요 0 | URL
최은희 씨가 북에 있을 때 김정일이 잘 대해줬다면서 호의적으로 인물평을 하는 게 방송에 나오더군요.멀리 박정희 정부 때 일을 거론할 것도 없이 1994년만 해도 용납되기 힘든 일이죠.

보수정부가 그동안 워낙 북한 가지고 많이 우려먹은 게 드러났기 때문에 이젠 웬만하면 놀라지도 않죠.

루쉰P 2011-12-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직된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물론 자유와 평등을 억압 받는 북 주민도 안타깝고 우리 역시 자유와 평등을 대외적으로 걸고 있지만 아주 교묘하게 숨통을 조이고 있는 이 현실이 참 무섭죠 ^^ 김정일의 죽음을 보며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피하지 못할텐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는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느끼네요 ^^ 노자님 그래도 우리는 즐 크리스마스 ㅋ

노이에자이트 2011-12-24 15:51   좋아요 0 | URL
김일성이 82세에 사망한 것을 보면 김정일이 좀 일찍 간 편이죠.

성탄절에 한파가 올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