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나이값을 하는 사람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하지만 우리나라의 엄한 연령주의하에서는 이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논쟁의 모범사례로 꼽는 조선시대의 사단칠정론. 장성의 기대승과 안동의 이황의 나이 차이는 거의 부모자식 뻘이지만 이황은 나이가 어린 기대승에게 나이를  가지고 권위주의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조선시대가 수직적인 질서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았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소한 이 정도의 숨쉴 구멍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차가 한 두살만 나도 위아래를 따져 반말 존대말을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관행 아래에서는 나이어린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기가  쉽지 않습니다.어린 동생을 존경하다니...하는 생각이 있으니까요.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하는 의식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많아서 유감스럽습니다.아니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존경하기는 커녕 벗으로 삼기도 힘듭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는 할아버지 같은 영사기사와 어린 소년이 친구처럼 지냅니다.우리나라 같으면 할아버지가 손자 뻘되는 소년을 귀여워할 수는 있을 망정 대등한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지는 못할 것입니다.나이차이가 난다고 해서 친구가 되지 못하는 담장이 가로놓인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참 불행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에 유학 온 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대학 특유의 선후배 따지기, 나이따지기에 당혹스러워합니다.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인이나 중국인들도 혀를 내두릅니다.그들이 하는 지적을 고깝게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나라의 이런 권위주의가 젊었을 때부터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고착화하고 인간관계를 편협하게 만들지 않는지 한 번 반성해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나라의 나이따지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더 들어가고 있습니다.나는 "사나이는 친구를 택할 때와 결투할 때 나이를 묻지 않는 법이다" 하는 말을 가끔 합니다.방정환 선생의 권유를 지켜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도 존대말을 합니다.나이 어린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마음을 갖추기 위해서 권하는 예절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나아가서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도 존경할 만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슴없이 내 귀감으로 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와 대화할 때 좀 어색해 하고 불편해 한다면 이렇게 해보십시오." 이보시오. 동무. 우리가 나이차이 나면 얼마나 난다고 그러시오.편하게 대하시오.내가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벼슬처럼 내세우고 그런 놈이 아니오.동무라고 부르든지 형제라고 부르든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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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8-1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시덥잖은 권위주의 때문에 우리나라의 장유유서의 미덕이 급속히 퇴색되어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학생들도 저러니, 학계는 오죽할려구요~ 지도교수 비판은 엄히 금하고 있으니 학문이 발전할 수 있나요?

몇년전 고대 법학과 김남진 교수는 충남대에서 교수하고 있던 고 유지태 교수를 고대 교수로초빙한 분입니다. 하두 자기 이론이 잘못됐다고 논문에서, 그리고 학회에서 비판했다고... 그 비판정신에 때문에 고대로 초빙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학회 당시 김교수는 원로 측에 속했고 유교수는 거의 막내 수준인 40대 중반이었으니 김남진 교수의 학문적 태도를 엿볼 수가 있지요.

고대에서 유교수의 행보는 독보적이었고, 강의도 책도 그리고 논문도 정말 잘 썼지요. 행정법학계를 일끌어갈 3명의 트로이카 중 한 분이었는데, 몇 년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개인적으로 교수들 중에서 존경하는 몇 안되는 분이었는데...

전부터 생각해 온 바가 겹쳐서 반가운바, 주절거렸네요~ 글 잘봤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8-14 21:36   좋아요 0 | URL
김남진 씨야 행정법 분야에서 낸 책이 수험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하고 그렇죠.그런데 저런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었군요.우리나라에서는 참 보기 드문 미담입니다.

그런데 그런 촉망받는 학자가 일찍 가다니 참 안타깝군요...

우주 2011-08-1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오랜만에 들릅니다. 이 포스트에 공감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외국생활을 너무 오래하다 한국에 들어와 지내다보니 주변에서 자꾸 나이를 의식하게 만듭니다. 한국인인 저도 불편한데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나이와 출신학교 묻기. 정말 염증이 날 정도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10년이 넘도록 거래하던 미국인들 중 나이나 출신학교를 제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그것도 너무 친해져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어 알게 되었죠.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의식이 뿌리 깊은 것이죠. 하버드를 다녔다고 해도, Yeah? Really? 하고 말 뿐이죠. 그게 지금 하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사실을 존중해줄 수는 있어도 지금 그 사람이 하는 일과 irrelevant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까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떤 결과를 내고 있느냐가 주안점인 것이죠.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 이름을 부르고 존칭을 생각하지 않으니 편하면서도 가깝게 지내기 더욱 쉬워집니다. 한국은 존칭과 존대말이 있어도 말로만 그렇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데 반해, 서양인의 경우는 말로는 격이 없어도 마땅히 존경할 대상에게는 마음으로부터 예를 표하는 게 다른 듯합니다. 아무튼 어쩌면 불행히도 한글의 존칭/존대말 구조가 격이 없는 인간관계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8-16 17:07   좋아요 0 | URL
우리 한국인들도 나이나 학교를 묻지 않고 대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지나치게 위계질서가 엄하고 2인칭 대명사가 없어서 상대에게 말 붙이는 것조차 쉽지가 않죠.한국 특유의 존비어체계가 소통에 많은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굳이 서양이 아니더라도 동일한 유교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인들도 한국 젊은이들의 지나친 위계질서 따지기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늙은이도 아닌 젊은이 심지어 어린이들조차 그런 잘못된 질서의 노예가 되어있죠.

