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1927~2001)와 박경리(1926~2008). 비슷한 연배로 한국현대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입니다.한 사람은 언론인으로, 또 한 사람은 소설가로, 또 두 사람 모두 일본통으로도 유명하지요.하지만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평가를 비교해 보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하는 마음뿐입니다.특히 박경리의 야나기 평가는 육두문자까지 동원하고 있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송건호의 평가---여기에 번역한 야나기 무네요시 씨의 <한민족과 그 예술>은 우리 민족과 우리 예술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아껴준 한 양심적인 일본인의 고백기록이다.그는 삼일운동 때 일제의 무자비한 무력탄압의 잘못을 개탄하고, 두 민족의 참된 친선과 이해의 길이 무엇인가를 일제 당국에 호소하는 한편 공포와 좌절 속에 빠져 있는 한국민에게 우정 어린 마음으로 희망과 용기를 붇돋아 주었다.
그는 우리 민족 예술을 진실로 아껴주었다.중국,일본의 예술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민족예술의 특징을 밝히고 그 예술이 얼마나 뛰어나고 놀랄 만한 것인가 감탄 어린 글로 소개했다.(중략) 그는 우리 민족의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예술을 낳은 우리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고 경애했다.그는 글로, 강연으로 일제의 식민 정책을 비판하다가 마침내 일제 당국의 요시찰 인물이 되어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조선민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또 지방으로 찾아다니며 사라져가는 조선민족의 옛 민속예술을 발굴하고 여러 번 우리 땅을 찾아왔다. <한민족과 그 예술>(탐구신서 92번 1976)의 '역자 서문'에서
박경리의 평가---그런데 내 연령의, 내 주변의 사람들조차 일본을 너무도 모릅니다.어린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일본은 정말 야만입니다.(중략) 아니, 우리나라의 사학자들이구 민속학자들이구 문인들이 무식하게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사꾸라 새끼를 놓고 걔가 조선을 좀 칭찬했다고 숭배하는 꼬라지 좀 보세요.이거 정말 너무 한심합니다.아니 걔가 뭘 알아요. 조선에 대해 뭘 알아요.걔가 조선 칭찬하는 것은 조선에 대한 근본적 멸시를 깔고 있은 거에요.걔가 어떻게 조선의 위대함을 압니까? '신동아' 1990년 7월 김용옥 칼럼, 도올세설 제9회 '서울서 책만 사다 망한 사람' 중에서, 이 글은 김용옥이 박경리와 만나 대담한 내용.
박경리가 송건호를 의식하고 한 평가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글쎄요... 박경리가 신문이나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은근히 섬뜩한 표현이 있습니다.그런 것을 감안하고 글을 대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아무래도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책을 직접 읽는 게 좋겠지요.<한민족과 그 예술>은 새로 나온 번역본(이길진 번역 <조선과 그 예술, 신구문화사 2006)이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십시오(위의 송건호 번역본은 세로줄에 국한문 혼용인데다가, 일본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자 그대로 표기했기 때문에 한자나 일본어 해독을 못하는 사람들은 읽어내려가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