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많이 안 쓰는 표현이 부쩍 늘면서 기존에 쓰던 표현이 하나 둘 사라져갑니다.예를 들어 예전엔 "이번 일은 방향을 어떻게 잡을까?" 했는데 요즘엔 "콘셉을 잡아보자." 고 합니다.이 콘셉이란 단어는 이젠 완전히 정착한 단어인데 아직은 외국어라고 해야지 외래어는 아닙니다.이런 외국어가 일단 우리 언어생활에 정착하면 그 전에 우리가 쓰던 표현은 망각하기 시작합니다.그런데 콘셉은 concept로 t는 묵음이 아닙니다. 

  아이템이라는 단어는 전자게임이  보급되면서 요 몇 년 새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요즘은 옷도 아이템이라고 합니다.의상업이나 디자인 분야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꼬부랑말을 남발하기로 유명한데, 홈쇼핑 같은 데서 옷을 소개할 때 두 여자가 대화하는 것을 들으면 조사 빼고는 모두 꼬부랑말입니다.필수품도 필수 아이템이라고 하죠. 예전엔 업종선택이라고 했는데 요즘엔 사업아이템을 초이스한다고 합니다.초이스라는 단어도 부쩍 확산 중이더군요. 

  예전엔 방송에서도 초대손님이라는 말을 썼는데 요즘은 다 게스트라고 합니다. 직장인들은 고객을 만난다고 하지 않고 클라이언트를 만난다고 합니다.그렇게 해야 세련되고 뉴요커 분위기가 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어 흔적이 남은 단어는 민족주의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만 완전히 익숙해진 단어는 굳이 바꿀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런데 재밌는 단어 중 하나가 삐까번쩍입니다.일본사람들은 반짝반짝을 삐까삐까라고 하는데 우리는  삐까와 반짝을 섞어서 일종의 다문화 단어를 창조했습니다.일본어만 쓰니까 좀 미안해서 그랬을까요...으리으리하다는 표현과의 대결에서 이미 삐까번쩍이 우위를 차지한 지 오래되었지요. 

  우리는 별도 반짝반짝, 모래알도 반짝반짝입니다만 일본인은 별은 기라기라 빛난다고 합니다.그래서 기라성이라는 단어가 생겼지요. 원래 우리말에서는 쟁쟁한, 내로라하는 이란 표현이 있습니다.이제 기라성은 사실상 외국어에서 외래어를 거쳐 우리말이 되어 가고 있으니 기라성을 쓰는 사람에게 일제잔재를 청산 못했다느니 하고 시비를 걸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죠.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어는 간지입니다.사람의 성 뒤에 붙여 멋쟁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는데 예를 들어 소지섭을 소간지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발음 자체가 부드러워서인지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이제 곧 정착단계에 들어선 것도 같고... 

  순화어라고 해서 방송을 통해 계몽의 대상이 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있고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예를 들어서 요즘은 벤또라는 단어를 쓰는  20대 30대는 거의 없습니다.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정착된 거죠.쓰메끼리, 간쓰메도 이젠 나이든 사람들이나 쓰지, 거의 다 손톱깍기,통조림으로 각각 정착되었습니다. 

  한때 우동도 일본말이라 하여 가락국수를 순화어로 많이 밀었습니다만 거의 힘을 못쓰고 이젠 어나운서도 우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벤또가 도시락으로 바뀐 것에 비하면 우동이라는 단어의 생명력은 끈질깁니다.억지로 될 일이 아니죠.

