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있네" 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유행하는 표현인데 상당히 비아냥대는 느낌이 있습니다.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다가 상대방이 하는 말이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는 표현을 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왜 이렇게 소설을 비하하는 표현이 널리 퍼졌는지 고개를 갸웃할 때가 많습니다.또 요즘엔 인터넷에 오른 기사가 알맹이도 없고 논리도 없는 수준 이하일 때에도 "이걸 기사라고 썼냐...소설을 쓰는구만..."하는 댓글도 많이 올라옵니다.소설가 처지에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황석영 씨가 이런 세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도대체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단순노동도 십년 이십년 하면 달인이라고 해서 그 노고를 인정해 주고 있다.내가 소설을 오십년 째 쓰고 있는데 소설을 이렇게 우습게 본다는 말이야....이래가지고 우리나라의 문화가 발전하겠느냐." 황 씨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무시하고 만만히 보는 세태가 더 섭섭했겠지요.그런데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 처지에서 생각해 봐도 이런 식으로 소설을 폄하하는 분위기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야! 너는 한가하게 소설 나부랑이나 읽고 있냐?" 소설을 읽고 있는 친구에게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우리나라는 무엇이든지 위아래 따지는 관행이 뿌리 깊어서 소설도 문학에 해당하는 작품이 있고 그냥 소설 나부랑이에나 속하는 작품이 있는 것 같습니다.잘은 모르지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 뭔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해 줍니다.또 한국인이 쓴 소설 중에서도 예를 들어 박경리나 최명희가 쓴 소설을 읽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평가를 해줍니다.하지만 그외의 대중적인 작가들이 쓴 소설이나, 특히 장르소설을 읽으면 소설나부랑이나 읽는 사람이라고 깎아내립니다. 

  소설에 대해서 낮추어 보는 말 중에 "소설 읽듯 수월하게 읽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소설은 별로 집중하지 않고 읽어도 된다는 선입견에서 나온 말이지요.그런데 이런 말을 해대는 사람은 정말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 사람일까요.제대로 소설을 읽으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우리나라에서 많이 무시받고 있는 분야인 추리물은 집중 안 하고 읽으면 줄거리 파악도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또 소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나 지리적 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이는 상당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지요. 

  어떤 영화 제목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였습니다.소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니 저러니 무시하고 만만히 보는 세태가 우스꽝스럽습니다.이는 문학의 죽음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담론을 떠나 인류의 지적 작업에 대한 무시와 폄하입니다.소설 읽는다는 것은 아무나 물 한 잔 마시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어찌보면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호기심이 있어야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물론 호기심에도 수준차가 있습니다.옆집 부부는 왜 아이가 없지? 남자가 비실비실하게 생겼던데 혹시 성불구자인가? 아니면 여자가 불감증인지? 따위의 천박한 호기심만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소설에 관심도 없고, 그래서 "소설쓰고 있네..." 라든가 "야...이런 일을 소설 읽듯이 해서는 안된다구" 하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게 됩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너희들이 소설 읽는 맛을 알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쏘아붙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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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10-08-1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지은이와 읽은이의 완전한 "자유 마당"이어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 생각되네요.
즉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작가의 자유이고 문장에서 어떤 풍경,어떤 표정을 상상하느냐는 읽은이의 자유이고.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소설마저도 많은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산물이잖아요. 결국 소설은 역사소설을 포함해서 거의 "픽션"이기 때문에 소설을 즐기지 않은 사람은 그걸 "가짜"라고 하지요. 그러나 음악도 미술도 조각(彫刻)도 모든 인간의 창조물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니까, 그런 것들도 "가짜"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그런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요. 특히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는 고유한 제목은 없고 "교향고 제1번"과 같은 무미검조한 번호만 달은 음악이 많잖아요. 그러나 그건 듣는 사람 자신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지요. 누가 베토벤의 음악을 "가짜"라고 하겠어요?
내 아는 사람들중에도 소설을 비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음악,미술등에도 아무런 감상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많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08-17 17:0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결국은 소설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소설을 비하한다고 봐야죠.그리고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그리기 위한 소설가의 고통을 모르고 그냥 머리속에서만 상상해서 글을 쓰는 게 뭐가 어렵냐고 생각하는 수준낮은 사고방식이 문제지요.

비로그인 2010-08-18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도 지금으로 치자면 딴따라에 불과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손떨리는 티켓값을 지불해야죠. 소설은 커녕 시 한 편(시를 폄하하는게 아니라)도 창작해 본 적 없는 이들이 가벼운 입술들을 부르르 떠는 소리에 불과한 거라 생각해요. 자신의 창작물을 공개한다는 것은 알몸을 드러내는 것과도 같을텐데 그럴 용기도 없는 것들이...

노이에자이트 2010-08-18 17:04   좋아요 0 | URL
창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아무래도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yamoo 2010-08-1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안할 수가 없는 글이군요^^ 안녕하세요, 야무라고 합니다~ 한 때 소설읽기가 시큰둥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이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파스칼 키냐르의 <혀끝에서 멤도는 이름>이었습니다.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고, 다시 소설을 읽게 되었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황석영은 별로 안좋아해서 작품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8-18 17: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자주 놀러오세요.추천한 작품 기억할게요.

하하하....저는 황석영 씨의 70~80년대 작품은 요즘도 시간 나면 종종 읽고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 2010-08-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다 보면 한국의 시인 '고은'의 시는 시처럼 보이지조차 않는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고 나면 수많은 작가들이 참 소설을 쉽게 쓴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보르헤스는 노벨 문학상을 못 받았다.

황석영은 자신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웃기는 사람이다. 狂人이 따로 없다. 소설만 읽으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지도 모르겠지만... 덧붙여 고은과 함께 노벨 문학상에 환장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노벨상 받으려고 로비하는 건 김대중만으로 충분하다. 문학상 받으려고 로비하는 한국사회에 태어난 게 자랑스러움을 넘어 황송할 지경이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소설을 누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학작품이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사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yamoo 2010-08-18 17:35   좋아요 0 | URL
바로 그거에요~~ 제가 황석영과 고은을 잴루 싫어하거든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특히 황석영...작품은 별개로 하더라도, 노벨 문학상을 받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자체가 좀 황당했습니다. 작품은 쓴 사람과 뗄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멀리 하고 있는 것이에요~