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씨가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소식....어허...이제 60대 초반인데...그 정도면 문학가로써 한참 왕성하게 일할 나이가 아니던가요...더군다나 그는 특수부대 출신으로 강건한 체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그런데 심장마비...
이윤기 씨 하면 번역작품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어떤 이는 <희랍인 조르바>를 떠올리며, 어떤 이는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원작인 제임스 존스의 작품 번역을 떠올리기도 할 것입니다.하지만 나는 그의 깔끔한 수필이 먼저 떠오릅니다.90년대 중반 경 신동아에 연재되던 그의 글은 알맹이가 맛있는 팥빙수 같은 느낌이 났습니다.그의 문체는 점잖고 겸손합니다.아마 '습니다'체를 썼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경북 시골 출신인지라 언덕과 산에 피는 꽃이라든가 풀이름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치 이오덕 씨를 연상케 할 정도로 우리말을 갈고 닦은 느낌이 나는 글이 많았습니다.웬만하면 '있어서의'를 쓰지 말라는 글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윤기 씨의 번역작이 아니라 실제 그가 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특히 그가 쓴 최대 장편 <하늘의 문>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요.게다가 어떤 이는 이 소설을 구하려고 헌책방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구입하기가 힘든가 봅니다.나는 운좋게도 이 소설을 4년 전엔가 헌책방에서 구했지요.전 3권이나 되는 적지 않은 두께지만 내용도 흥미진진하거니와 이윤기 특유의 해박한 지식을 충분히 맛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종교,문학,세시풍속,신학교와 성직자들의 뒷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와 군대의 폭력 등등...그가 학교체벌에 반대한다는 거 아시죠?
그는 경북출신이지만 호남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글을 썼습니다.어린 시절 고향에 전라도에서 시앗으로 시집온 나이든 여자를 동네 꼬마들이 손가락질 하고 놀렸는데,그의 어머니는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일러주었다고 하지요.자식에게 편견과 차별의식을 물려주는 부모가 많은데 그의 어머니는 깨어 있는 사람이었나 봅니다.화끈하게 한 쪽 편을 들면서 독설을 퍼부어대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윤기의 글은 너무 밋밋하고 얌전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인신공격이나 비꼬는 글에 질린 사람이라면 그의 잔잔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이 알알이 박힌 글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겠지요.유학 몇 년 갔다온 주제에 3초에 한 번씩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지인 때문에 밥맛이 떨어진 사람도 이윤기의 글은 청량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이제 이윤기 씨도 그의 자전적 소설 제목처럼 '하늘의 문'에 들어섰습니다.어쩐지 그곳에서도 그는 책읽고 글 쓰면서 바삐 지낼 것 같군요.이윤기 동무!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