우주 2011-08-18 09:38   좋아요 0 | URL
네, 일본과 중국인의 경우도 그렇군요. 제 경험을 돌이켜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존비어체계"라는 게 정말 문제이긴 합니다. 낯선 사람은 물론 조금 아는 사이에도 대화를 유발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경험을 하거든요. 나이와 관련해서, 또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여자 연예인과 관련해서 생각 나는 게 있습니다.

조다난 스위프트가 1699년, 그러니까 32살 때 좌우명 비슷한 시를 지었습니다. 아마 그 자신이 싫었던 걸 적어두어 나중에 나이들어 자신만은 그러지 않으려 다짐했던 것 같아요. 그중 일부를 소개할까요? 이미 아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목: 나는 늙어서 (When I Come to be Old)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들을 친구삼으려 하지 말자.
짜증내거나 시무룩해하거나 의심스러워하지 말자.
같은 사람한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말자.
탐욕을 부리지 말자.
품위와 청결을 소홀히 하지 말자.
젊은이들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고, 젊음에서 말미암는 어리석음과 결점을 참작하자.
조언이나 훈계를 남발하지 말자. 그것을 구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청하지도 않은 조언이나 훈계는 삼가자.
많은 말을 삼가자. 특히 내 얘기 하기를 삼가자.
과거의 아름다움이나 건강을 자랑하지 말자.
....
등인데요,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젊은 연예인을 향해 나이먹은 선배들이 공개적으로 훈계를 서슴치 않는 것을 보니 스위프트의 시가 생각나더군요. 또 마침 이 자리에 장유유서 얘기도 나오니 한번 적어봤습니다. 생물학적 나이와 지혜 사이에 등식이 성립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혹 그렇다 하더라도 스위프트처럼 구하지도 않은 훈계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군요. 참 곱게 나이먹기가 정말이지 쉽지 않은가 봅니다. 그런가 하면 40-50대도 60-70대 못지 않게 훈계하기 좋아하던데, 훈계의 연령층이 낮아지나 봅니다. ^^ 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인반인도 그렇지만 언론에 오르내리는 어떤 진보논객은 자신에게 욕은 해도 훈계하지 말라면서 정작 자신은 독설 어린 훈계를 일삼는 걸 보면 놀랍더군요. 그러니 그를 따르는 젊은 세대로 그런 모습이 귀감으로 전이된다면 앞으로 훈계의 연령이 더욱 낮아지겠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18 16:37   좋아요 0 | URL
스위프트의 말은 정말 경청해야 하겠습니다.나이가 들수록 귀를 크게 열고 입은 다물어야 대접받는다는 말이 있죠.아주 젊었을 때부터 위아래 따지는 버릇이 쌓이고 쌓여 40정도 되면 완전히 지적질과 훈계질이 몸에 밴 사람들이 많습니다.존비어 체계가 엄하지 않다면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텐데...하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만...

진보인사들 중에서도 일상은 철저히 인습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래서 인습은 이념보다 강하다는 격언이 있죠.이런 좋은 댓글은 여기 들러주시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주 2011-08-18 21:19   좋아요 0 | URL
찬찬하게 글을 잘 쓰신다고 제 짝(^^)이 그러는군요. 그러면서 혹시 특별히 어디에 글이라도 기고하시나 물어봐달라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8-18 22:42   좋아요 0 | URL
인터넷에 글 쓸 때 명료한 표현에 중점을 두는 편입니다.읽는 사람이 편한 글을 써야 소통이 되니까요.육두문자나 자극적인 표현은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기고할 실력까진...글쎄요.여하튼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011-08-19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0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08-1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든 선배든 후배든, 만나다보면 각각 배울 점이 있더군요. 특히 배울 게 없을 것 같은 나이 어린 후배에게서도 배울 점이 많아서 놀라곤 하죠. 그런 것 보면 사람 사귀는 데에 나이는 상관 없는 것 같아요.

그 누구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합니다. '음식을 구걸하는 거지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한 끼의 식사만을 구걸한다.' 써 놓고 보니 어디서 읽은 것 같아요.

우리 나이 따지지 말고 좋은 관계를 이루며 삽시다. (참고로, 저 나이 많아요.ㅋ) 블로그를 통해 젊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8-16 17:1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나이 많은 이가 나이 적은 이에게 의무적으로 반말을 쓰게 되면 손해가 많아요.반말을 쓰면서 존경심을 품기가 힘드니까요.
고령화 시대엔 65세 이상이어야 나이 많다는 행세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서로 서로 좋은 글로 도움을 주기로 해요.

페크pek0501 2011-08-19 12:17   좋아요 0 | URL
"고령화 시대엔 65세 이상이어야 나이 많다는 행세를 ..." - 그럼 전 청춘인 걸요.ㅋㅋ 기분 좋고 위안이 되네요.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8-19 16:43   좋아요 0 | URL
미리 나이 든 티를 낼 필요도 없겠죠.

70년대까지 우리나라 남자 평균수명이 70세가 안 되었다고 합니다.

Elyot 2011-09-03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눈팅만 하다 글 남겨 봅니다.) 그런데, 막상 어린 사람들을 존중할 요량으로 경어를 쓰면, 그들부터가 못견뎌 하더군요. 친밀한 인간 관계를 맺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듯. 그래서 반말을 쓰면, 반말이라는 형식 자체가 갖는 힘 때문에, 저는 영원히 그들의 윗 사람이 되고 맙니다. 결국, 평등하고 허심탄회한 인간 관계는 불가능해지고, 형/누나 노릇, 동생 노릇, "노릇" 만 남습니다. 정말 재미 없고 매력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 관계란...

노이에자이트 2011-09-03 14:50   좋아요 0 | URL
아주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그런 고민을 하셨다면 좀 더 나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