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도 강간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는데 다른 동물은 몰라도 원숭이는 있다고 합니다.좀 오래전에 방송에서 봤기 때문에 어느 나라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도 같기도 하고...)원숭이들끼리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긴 쪽 원숭이 집단의 수컷들이 패배한 집단의 암컷들을 강간했습니다.그런데 이게 강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암컷들이 그냥 체념상태에서 수컷들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인간들 이야기를 해보자면 여자들이 돈 잘벌고 건장한 남자를 선호하는 건 유전적으로 강하고 유능한 자식을 보려고 하는 본능에서 나온다는 설이 있습니다.자연계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그 대표적인 예가 사슴류의 번식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수컷들은 이 시기에 자기들끼리 뿔로 치고받고 하는데 엄청난 격전 중에 죽음을 당하는 놈들도 있습니다.이긴 수컷은 전리품으로 암컷을 차지하지요.다큐멘타리 같은 것을 보면 최종승자가 된 수컷이 암컷에게 다가가면 암컷은 다소곳하게 수컷을 받아들입니다.물개들의 번식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개들의 번식기가 그렇습니다.개들은 일부일처도 아니고 일종의 다부다처인데 암컷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발정기 때 암캐 한 마리를 둘러싸고 많은 수캐가 몰려드는데 아무리 수캐가 잘 생기고 체격이 좋아도 암컷이 싫다고 성질 부리면 그 수캐는 교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어떤 경우엔 정말 이쁘게 생긴 암캐가 자기보다 체격도 작고 얼굴도 요상한 수캐를 허락하기도 합니다.하긴 사람들 눈으로 별볼일 없는 개라고 여기는 것이지 그 암캐 눈에는 맘에 들어서 그러는 것이겠죠.
좀 오래전 일본의 동물서적 중 <동물과의 대화>라는 게 있었는데 저자인 마쓰이 씨가 기른 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그는 아까라는 이름의 잡종견(닥스훈드와 소형테리어 사이에서 났음)을 길렀는데 암컷이고 뒷다리 한 쪽을 절었습니다.그런데 성질이 용감하여 동네사람들은 이 암캐가 낳은 강아지를 받아가려고 했습니다.주인은 당연히 좀 멋진 강아지를 얻기 위해 잘생기고 체격좋은 수컷과 교미시키려고 하는데, 묘하게도 아까는 발정기 때 모여든 그 많은 수캐 중에서 볼품없는 놈만 고르는 것입니다.주인이 낙담하여 잘생긴 수컷을 데려와 소개팅을 시키면 아까는 맘에 안 들어 거부하거나 심하면 물어뜯어 수캐를 쫓아버리기도 했습니다.그래서 주인은 깨닫게 되었지요.개에겐 개 나름의 취향이 있고 그들의 시각으로 교미상대를 고르는구나...하는...
이로써 알 수 있지만 개의 세계에서는 암컷이 상대를 고르는 주도권을 행사합니다.제 아무리 수컷이 잘 생기고 싸움을 잘한다 해도 암컷이 거부하면 그걸로 끝입니다.그렇다고 어거지로 강간을 하려는 수컷은 없는 것 같습니다.예전에 창경원에서 동물을 기르던 시절엔 암호랑이를 시집 보내려고 체격좋은 수컷 호랑이를 데려왔는데 이 놈이 암컷을 물어죽이는 불상사가 났습니다.그런 점으로 본다면 호랑이는 개만도 못한 동물이 되겠습니다.
마쓰이 씨는 사람들이 보기엔 초라한 수컷을 선택하는 아까를 이상하다고 여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당사자들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그렇다면 사람들이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여자가 아깝네 남자가 아깝네 이러쿵 저러쿵 평론가? 인 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주제넘은 짓입니다.당사자가 좋으면 됐지 제3자가 옆에서 그런 오지랖을 떨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덩치 크고 쌈 잘하는 수캐도 자기보다 조그맣고 초라하게 생긴 수컷이 암캐의 선택을 받으면 그것으로 물러갑니다.너같이 못생긴 놈이 감히...하면서 트집을 잡거나 하지 않지요.
마쓰이 씨의 책은 아주 오래전 내가 사춘기도 되기 전에 읽었습니다.그땐 아파트도 드물고 도심에서도 여기저기 흙길이 많고 풀밭도 많아 개를 풀어서 기르는 집들이 많았습니다.그래서 발정기 때 우르르 몰려드는 개들이 어떻게 짝을 짓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죠.마쓰이 씨 말이 맞았습니다.심지어 송아지만한 암컷이 아주 못생기고 작은 수컷(3킬로그램 정도)을 선택한 광경도 보았습니다.지금도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