  외래어야 어쩔 수 없습니다만 외국어는 안 쓰는 것이 좋습니다.일본어에 대해서는 일본잔재니 왜색이니 규탄하면서도 영어는 세계공통어이기 때문에 영어 섞어쓰는 것은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억지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하지만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는 것은 영어어순이 우리말과 다르기 때문인데, 우리말 어순에 조사는 그대로 놔두고 영어단어만 입히는 식의 말버릇은 영어실력을 쌓는 데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실제로 주변 사람들 중 조사 빼놓고 영어단어 남발하는 사람들이 정말 영어를 잘하던가요? 정작 영어가 필요할 때 부르면 화장실에서 안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를 많이 쓰면 우리 단어의 어휘력이 풍부해진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하지만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일단 외국어가 도입되면 기존의 다양한 표현들이 모두 단일한 외국어 표현으로 대체되므로 오히려 어휘가 줄어든다고 합니다.이 방면에 관심을 많이 가진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일단 생소한 외국어를 쓰기 시작하는 일반 언중들은 기존의 우리말 표현을 잊어버리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또 어떤 외국어가 시민권을 얻어 외래어가 될지, 또 순화어 중에서 정착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어떨 것이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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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0-1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리으리하다, 쟁쟁하다, 내로라하다 같은 좋은 말이 많은데도 굳이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심정... 개인적으로는 삐까뻔쩍하다라는 말이 더 생소하달까요. 문학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으리으리하다 등의 단어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듯 합니다.

현재 우리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셨군요. 우리말의 사용을 조금이나마 늘려야 할텐데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18 23:00   좋아요 0 | URL
삐까번쩍은 군대에서 군화 닦을 때 많이 하는 표현이라 그런지 역사가 꽤 되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외국어를 원래 썼던 우리말 표현으로 바꿔보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어휘력을 늘리는 데 좋거든요.

감은빛 2011-10-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할머니께서 생소한 단어를 많이 쓰셨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 일본어였던 것 같아요. 아직도 특정 영역에서 현장용어(혹은 전문용어)들은 대부분 일본어가 많죠. 예를들어 공사현장(막노동, 노가다)에서 쓰는 말들은 일본어가 무척 많고, 인쇄소, 각종 공장에서도 일본어를 많이 쓰더라구요. 뭐 당구장에서도 대부분 일본어를 쓰잖아요.

저는 그런 외국어보다는 요즘 애들이 쓰는 신조어들을 전혀 못 알아듣겠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님은 그런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말들, 아이들이 쓰는 말들 다 알아들으시나요?

노이에자이트 2011-10-19 16:47   좋아요 0 | URL
방송국이나 영화판에서도 많이 씁니다.어나운서들은 화면 앞에서는 표준말을 쓰지만 그들 바로 옆의 방송현장에선 일본어가 많이 남아있죠.

글쎄요...애들 뿐이 아니라 20대 이상들도 신조어 많이 쓰죠.저는 거의 다 알아듣습니다.인터넷 댓글들을 유심히 보니까요.

yamoo 2011-10-2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에 정말 동감 만빵입니다. 예전에 어떤 경영학과 교수가 TV에 나와서 "코스트를 세브하여 리스크를 다운시키는 것이 인터내셔널 컴페티브니스를 드라이브하는 것이다"라고 떠벌리더라고요...이 교수는 거의 모든 명사와 형용사를 영어로 말해서 진짜 동물원에 원숭이 구경하듯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헌데, 요즘 대학 강좌 비슷한 걸 봐도 더 심해졌더라구요..
하~ 기가찰 노릇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11-10-22 16:08   좋아요 0 | URL
영어남발하는 사람들은 정말 비호감입니다.왕재수지요.

달사르 2011-10-2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도시에서는 외국어가 길에 넘쳐났던 거 같은데요.
시골에 오니 못 알아먹는 말이 역시나 많네요. 손님들이 약국 와서 하도 '거시약' 달라그래서 뭔가 했더니 구충제를 지칭하는 거더라구요. 저거 못 알아먹었다고 얼매나 할머니들이 구박을 하시던지요. '거시약'이 일본말인지 우리나라 옛날말인지 그냥 지방 사투리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외국어 중 말씀하신 아이템, 간지, 게스트는 이제는 그냥 일상용어처럼 느껴지는 듯해요. 그치만 뭔지 모를 불편함이 1%는 남아있고 말이죠. 마지막 말, 흥미로운 관찰거리라는 표현에 공감.

노이에자이트 2011-10-23 17:00   좋아요 0 | URL
거시...음...한번 알아봐야겠군요.

아이템 등의 단어는 방송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됐지요.인터넷을 통해서도...

달사르 님도 한 번 관심을 갖고 관찰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